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예쁜 것 - 그리운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박완서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박완서 작가가 우리곁을 떠난지도 2년이 가까워 오고 있다.

그동안 출간되는 책들마다 따라 읽다 보니, 박완서 작가의 글들은 어떤 책에선가 읽었던 글들을 다시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익숙하기에 새롭다는 생각은 가질 수가 없다.

박완서 작가를 말할 때에 따라 다니는 수식어는,

'불혹의 나이에 등단하여, 등단할 때의 나이만큼인 40년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는 작가'라는 것이다.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도 2010년에 출간되었으니,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 어떤 작가 못지 않은 글 욕심(?)이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내가 가장 먼저 읽었던 박완서 작가의 작품은 <휘청거리는 오후>였다.

우리집은 딸부자집이고, 언니들이 있었기에 집에는 항상 이슈가 되는 책들이 많았다. 언니가 책을 읽고 있으면 옆에서 지켜 보고 있다가 내가 읽을 차례가 되면 읽곤 했는데, 어떤 책의 경우에는 그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좋은 책이 있으면 다음은 누가 읽을 것인지 차례를 정해 놓곤 했었다.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이나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과 같이 자매들의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에는 소설 속에서 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있게 읽게 되기도 했다.

마치 우리들이 소설 속의 몇 째 딸의 경우가 되는 것처럼.

그래서 <휘청거리는 오후>의 경우에도 소설 속의 주인공들인 초희, 우희, 말희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그녀들의 가치관과 삶의 모습에 관심이 가는 것이었고, 이 소설을 더 흥미롭게 읽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휘청거리는 오후>로 시작된 '박완서의 책 읽기'는 계속되었고, 작가의 작품 인생 40년을 고스란히 지켜 보게 되었던 것이다.

박완서의 글들은 개인사와 가족사를 중심으로한 일상의 편린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에서 많이 등장하는 작가 어머니의 유난스러운 교육열로 인한 성장기의 이야기, 6.25 전쟁시에 황량한 도시 서울에 남겨져서 겪어야 했던 아픔의 흔적들, 그리고 88 올림픽으로 들뜬 대한민국에서 잇달아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 곳으로 보내야 했던 아픔들....

그 중에서도 박완서의 작품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6.25 전쟁 일 것이다.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 " 6.25를 소재로 한 작품들에 대해선 비극적인 가족사를 반복적으로 우려 먹는다는 평' ('기나긴 하루'중에서 p. 34)

6.25의 경험이 없었으면 내가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나도 느끼고 남들도 그렇게 알아줄 정도로 나는 전쟁 경험을 줄기차게 울궈 먹었고, 앞으로도 할 말이 얼마든지 더 남아 있는 것처럼 느끼곤한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p. 24)

작가의 소설, 산문 등을 접해 본 독자들은 그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신선하다기 보다는 때론 식상하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또한, 작가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는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너무 속물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박완서의 작품을 읽으면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개인의 이야기같지만, 곱씹어 보면 우리 사회의 이야기이고, 우리가 한 번쯤은 우리 사회를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박완서 작가의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혜안과 그것들을 평이한 일상의 이야기로 맛깔스럽게 옮겨 놓는 날렵한 필치를 좋아하는 것이다.

작가의 생전의 마지막 산문집인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그리고 마지막 단편집인 <기나긴 하루>를 끝으로 이제는 생생 작가의 글들을 못 읽을 줄로 알았다.

그런데, 반갑게도 작가의 노트북 바탕 화면 속에 2편의 글이, 책상 서랍 속에 잘 정리해서 모아 놓은 글들이 있었다고 하니, 아마도 작가는 곱게 간직하다 몇 편의 글들을 더 써서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싶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속의 내용 중에,

'박완서 작가의 문학 강좌 대담론 - 문학인생'에서는 작가에게 독자들이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싣고 있다. 박경리 작가 1주기에 토지문학관에서 열린 대담을 그대로 실은 것이다.

그동안 박완서는 유니셰프 활동을 하였기에 '유니셰프 세계 아동 현황 보고서 주제 발표문' 실려 있다.

그런데,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행사에서 읽기로 된 현황 보고서를 함께 읽기로 한 연예인이 불참한다는 통보를 받고, 어떻게 그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지루하지 않게 읽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내용의 글은 작가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기도 하다.

초등학생 김호중 어린이커서 작가가 되고 싶어서 그에 대한 질문을 보내왔는데, 거기에 대한 답신도 이 책 속에 실려 있다.

특히 사랑하는 손자에게 보내는 글.

그리고 법정스님, 김수환추기경, 장영희, 박경리 등을 기리면서 쓴 글들은 작가의 폭넓은 인간관계를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고, 존경하는 분들을, 선배를, 후배를 먼저 보내는 슬픔이 묻어 나기도 한다.

이 책 속의 글들은 2000년이후의 글들이기에 작가의 노년의 글들이다.

박완서 작가가 마지막으로 쓴 글이라는 '깊은 산 속 옹달샘' 우리사회를 생각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 작은 옹달샘도 차면 어차피 흐르게 돼 있다. 낮은 곳으로 흘러 흘러 마침내 큰 강에 이르렀지만 큰 강은 이미 오염 물질로 더럽혀져 죽어가고 있다. 사람의 목숨에도 생과 사 사이에는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임계점(臨界點)이라는 것이 있듯이 죽어가는 강에도 그런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함부로 오염시켜도 아직은 강이 아주 죽지 않고 살아날 가망이 있는 건 작지만 어디선가 졸졸 흘러드는 맑은 물이 아슬아슬하게 강의 임계점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나라 어느 사회나 어디엔가 높은 정신이 살아 있어야 그 사회가 살아 있는 것과 다름없는 이치라고 생각한다. 2010년" (p. 208)

박완서 작가는 우리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글들은 오래 오래 독자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작가의 글들은 너무도 낯익은 글들이기에 새롭다기 보다는 익숙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삶 속에서 얻은 소재와 주제로 어렵지 않은 글들로 그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글들을 쓰셨지만, 그 글 들 속에는 우리 사회를 세심하게 재조명해 볼 수 있는 힘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리고 앞으로도 그 사랑이 꾸준히 이어질 수 있는 작가가 아닐까 한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을 마지막으로 작가의 새로운 글을 접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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