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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평점 :
2011년에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한국 작가의 책 중에 <두근두근 내인생>과 <7년의 밤>이 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고, 아니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고....
김애란과 정유정은 그렇게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다.
나 역시 2011년이 끝나면서 두 작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히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은 17살의 조로증 소년의 이야기로 조기 노화현상에서 오는 아픔과 어느날 살며시 찾아오는 사랑의 감정 등을 '두근두근' 잘 표현한 작품이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에게 아름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무심히 지나쳐 버리는 것들을 누군가는 간절히 소망하고 있으니, 그런 것들을 가진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말해주고 싶기도 한 작품이다.
김애란의 소설은 <두근두근 내 인생>만을 읽어 보았기에, 다른 작품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작가는 2008년부터 2012년에 이르기까지 각종 문예지 등에 발표했던 8편의 단편소설을 모아서 <비행운>이란 책을 펴냈다.
비행운...
비행운( 飛行雲)? 비행운 (非幸運)?
과연 작가는 어떤 비행운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
" ‘비행운’은 새로운 삶을 동경하는 형식으로(飛行雲), 하지만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연쇄적 불운(非幸運)에 발목 잡힌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출판사 서평 중에서)
책제목인 '비행운'은 이렇게 중의적인 표현인 것이다.
이 책 속에 실린 8편의 단편소설들의 주인공들의 삶이 말해주듯이, 그들의 삶은 고단하고 힘들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들...
특히 <물속 골리앗>에 나오는 모자의 이야기는 너무도 처참할 정도로 갈갈이 찢기워지는 삶의 모습을 대하게 된다.
철거를 한 재개발 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숨죽이며 살고 있는 가족, 아버지는 체불 임금을 받으려고 크레인 위에 올라가서 시위를 벌이다가 실족사하게 되고, 어머니와 함께 텅빈 재개발 지역에서 나가지 못하고 살아가는 하루 하루의 삶의 모습, 누군가가 버리고 간 유기견이 서서히 굶어 죽는 소리를 들어 가면서, 전기와 수도가 끊겨서 어둠 속에서 굶주리며 생계를 유지하는 모자.
그들에게 닥친 폭우는 모든 것을 삼키듯이 휘몰아치고....
어머니를 모시고 그 속을 빠져나가려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되고, 어머니의 사체와 함께 탈출을 시도하면서 죽음과 싸우는 소년의 이야기는 마치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를 다시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마지막 작품인 <서른>은 서른이란 나이가 가져다 주는 감상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에 읽게 되었지만, 그 속에는 우리 시대의 청춘들의 자화상 그 보다 더한 자화상이 담겨 있다.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에 20살 재수생 시절에 '노량도' (노량진, 합격해야 나갈 수 있다고 해서)의 쪽방에서 만났던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이야기이다.
" (...) 저는 지난 10년간 여섯 번을 이사를 하고, 열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 어 명의 남자를 만났어요. 다만 그랬을 뿐인데, 정말 그게 다인데. 이렇게 청춘이 정말 가버린 것 같아 당황하고 있어요.
(...) 이십대에는 내가 뭘 하든 그게 다 과정인 것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게 결과일 따름인 듯해 초조하네요 (...) " (p. 293)
그녀에겐 꿈많던 소녀시절이 이렇게 고단한 인생, 나쁜 일들의 연속, 헤어나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어느날 옛 남자 친구의 꼬임으로 '선진국형 신개념 네트워트 마케팅(다단계 판매)에 들어가게 되고, 그 남자 친구의 꼬임은 그녀를 그곳에 끌어 들이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그 집단에서 감금당하고 감시당하면서 다단계 판매를 하게 되고, 그 마지막 단계는 누군가를 그 집단에 끌어 들이고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녀의 옛 남자 친구가 그렇게 그녀를 배신했듯이, 그녀 역시 거기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 자신이 학원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그녀를 잘 따르던 제자를 그곳에 대신 끌어들이는 것으로 탈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소설 속의 인물들은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변변한 직업이 없는 사회에서 기를 펴고 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비행운(飛行雲)을 보기를 원하는, 동경하는 사람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비행운(非幸運)의 악순환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
"김애란의소설에서 대개 비행운의 꿈은 아이러니컬하게 구조화된다. 비행운의 꿈을 꾸면 꿀수록, 그러니까 비행운에 대한 동경이 핍절할수록, 비행운(非幸運)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비행운(飛行雲)과 비행운(非幸運)사이의 속절없는 거리에서 작가 김애란은 우리 시대의 의미심장한 서사 단층을 마련하고, 감동적인 이야기 그물을 짠다. 비행운 (飛行雲) 구름 그림자에 가려진 비행운(非幸運)의 속사연을 웅숭깊게 펼친다." (우찬제의 해설 중에서, p. 323)
작가의 8편의 단편을 읽으며서 때론 징그러운 벌레가 나와서 판을 치고 다니기에, 가난한 인생들의 이야기가 암울하기에, 불행에 불행이 거듭되기에, 이렇게 지지리도 운도 없는 인생들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소외된 이웃에 대한 생각과 배려의 마음을 가져 보게 되는 것이다.
(사진출처 : Daum 검색, 한겨레 신문 기사 중에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처럼 후줄근한 이야기를 작가 나름의 필치로 잘 표현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