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에는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비단 올해만이 아닌,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생각나는 것이다.

오래전, 사회초년생이었을 때 언니처럼 이것 저것 가르쳐주고 보살펴 보았던 K 선생님이 생각난다.

특히 K 선생님은 우리나라 작가들의 소설을 읽을 때면 한 번쯤 떠오르는 분이기도 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기도 소읍에 위치한 중학교 사회교사로 부임하였다. 서울에서 그리 먼 곳은 아니었지만, 고속버스를 타고 1시간쯤 가서 시외버스로 15분 가량을, 그리고 걸어서 약 15분 가량을 더 들어가면 아주 예쁜 학교가 있었다.

철따라 아름다운 꽃들이 울긋불긋 수를 놓는 그런 학교였다.

K 선생님은 내 옆자리에 앉으신 음악 선생님이었는데, 취학전의 아들과 딸, 그리고 시어머니와 함께 학교 사택에 살고 계셨다. 남편은 미국에 계셨기에 가족들과 서로 떨어져 살고 있었다. 나는 출퇴근길에 읽기 위해서 집 앞 서점을 들락거리면서 책을 사서 읽곤 했다. 그중에는 최인호, 한수산, 박범신, 김홍신 등의 소설책도 있었는데, 당시 출간만 하면 대박을 터뜨리는 인기 작가들의 소설책이었다.

K 선생님은 그중에서도 한수산의 소설을 특히 좋아하셨는데, 그런 소설을 읽으실 때는 소녀적 감성에 젖으시곤 하셨다.

서울에 살고 있던 나는 신간서적을 비교적 빨리 구입할 수 있었기에 그런 인기 소설들은 내가 먼저 읽고 그 선생님에게 빌려 드리곤 했다.

그래서 K 선생님은 내가 어떤 책을 읽는지 항상 관심을 가지셨고, 같이 읽은 책들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2년인가, 3년인가를 같이 근무하고 선생님은 자녀들을 데리고 남편이 있는 미국으로 떠나셨다. 그후에 한 번 서울에 오실 기회가 있어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벌써 아들은 중학생이라고 했으니, 아마도 지금은 사회인으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이런 오래전 추억에 잠겨서 K 선생님과 읽고 싶은 소설 5권을 골라 보았다.

한수산 작가의 소설이 담겨 있다면 좋았겠지만, 작가는 필화사건이후에 글을 접으셨다가, <용서를 위하여/ 해냄 ㅣ 2010>란 장편소설을 쓰셨지만, 여기에서는 '문학동네' 소설 5권을 소개해 드리고 싶다.

'신경숙'의 <모르는 여인들>, '한강'의 <희랍어시간>, '김훈'의 < 내 젊은 날의 숲>,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그리고 '박완서'의 <기나긴 하루>이다.

이 5권의 소설 중에 K 선생님의 독서 취향과도 맞아 떨어지는 책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중에서도 '박완서' 작가나 '황석영' 작가의 책들은 그때도 함께 읽었던 책들이기에 버킷 리스트에 담아 보았다.

'박완서'의 <기나긴 하루 / 문학동네 ㅣ 2012>

'박완서'소설 중에 <나목>, <휘청거리는 오후>, <도시의 흉년>, <오만과 몽상>등은 선생님과 함께 읽었던 작품들이다. 그래서 '박완서'작가의 마지막 소설집인 <기나긴 하루>를 추천해 드리고 싶다.

작가는 1970년, 불혹의 나이로 문단에 등단하여 40 여년이란 긴 세월을 작가로 살아 왔다. 떠나는 그날까지도 작가로 남겠노라고 말씀하셨으니, 말년까지도 작품 활동을 게을리 하시지 않으셧다.

작가는 입버릇처럼 "전쟁의 상처로 작가가 됐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녀의 소설이나 에세이에는 한국전쟁이 가져온 불행한 오빠의 죽음, 그리고 작가 어머니의 유난스러운 교육열, 그리고 남편과 아들과의 사별.에서 온 상실감과 허무감이 담겨 있기도 하다.

그래서 박완서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새롭다는 생각보다는 '또 이 이야기가 등장하네!' 하는 식상함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얼마나 가슴에 사무쳤으면 이리도 우려 내고 우려내도 또 그 이야기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도 박완서의 작품들이 독자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녀의 작품 속의 이야기는 평소 우리들이 많이 접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이고, 등장인물들도 우리 주변의 인물들, 때론 거부감이 들 정도로 속물스러운 인물들의 이야기이지만, 우리들이 속마음으로만 생각하던 것들을 거침없이 작품 속에 담아 낸다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작가는 독자들의 시각으로는 파헤치지 못했던 상황과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박완서가 세상을 바라보는 혜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가의 필치는 얼마나 날렵하던가, 그러니, 그녀의 작품을 아니 읽을 수 없는 것이다.

박완서가 세상을 떠난 후에 출간된 <기나긴 하루>에는 단편 소설 6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 3편은 문예지를 통해서 발표는 되었지만, 책으로 묶여지지 않았던 소설이고, 나머지 3편은 평론가 김윤식, 소설가 신경숙, 김애란이 추천하는 소설이다.

그중의 <빨갱이 바이러스>는 역시 박완서의 단골 소재인 한국전쟁, 빨갱이가 등장한다.

우연히 만난 세 여인이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들은 언제 다시 만날 사람들이 아니기에 솔직하게 자신의 내면 속에 숨겨졌던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것이다.

엄청난 이야기 속에는 박완서가 그리도 치명적으로 생각했던 빨갱이 바이러스가 존재하는 것이다. 짧은 소설 속에도 녹아 있는 빨갱이 바이러스는 그녀가 평생을 짊어지고 살았을 바이러스임을 자각하게 된다. 또다른 이야기인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는 그동안 작가가 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다루었던 여자들의 심리 묘사가 기막히게 잘 표현되어 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딸과 친정어머니.... 며느리 입장일 때와 딸 입장일 때가 다르고, 시어머니일 때와 친정 어머니입장일 때가 다른 것이 여자들의 모습이 아닐까....

딸이면서 며느리, 시어머니이면서 친정어머니라면 누구나 느꼈을 그런 소통에 관련된 이야기가 잘 표현되어 있어서 여자들이라면 자신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소설이다.

'신경숙'은 자신의 소설인 <모르는 여인들>에서도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데,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도 역시 소통할 수 있는 입장과 소통이 단절되었을 때의 입장을 생각해 보게 해 준다.

이 책 속에 3편의 추천작 중에 작가 '신경숙'이 추천하는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1993년작품>은 아마도 박완서의 작품 중에서도 독자들에게 많이 읽힌 소설일 것이다. 이 소설은 작가가 아들을 잃은 후에 그 아픔으로 집필을 하지 못하다가 그 심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질투가 될 수 있음을 말해줄 때는 가슴이 찡해짐을 느끼게 된다.

박완서는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다정다감한 듯하면서도 때론 잘못하는 점이 있으면 호되게 꾸짖기도 하는 그런 느낌을 주는 작가이기에 우리들의 어머니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반하여 오래전부터 작가들의 작품을 따라 읽었기에 오래된 친구처럼 느껴지는 작가로는 신경숙 작가와 황석영 작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두 작가의 작품은 세월을 뛰어 넘어 언제든지 책이 출간되면 서둘러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런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신경숙'의 <모르는 여인들/ 문학동네 ㅣ 2011>

신경숙의 작품은 거의 빼놓지 않고 읽었기에 너무도 익숙하다. <모르는 여인들>은 그동안 작가가 침울하거나 혼란스러울 때마다 써 두었던 단편 소설 7편이 실려 있다. 장편소설은 장편소설대로의 느낌이 있고, 단편소설은 단편소설대로의 느낌이 있다.

이 책에 실린 단편소설은 짧은 호흡으로 읽어내려가기는 하지만 읽은 후의 여운은 장편소설보다 더 길게 남는 소설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린 어쩌면 모두가 모르는 사람들이 아닐까 !'

하기야, 내가 나를 잘 모르는데, 상대방이 어떻게 나를 알 수 있겠는가?

우리는 소통의 단절, 소통의 부재 속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았던가?

또한,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우리들은 언제부턴가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다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입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단절, 서로가 이해를 하지 않으려는 생각에서 오는 불통이 아닐까 한다.

7편의 단편 중에 <세상끝에서의 신발>,< 어두워진 후에>,< 모르는 여인들>에는 신발, 맨발 등이 등장한다. 삶의 가장 내밀하면서도 누추한 것이 맨발, 신발이 아니던가? 자신의 무게를 짊어진 그 부분들을 이야기함으로써 관계맺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신경숙의 소설에는 맛깔스러운 음식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어떤 책이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여자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면서 봄나물을 맛깔스럽게 무쳐 놓았는다. 그 나물 무치는 과정을 설명해 주면서 기다림을, 무쳐 놓은 나물의 색이 추하게 변색해 감을 통해 연인들의 결별을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처럼 신경숙은 음식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그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고, 사랑함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내가 K 선생님에게서 느꼈던 그 마음을 보는 듯하다.

내 추억 속의 그때는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었던 때이다. 교사들도 교무실에서 도시락을 먹어야 했다. K 선생님의 시어머니는 선생님을 위해서 점심시간에는 도시락을 싸 주셨는데, 보통 도시락이 아니었다.

점심 시간에 맞추어서 따뜻한 도시락을 가져다 주셨는데, 큰 찬합에는 가지 가지 반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모든 선생님들은 그 도시락을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보셨다. 가까이 앉은 교사들끼리 나누어 먹던 점심 도시락.

그중에서도 여름날이면 밭에서 딴 호박으로 부쳐낸 호박전, 겨울이면 김치전, 때에 따라 잡채를 비롯한 별미 반찬.

신경숙의 소설을 읽으면서 음식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그 선생님이 내밀던 맛있는 음식들을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그 따뜻했던 선생님의 손길을....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서, 내가 신경숙의 소설들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일상 속의 묘사가 사실적이면서도 섬세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느낄 수없는 미세한 부분까지도 놓치지 않고 묘사하는 관찰력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녀의 작품 속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이고, 나의 이야기같으면서도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항상 내 말만 들어주기를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의 마음이나 아픔보다는 나의 마음을 더 드러내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선을 넘게 되면 그때는 상대방과의 소통보다는 입을 닫아 버리고 체념해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 책속의 주인공들도 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소통의 단절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소통의 단절 속에서 서로 무관심하게 살아가다가 어느날, 어느 사건을 계기로 그때서야 상대방을 생각하게 되는 그런 안타까움이 있다.

이 7편의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가족을, 그리고 우리 주변의 내가 아는 그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아프면 아프다고, 마음이 울적하면 울적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인간관계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함께.

' 황석영'의 < 낯익은 세상 / 문학동네 ㅣ 2011>

황석영의 소설로는 <삼포가는 길>이 그즈음에 읽었던 소설이다. 그후에는 <오래된 정원>, <모랫말 아이들>을, 그리고 최근의 작품으로는 <개밥바리기별>, <바리데기>, <강남몽>을 읽었다.

<모랫말 아이들>, <개밥바라기별>, <바리데기>,<낯익은 세상>들은 모두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낯익은 세상>의 장소적 배경인 쓰레기 처리장인 꽃섬.
작가는 이 소설의 배경을
" 이 작품에 드러나 있는 풍경은 세계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매우 낯익은 세상이다. 지옥 또는 천국처럼 낯선 것이 아니라 너무도 일상적으로 낯익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여기까지 달려오면서 만들어낸 세계이기 때문이다." (p234- 작가의 말 중에서)
" 내가 도시 외곽의 쓰레기장에 주목한 것은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의 삶이 끝없이 만들어서 쓰고 버리는 욕망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 " (p235- 작가의 말 중에서)
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작가의 이런 마음을 알기 전에는 이 소설의 배경이 낯설기만 했다. 그러나, 작가의 배경 설명으로 낯익은 세상이란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다가 필요없어서 버린 물건들이 뒹글어 다니는 쓰레기 하치장의 모습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일반인들에게는 쓰레기같은 (?) 삶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카산드라의 거울>에서도 쓰레기 하치장이 소설의 배경이 되었기에 조금은 낯익은 듯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들에게는 멀고 낯선 세상이 바로 낯익은 세상인 것이다.
꽃섬에서 만나게 되는 두 소년 딱부리와 땜통.
산동네에 살다가 엄마와 함께 쓰레기차에서 버려지는 쓰레기처럼 꽃섬에 흘러 들어오게 된 딱부리.
그리고, 쓰레기 하치장의 반장인 아수라의 아들인 땜통.
이 두 소년은 더럽고 삭막한 이 곳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고, 거기에 도깨비와 같은 김서방네 꼬마까지 등장하게 되면서 이야기는 무르익게 된다.
<개밥바라기별>이 성장소설인 것처럼, <낯익은 세상>도 딱부리와 땜통의 성장소설인 것이다.
꽃섬을 벗어나면 그 누구도 반기지 않는, 아니 오히려 그들에게서 나는 냄새때문에 혐오감을 느끼게 되는소년들이지만 두 소년에게는 그들만의 일상이 있고, 그 일상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가장 가난한 곳이지만 가장 풍요로운 곳이 꽃섬일 수도 있으며, 그 꽃섬에서 살기에 다른 소년들이 느끼지 못하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작가는 그동안 자신의 작품에 소외된 곳의 이야기를 담아 냈듯이 이번에도 꽃섬에서 맑고 고귀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 내는 것이다.

내 추억 속의 작은 시골 중학교의 학생들을 지금도 가끔씩 생각한다. 도시락을 못 싸오던 아이, 공납금을 못내던 아이, 고등학교 입학을 할 수 없었던 아이...

그런 가난한 아이들을 보아 왔기에 <낯익은 세상>의 이야기가 더 공감이 가는 것이다. 물론, 꽃섬처럼 쓰레기 처리장은 아니었지만, 가난이 얼마나 뼛 속 깊이 스며드는 아픔이었는가를 조금이나마 알게 해 주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 아이들, 보고싶다~~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 문학동네 ㅣ 2010>

만약, K 선생님이 '김훈' 작가의 소설을 읽는다면 <칼의 노래>, <남한산성>보다는 <내 젊은 날의 숲>을 좋아하실 것 같다. 그만큼 순수하고 맑은 분이시기에.

나는 역사소설을 좋아한다. 그래서 <칼의 노래>,< 남한산성>을 읽었지만, 이 소설들은 역사 속의 인물들의 영웅적인 모습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가지게 되는 인간적 고뇌와 번민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작가의 새로운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그렇지만, 나도 '김훈'의 소설 중에는 <내 젊은 날의 숲>을 훨씬 더 좋아한다.

소설 속의 한 문장, 한 문장은 아주 아름답다. 그 문장들이 모여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청정지역과 같은 소설을 만들어 낸다. 자연과 합일을 이룰 정도로 세밀하고도 날카로운 관찰이 토대가 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것이다.

이 소설은 한 권의 에세이집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문장 문장이 가슴에 와서 꽂힌다. 그 어떤 문장도 군더더기 없이 쓰여져야 할 내용이 적확하게 씌여졌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 준다.

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허세에 찬 할아버지에서 안요한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을, 아니 겨울을 닮은 것처럼 쓸쓸하고 외로워 보인다.

서로가 잘못 얽힌 관계이며,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한 것처럼....

그러나, 그 외로움의 색깔은 각각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하고, 그 외로움을 나타내는 방법도 다른 것이다. 아니, 인간은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외로운 존재들이기에 이렇게 자연의 묘사가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김중위가 내민 명함 한 장. 그것은 또 다른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대로 가방 속에 오래도록 담겨 있다가 정리되는 한낱 종이일 수도 있다는....

화자인 연주에게 '젊은 날의 숲'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숲의 자연 속에서, 그리고 또다른 인연들과의 관계에서 꽃처럼 아름다운 그 무엇을 얻을까. 아니면, 그 이전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인가. 독자들은 그들의 수준에서, 그들의 시각에서 나름대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주인공인 연주의 ' 내 젊은 날의 숲'이라기 보다는 약 1년 여의 시간을 전국 방방곡곡의 숲을 벗삼아 다닌 김훈 자신의 '내 젊은 날의 숲'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책 속의 아름다운 문장들이 아직도 '쟁쟁쟁' 울린다.

' 한강'의 <희랍어 시간 / 문학동네 ㅣ 2011>

'한강'은 <희랍어 시간>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작가이다. 그녀는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눈물상자>를 비롯한 동화와 소설은 그이후에 읽게 된 작품들이다.

그만큼 <희랍어 시간>이 준 감동이 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강의 글은 어떤 작가의 글에서도 느낄 수 없는 평범하지 않은 문체가 돋보였고, 어떤 문장들은 마치 시처럼 느껴질 정도로 감성적이었다.

이 소설은 내용도, 주인공도 평범하지 않다. 인문학 아카데미 희랍어 수업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남자와 여자.

희랍어, 그것은 오래 전에 죽은 말, 구어(口語)로 소통할 수 있는 말이다. 두 사람은 신체적으로 완전하지 못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남자가 시력을 잃어가는 것은 운명적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고, 여자가 말을 잃어 가게 된 것은 마음의 상처가 가져다 준 의지적인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마음에 큰 멍울이 한가득 차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왜 희랍어 시간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을까. 소설 속에서 두 사람은 지금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기 보다는 그들의 지난 날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주게 된다.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남자는 희랍어 수업을 통해서 만났고,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그들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들은 희랍어 시간을 통해서도 어떤 공감을 느끼지도 않았었다.

그들에게는 흘러가 버린 시간들, 지나간 세월 속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흔적들은 사라져야만 하는 것이다.

어느날 두사람이 새의 출현으로 겪게 되는 장면들에서 그들은 새로운 인연으로 만나게 되고, 서로가 상대방의 모습에서 서로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게 되고, 그것이 새로운 인연의 기쁨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3인칭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독자들은 남자와 여자를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옥같은 5편의 소설.

혼자 읽기보다는 함께 읽으면 훨씬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책들.

K 선생님은 아직도 열심히 책을 읽으실 것이다. 미국에서도 한국 소설을 구입할 수는 있으니, 우리나라 소설을 꾸준히 읽으시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내 마음이 담긴 이 5권의 소설책을 선물로 드리고, 그 감동을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과의 연락은 이미 끊어졌다. 지금도 민구와 정화라는 아들과 딸의 이름 석 자를 알고 있는데...

선생님, 보고 싶다. 그리고 함께 책을 읽고, 그 감동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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