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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의 계보 - 마쓰모토 세이초 미스터리 논픽션 ㅣ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마쓰모토 세이초'는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추리소설을 단 한 편도 읽지를 않았다. 어떤 책을 썼는가를 검색해 보았지만,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그리 많이 읽히지 않았던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작가가 이미 20 년전에 세상을 떠났으니, 신간이 출간되지 않았기에 모르고 지나쳤던 작가인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41세에 등단하여 약 40 여년간에 걸쳐서 천 편이 넘는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것도 다양한 장르에서.
아무튼 <미스터리의 계보>를 통해서 새로운 작가를 만날 수 있었는데, <미스터리의 계보>는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다.
이 작품은 1967년 8월 11일부터 1968년 4월 5일까지 '주간 요미우리'에 연재 되었던 것으로, 원래는 5편의 에피소드가 소개되는데, 이 책에서는 3편만을 담아 놓았다.
책을 읽는내내 책 속 인물들의 끔찍한 살인 행각에 '차라리 논픽션이 아닌 추리소설이라면...'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인간의 행동이라고 볼 수 없는 엽기적인 이야기들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첫 번째 이야기인 <전골의 먹는 여자>는 인육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골? 인육?
대충 어떤 이야기일까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실제로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1940년대에 군마현의 산골 마을에서 한 여자가 전처의 딸을 살해하여 인육으로 만들어 전골로 끓여 먹은 것이다.
가해자인 아키코나 그녀의 남편, 그리고 전처의 딸까지 지능 장애가 있기는 했지만,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자행된 것이다.
너무도 가난한 살림에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식량을 구걸하여 끼니를 때웠는데,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이웃집에서 무를 마지막으로 얻어 왔다. 남편은 무를 넣고 끓인 음식을 모두 먹고 나갔는데, 전처 딸이 먹을 것을 달라고 하자, 전부터 곱지 않게 보던 마음이 있었는데, 살해하고, 그것을 끓여서 가족들에게 내 놓는 것이다.
이 사건은 일어난 지 8개월 후에 전처딸이 행방불명이 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여 조사를 하게 되면서 범행이 밝혀지게 된다.
작가는 이 사건을 계기로 그 전에 일본에서 일어났던 인육 사건을 파헤친다. 1902년에 일어났던 11살 아이를 나병 환자가 살해하여 먹은 사건을 함께 분석해 나간다.
내가 어릴 때에도 이와 비슷한 소문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거지도 많았고, 나병 환자들도 많았다.
가끔씩 깡통을 든 거지떼들이 몰려 와서 '밥 좀 주세요~~'하고 외친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밥 한 그릇과 김치를 깡통 속에 부어 주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거지보다 더 무서운 것이 나병 환자였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나병 환자들이 어린이를 잡아 가서 간을 빼 먹는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나병 환자들이 사람고기를 먹으면 낫는다는 속설이 있었기에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작가는 인육 사건을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하고, 그 사건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이와 유사한 사건들은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가를 인간의 심리 등을 중심으로 세밀하게 써 나간다.
마치 사건을 수사하는 수사관다운 싸늘한 시선으로 사건을 구성해 나가기에 더욱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두 번째 이야기인 <두 명의 진범>은 사법부의 병폐를 꼬집어 내기도 하고, 증거를 조작하여 살인범을 만들어 내는 경찰에 대하여 일침을 가하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출발은 우리나라에서 현재도 논란이 되고 있는 사형제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작가는 사형제가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억울하게 사형을 언도 받은 사람이 사형이 집행된 후에 진범이 나타난다면 그것을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사형이 집행이 이루어진 피고 중에 정말 억울한 사람은 한 명도 없을까'라는 것이다.
언젠가 사형수들의 마지막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형수들은 자신에게 언젠가 형이 집행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종교에 귀의하기도 하고, 마지막 남은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는데, 그들을 보면 정말 사형수인가 아닌가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억울함을 이야기하는 사형수들이 있는데, 스님도 그런 경우에 그가 범죄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지만, 어떤 방법이 없었다고 이야기한 부분이었다.
바로 <두 명의 진범>은 검찰과 경찰이 어떤 사람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음을 이야기해 준다.
이 이야기는 <스즈가에서 일어난 하루 살인사건>인데, 하루의 내연남을 범인으로 지목하게 되자, 목격자의 증언에 대해서도 조사를 소홀하게 되고, 그를 올가미에 엮어 놓는 일에만 치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진범이 살인을 하고 다른 사건으로 교도소에 들어가서야 그 사건의 범인으로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잡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자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경찰이나 검찰은 처음 범인으로 정해 놓았던 사람에게서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검사와 피고의 문답, 피고의 자백 내용, 진범의 자수 내용, 경찰의 처음 수사 시작부터 피고를 풀어주는 과정까지의 수사기록 등을 토대로 다각적으로 조명해 본다.
세 번째 이야기는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이다.
이 사건은 몇 십 년전에 의령에서 일어났던 연쇄 권총 살인 사건과 비슷하다. 우순경 사건이라고도 하는데, 더운 여름날 동거녀와 말다툼 끝에 술을 마시고, 총을 들고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사건이 있었다.
책 속에 나오는 사건은 1930년대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두, 세살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여위고, 할머니와 누나 밑에서 자란 청년이 산간 농촌 마을의 주민 서른 명을 살해한 것이다.
이 사건의 바탕에는 일본의 산간 지붕에서 행해지던 악습인 요바이 풍습도 한 몫을 하게 된다.
요바이 풍습은 밤에 여인의 침실에 잠입하는 것으로 성적문란을 일으키는 풍습이었는데, 이밖에도 동족간의 혼교 관습도 이 고장에는 있었다.
청년은 마을 여자들과 문란한 관계를 맺게 되고, 결국에는 자신과 관계가 있었거나 연정을 품었던 여자들을 포함해 동네 주민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한다.
그는 폐병이 걸리기도 했고, 하는 일없이 백수건달로 살아가는 자신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사격 연습까지 하면서 살인을 계획하는 것이다.
자신을 배신한 여자들, 마을 사람들의 뼈에 사무치게, 바보 취급당했던 자신이 누구인가를 가르쳐 주려고 살인을 했다고, 유서에 밝혀 놓고, 자신도 자살을 한다.
이 책에 실린 논픽션 3편은 소설이라고 해도 끔찍할 것이나, 실제로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을 재구성하고 재조명해 보는 이야기이기에 그 잔혹함을 말로 다 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 이야기들은 1930년대에서 1940년대에 걸쳐서 일본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이야기인데, 비단 그 시대, 그 곳에서만 일어난 살인사건이 아니라, 유사한 사건들이 지구촌 다른 곳에서도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충격을 준다.
미국에서 자주 일어나는 무차별적인 총기 사건은 범인의 연령이 낮아지기도 하고, 예전보다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요즘에는 사이코 패스에 의한 잔인한 살인사건들도 일어나기에 픽션이 아닌 논픽션인 <미스터리의 계보>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을 것이다.
이런 사건을 다루는 작가의 노련함은 소설에서는 상상력이 더 가미될 것이고, 이런 사건에서 감지된 사람들의 심리도 작가의 소설에서 큰 몫을 할 것이다.
그러니, '미쓰모토 세이초'의 추리소설이 어떤 작품인가 몇 작품은 읽어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