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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평점 :
<가시고백>은 그동안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아 온 김려령의 성장소설인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김려령 작가의 이름 앞에 붙어 다니는 타이틀은 <완득이>의 작가라는 수식어이다.
내가 읽은 작가의 작품으로는 <완득이>와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가 있기에 어느 정도 작가의 작품 성향을 짐작할 수는 있다.
<완득이>는 세계적인 성장소설인 < 호밀밭의 파수꾼>에 비견할만한 작품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의 문학성을 갖추지는 못했다.
흔히, 우리나라 청소년 소설들이 다루고 있는 가정환경이 불우한 아이들의 이야기로 결손가정에서 공부도 못하고, 싸움만 잘하는 아이가 가정과 학교에서 겪게 되는 힘든 생활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완득이>가 다른 성장소설보다 특이한 것은 난장이 아빠와 이혼한 베트남 엄마, 문제 학생보다 더 문제스러운 똥주 선생, 왕따 윤하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활기차게 전대된다.
어른들이 읽으면 좀 뻔한 이야기와 전개이기는 하지만, 청소년 성장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청소년들에게는 깨달음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비하여 <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는 <완득이>보다는 주인공의 연령이 더 낮아진 초등학생들이 등장하며서 이야기의 소재, 구성, 전개 등이 깔끔하면서도 더 감동적인 동화이다.
김려령은 어릴 적에 증조 할머니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기에 그녀가 작품을 쓰는데, 그런 점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가시고백>에 담겨 있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 내 삶의 어느 부분은 싹둑 잘라내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 내가 만난 누구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행동이 싫었고, 어떤 사람이 싫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살아 보니 그런 일을 겪어서 참 다행이구나 싶은 겁니다. 생의 결이 추억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 (p. 288)
역시, <가시고백>도 작가의 삶 속에서 녹아 들었던 어떤 부분들이 작품으로 승화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가시고백>이 모두 어린이의 동화, 청소년의 성장소설이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재미있으면서도 책을 덮는 순간 가슴 속에 따뜻함이 넘쳐 흐르는 작품들이다.
<가시고백>의 캐릭터들도 <완득이>의 캐릭터 못지 않게 특색이 있다.
유치원 시절에 선생님의 가방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뛰어난 손재주를 가졌다고 자부하는 해일.
" 나는 도둑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누구의 마음을 훔친 거였다는 낭만적인 도둑도 아니며, 양심에는 걸리나 사정이 워낙 나빠 훔칠 수 밖에 없었다는 생계형 도둑도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한 도둑이다. " (p. 51)
해일의 가정은 평범한 듯하기도 하지만, 때론 시끄럽기도 하고, 정이 넘치는 듯하지만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듯도 한 흔히 볼 수 있는 중산층 가정이다.
지란은 이혼한 엄마와 새 아빠로 구성된 가정에서 살고 있기에 친아빠와의 관계, 새 아빠와의 관계에서 작은 방황을 하게 된다.
이밖에 학교 친구인 진오와 다영이, 형인 해철이 소설의 중심 인물로 등장한다.
소설의 첫 이야기가 해일이 지란이 가지고 온 새 아빠의 전자 수첩을 훔치는 장면과 아무런 거리낌없이 훔친 물건을 중고 시장에 팔고, 그 돈을 예금하는 이야기로 시작하기에 조금은 칙칙하고 문제성이 많은 그런 청소년의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지만, 해일이 엉뚱하게 병아리를 부화하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활기차고 생동감있는 이야기가 펼쳐지게 된다.
손재주가 뛰어난 도둑, 병아리를 부화시키고 키우는 아이가 한 인물이라는 것이 <가시고백>이 가지는 뛰어난 설정인 것이다.
이 작품에서도 <완득이>의 똥주 선생님 못지 않은 담임 선생님이 등장한다.
흔히, 학교에서 볼 수 있는 권위주의적이고, 학생들을 성적으로 자리매김하는 교사가 아닌, 학생들과 공감할 수 있는 선생님이다.
" 고등학생의 뇌는 무조건 대학으로만 채워져야 할 것처럼 세상이 떠들어 대는 바람에, 본인들도 그래야 하는지 알고 0.1점마저 절박해 한다. 대학을 통과하지 않으면 추레한 인생이 될 거라는 무언의 협박에 점수와 동떨어진 세계를 탐색하는 아이들은 죄라도 진 것처럼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 (p. 111)
해일이 물건을 훔친 후에 써 놓았던 일기는 '나는 도둑이다'라는 독백으로, 자신이 도둑질을 하게 된 연유가 적혀 있는 듯하지만, 그 독백이 독백이 아닌 고백이 되는 과정이 이 소설의 내용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자신의 허물을 누군가에게 털어 놓을 수 있을 때에 '독백'은 '독백'이 아닌 '고백'이 될 수 있는 것이니까.
이 소설 속의 청소년들이 갖고 있는 아픔은 혼자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믿어주고 보살펴주고, 아껴줄 때에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야 마음 속에 박힌 가시를 뽑아 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 가시를 뽑아낼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친구들에 대한 작은 관심과 신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