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냉장고 - 가전제품회사가 알려주지 않는 냉장고의 진실
KBS <과학카페> 냉장고 제작팀 지음 / 애플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집에 냉장고가 처음 들어오던 날을 기억한다. 그때는 학기초가 되면 가정환경 조사서를 써오라고 했는데, 거기에는 자신의 집에 있는 물건들에 대하여 체크하는 항목도 있었다.

자가용, TV, 냉장고, 피아노, 전축 등이 거기에 해당되었는데, 선생님들은 가정환경 조사서의 항목들에 얼마나 많이 체크가 되어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 종례시간에 각 항목에 해당하는 아이들은 손을 들도록 했다.

'집에 자가용이 있는 사람, 손들어 봐' 이런 식으로...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 없는 일이고, 학생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행동이었지만, 거의 모든 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냉장고가 있는 사람은 손들어 봐 '라고 하셨으니, 냉장고는 가정의 필수 가전제품이 아닌,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니, 우리집에 냉장고가 생기던 그 날은 하늘을 날아갈 듯이 기분 좋은 날이었던 것이다.

수박 화채를 먹으려면 얼음 가게에 가서 얼음을 사서 그 그릇에 넣고, 바늘과 망치를 가지고 깨뜨려서 넣어야 했지만, 냉장고가 생기면서 얼음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었고,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샤베트나 아이스크림도 만들어 먹을 수 있었으니, 정말 신나는 일일 수 밖에 없었다.

그때는 여름에는 냉장고를 가동시키고, 겨울에는 꺼 놓는 집들도 많았다.

우리나라의 기술로 만든 최초의 냉장고의 용량이 120리터라고 하니, 그 정도 밖에는 안 되었을 것이지만, 이런 냉장고는 가정의 귀중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한가?

가족형태는 핵가족화, 1인 가정으로 형성된 집들이 많은데도, 냉장고는 대형화가 되어 가고 있다. 양문형은 기본이고, 냉장고 용량도 2012년에는 910리터까지 생산되고 있으니, 거기에 조금 못 미치는 대형 냉장고가 각 가정에는 떡하니 놓여 있는 것이다.

그것 뿐인가, 김치 냉장고도 있는 것이다.

가끔씩 연예인들의 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의 집에는 대형 냉장고도 1개가 아닌 2개에 김치 냉장고도 2개 정도가 놓여 있는 것이다.

대관절 왜 그렇게 큰 냉장고가 몇 개 씩 필요한 것일까.

도시에서는 몇 분만 나가면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이 자리잡고 있는데....

바로 이런 이야기에서 출발한 것이 KBS <과학카페>에서 다루게 된 '냉장고의 두 얼굴'인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TV로 보지는 않았지만, 책으로 출간되었기에 호기심에 읽게 되었다.

'과연 우리 가정의 냉장고에는 어떤 물건들이 들어 있을까?' 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사례자 경림씨의 집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약 2시간에 걸쳐서 680 리터급 양문형 냉장고 속에 들어 있는 물건을 끄집어 냈다.

냉동실에는 2년된 동치미, 3년된 묵은 동치미, 4년이 지난 소시지, 심지어는 5년된 막대사탕까지 나왔다.

냉장실에서는 쉰 가지 이상의 반찬이 나왔는데, 채소칸에서는 서른 가지가 넘는 음식 재료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종류만 약 150가지

엄청나지 않은가. 그래서 제작진은 이 냉장고에 들어 있는 물건만으로 식생활을 해 보도록 주문을 하였다. 며칠동안 시장을 보지 않고 그럴듯한 식사를 할 수 있었을까. 무려 40일간을 냉장고 속의 물건만으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거창하게 경림씨의 냉장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은 차이는 있겠지만, 각 가정의 냉장고는 이렇게 포화상태이고, 언제적 음식인지도 모를 음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냉장고를 식재료나 음식을 보관하는 만능으로 과신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집은 그렇지는 않다. 최소한의 식재료만을 냉동보관한다. 되도록이면 그때 그때 사서 음식을 장만하는 하려고 하기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위암 사망율이 낮아졌다고 한다. 그것은 과일 섭취량이 늘어나게 된 것과 냉장보관을 할 수 있으니, 음식의 염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은 이와같이 냉장고의 대형화 추세를 추적하다 보니, 냉장고의 역사, 음식, 건강, 질병, 과학기술, 경제적인 가치, 전 지구를 지배하는 시스템의 문제, 현대인의 욕망과 습관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고찰을 한다.

그중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는 뉴욕의 프리건 이야기이다. 소비의 천국이라는 뉴욕의 맨해턴에 밤이 되면 대형 검정 비닐 봉지들이 등장하게 된다. 쓰레기 봉투이다. 이것을 뒤지는 사람들이 프리건이다.

떼거지~~ 아니 꽃거지...

아니다. 그들을 거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버젓이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도 있다. 인간의 욕망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가 버려지는 쓰레기들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해주는 자들이다.

어떤 쓰레기 더미에서는 베이글이 몇 백개씩 튀어나오고, 먹을 수 있는 사과도 그대로 버려지는 것이다.

" 어떤 사람들은 우리 프리건들이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음식을 먹는 걸 보고 역겹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하지만 진짜 역겨운 것은 계속해서 나오는 많은 쓰레기에요. 쓰레기 다이빙을 하면 보통 이 정도의 양이 나와요. 엄청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현재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거죠. " (p.188)

또 특이한 사진작가의 이야기도 나온다. 3년 6개월동안 누군가의 냉장고를 찍어 온 사진작가이다.

" 냉장고 안을 보면 자연히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을 내리게 되는데. 그건 편견에 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하지만 냉장고는 겉보기보다 더 심오한 개개인의 일상을 담고 있다. 마치 사람에게 겉모습과 다른 참 모습이 숨어 있는 것처럼. 냉장고는 그 사람을 보여주는 거울, 그 이상의 현실을 비춘다." (p.217)

냉장고는 잘 이용한다면 우리의 삶을 편안하게 해 주지만, 지금처럼 경쟁적으로 커져만 간다는 것은 인간의 욕망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비우듯, 각 가정의 냉장고도 되도록이면 비우고, 비울 수 있으면 좋겠다.

작은 냉장고, 속이 꽉 찬 냉장고보다는 빈 공간이 많은 냉장고가 아름다운 그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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