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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우체국>을 몇 장 읽다가 '도대체 이 책을 읽어야 할까? 지금이라도 덮어 버려야 할까? '하는 갈등에 시달리게 된다.
마치 '닉 케이브'의 <버니 먼로의 죽음>을 읽을 때처럼 당황스럽고 불편하다. 이 소설 속에서 먼로의 뇌구조는 온통 섹스로 연결된 듯하다. 이런 먼로의 행동에 지친 아내는 자살을 하고, 아들을 돌보아야 하는 먼로는 화장품 외판을 하는데 아들을 데리고 다닌다.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들이 있건만, 먼로는 처음 보는 여성들과 관계를 맺을 정도이다. 외설적인 행동과 욕설이 난무하는 소설이다.
또 한 작품 생각나는 소설로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새엄마 찬양>인데, 이 소설은 포스트 모더니즘 경향의 에로티시즘 소설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새엄마와 아들의 사랑 행각이 그려지는데, 읽는내내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소설이다.
그런데, <우체국>도 그와 다르지 않으니, 이래서 소설이란 장르는 책 선택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 소설의 내용은 소설가인 '찰스 부코스키'의 자전적 소설이다. (1952년부터 1969년까지의 소설가의 삶)
그의 다른 5편의 작품들도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성장기별로 다루었다.
<우체국> 역시 작가가 우체국에 근무했고, 책 속의 여자들과 같은 만남이 있었고, 생활도 그와 같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찰스 부코스키'의 분신인 헨리 치나스키가 우체국의 보결 우체부로 3년 일한 후에 그만두었다가 다시 우체국 사무원이 되어 12년간 근무하다 사직을 하면서 소설을 쓰게 되는데, 작가의 삶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찰스 부코스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기에 미국 문단에서는 도외시하는 반면에 그의 소설을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2002년에 <북 매거진>에서 1900 년 이후 서양 문학사의 위대한 주인공 100인을 뽑았는데, <우체국>의 주인공인 '헨리 치나스키'가 82위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반신반의할 것이다. 왜냐하면, 치나스키는 술, 경마, 여자로 점철되는 인생을 사는 인물로, 우체국에서 일을 하기는 하지만, 즐겁게 일하기 보다는 마지못해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일을 하는 불성실한 인물이다.
" 새장에 갇혀 살다가 문이 열리자 날아 올랐던 것이다. 마치 천국으로 쏘아 올린 총알처럼. 그런데 빠져 나간들 천국일까?" (p. 236)
그의 눈에 들어오는 여자는 엉덩이가 먼저 보일 정도이고, 잠을 같이 자는 것만을 떠올리는 사람인 것이다. 단적으로 형편없는 인간, 저급하고 음란한 인물이다.
그래서 치나스키를 미국 소설사에서 안티 히어로라고 불리기도 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부코스키의 그당시의 일상이 그대로 나타난다.
우체국에서의 생활도, 사생활도 하층민들의 꿈도, 열정도, 도전도 없는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날들을 죽이면서 사는듯한 날들이 전개된다.
우체국이란 조직에서 팀장이 내두르는 횡포에 맞서기 보다는 그럭저럭 피하는 입장이기도 하고, 경마 도박으로 돈을 벌면 일을 하지 우체국에 나가지 않고, 돈이 필요하면 나가는 그런 반노동적 사고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는 동성애자, 소수 인종에 대한 불건전한 표현이 쓰여지기도 하고, 거친 말투도 걸려지지 않고 그대로 표현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불편하기만 한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1950년대에서 1960년대의 군상들의 생각과 행동을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조직에서 조금 위에 있다고, 편협하게 일을 시키고, 무분별한 경고장을 날리기도 하는 등의 미성숙한 사회의 단면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첫 장을 펼치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 이 작품은 허구이며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
그리고 맨 뒷장에는,
'옮긴이의 말로 찰스 부코스키의 시 <친절해져라>의 일부분이 소개된다.
... 나이는 죄가 아니다
하지만
일부러
흥청망청 살았던
수많은 삶 중에
일부러
흥청망청
살았던
부끄러운 삶은
죄이다. "
그리고 옮긴이는 이 시의 윗부분에 '사과할 필요 없는 소설'이라는 명제를 달아 두었다.
하기야, 이렇게 불편한 소설을 쓰고 그 누구에게 바치겠는가,
그러나, 흥청망청 살았던 삶은 부끄러운 삶이라는 것이다.
마치 소설의 주인공 '치나스키'의 삶을 비꼬는 듯하다.
그러나, 이 소설의 부정적인 면은 이러하나, 긍정적인 면으로는 당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이 가지는 권위 의식에는 도전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우체국 팀장 존 스톤의 행동에 무심한듯, 날카로운 펀치를 날리는 것으로....
이 서평의 마지막은 옮긴이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 단문과 평이한 언어들로 이루어진 문체는 문학이라는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운율도 없으며 일상의 감상과 성적 체험들을 기술한 시는 운문 장르에 대한 도전이며 기승전결의 명확한 구조가 없고 허구라고 하기엔 현실을 그저 옮겨 놓은 듯한 소설은 픽션의 기본 요소들을 무시한다. 그의 소설은 어느 지점에서는 포르노그래피와 궤를 같이하고 있으며 인종주의와 반여성주의 등 정치적 불공정한 사상들도 가감없이 드러낸다. 형식과 내용 양쪽 모두에서 고상함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척박한 땅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듯이 노골적인 음란함과 비천함 속에서 가장 성스러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 (p.p. 244~245)
옮긴이의 글은 다소 미화시킨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니, 이 책이 궁금하다면 읽어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