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말리온 아이들 창비청소년문학 45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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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가 상당히 인기 있었던 청소년 소설이지만, 그 책을 읽지를 못했다. 그리고 <아가미>도.

그렇기에 소설가 '구병모'가 남성 작가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여성작가이다.

그녀의 소설 중에 첫 번째로 읽게 된 <피그말리온 아이들>

그동안 '피그말리온 효과'무엇인가를 알고 있었기에, 이 소설을 접할 때는 제목만으로 해피엔딩을 생각했었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흔히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로 해석된다.

그 유래는 그리스 신화에 있다.

키프로스의 왕이자 조각가인 '피그말리온'은 상아로 '갈라테이아'라고 하는 여인상을 조각한다.

원래 '피그말리온'은 여성들의 결점을 많이 알고 있었기에 여성을 좋아하지는 않았기에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갈라테이아'라는 조각상을 만들 때는 자신의 취향을 충실히 반영한 이상형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피그말리온'은 신에게 간절히 기도를 한다. 그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던지 상아 조각상은 인간 '갈라테이아'로 환생하게 된다.

(그림검색: daum: 장 레온제롬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그래서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것이 '피그말리온 효과'인 것이다.

그러니 <피그말리온 아이들>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생가할 수 밖에...

이 청소년 소설을 읽은 후의 느낌은 우울하고, 서글프고, 세상의 어두운 한 단면에 부딪혔지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어른들의 세상이 부끄럽기만 하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마치 '공지영'의 <도가니>를 다 읽은 후에 느낌가 흡사하다. 사회의 불의를 알고 있지만, 어찌 할 수 없는 그 암담함이 마음을 콱 막는 듯하다.

<도가니>는 출간될 당시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임에도. 왜 정부는, 사회는 이런 상황을 모두 눈감아 주거나, 아니 동조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고, 다행히도 <도가니>가 영화화되면서 사회의 수면 위로 떠 올라서 어느 정도의 시정이 이루어지기는 했다.

그러나 <피그말리온 아이들>은 가공의 세계인 소설 속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뉴스 등을 통해서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방송되기도 했지만, 아직도 어딘가에서는 선의 탈을 쓴 악마들에 의해서 이런 상황이 자행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가슴이 답답해 지는 것이다.

소설 속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면,

낙인도라는 작은 섬에는 로젠탈 스쿨이라는 학교가 있고, 약간의 주민만이 살고 있다. 로젤탈 스쿨은 일반학교와는 다른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이 곳에 온 학생들은 소위 말하는 불리한 환경에서 태어났거나 성장한 아이들이다. 범죄자의 자녀이거나 고아가 대부분이다.

학생들은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누군가에 의해서 이 학교로 들어 오게 된다. 그리고 이 곳에서 체계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게 된다.

'너희들은 무한한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학교의 보호를 받게 된다.

학생들에게는 '부모가 간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 정직하게 빌어 먹는 일꾼이 될 것인가?'라는 두 갈래 길에서 후자를 선택하게 되고, 그래서 학교의 시스템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너의 부모와 다른다. 너희는 너희 그 자체다.가난도 범죄의 대물림도 끊고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 날 수 있다. 너희는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그걸 실현할 수 있다. " (p. 94)

그러나, 정말로 '로젠탈 스쿨'은 불우한 환경에 놓인 학생들을 올바르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곳일까?

이곳의 학생들을 취재하기 위해서 마 피디와 곽이 찾아 오게 되면서 '로젠탈 스쿨'에 감추어진 진실들이 조금씩 밝혀지게 된다.

마 피디는 얼마 전에 학교를 취재하던 중에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던 여학생을 도와주지 못했는데, 그 여학생은 얼차려 도중에 호흡곤란으로 사망을 하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마 피디는 그후에 심한 트라우마에 빠지게 되고...

그후에 취재하게 되는 학교가 '로젠탈 스쿨'이다. 이 학교는 기업에서 운영하는 학교인데, 어딘지 석연치 않은 점들이 많이 있다.

학생들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르는 로봇처럼 느껴질 정도로 자유롭지 못하다. 학교 수업이외에도 그들은 노동을 하기도 하는 듯하다.

식사후에는 알 수 없는 알약을 먹게 하는 것이 목격되기도 한다.

엄격하게 통제된 철장 속에 갇힌 죄수같기도 하고, 누군가의 지시를 전달받는 훈련된 로봇같기도 하고...

조금씩 드러나는 학교의 실체와 학생들의 생활, 졸업후에도 학교에 얽매여 있는 그들.

취재를 통해 학교의 지시에 따르지 않아서 지하실에 갇혀 있는 아이들까지 발견하게 된다.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이들을 구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하지만, 이런 사실을 은폐하도록 하는 지시가 떨어진다.

결국에 마 피디가 이들 학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 이 아이들은 모두 갈 데가 없습니다. 성인이 되고 자립하기까지,여기가 집입니다. 뼛속 깊이 여기에 적응하고 있어요. 어느 쪽이 아이들을 위하는 길인지 생각해 보시지요. 어디가 풀려나는 곳이고, 어디가 묶여 있는 곳인지를요. 다시 말하지만,아무런 대안없이 이 아이들을 길바닥에 풀어 놔 보았자 갈 곳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여기서 자신들의 능력껏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거나 기대 목표를 성취하지 못해서 일정 부분 제재를 가하는 일이 없지야 않겠지만 다른 학교라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기준과 방식에 따라 생활하는데 당신들의 기준을 우리한테 갖다 끼워 맞추고서 그것이 폭력이니 아니니를 따진다는 것 무의미합니다. " (p. 241) - '로젠탈 스쿨 교장의 말

피그말리온 효과에서 조각상은 인간 갈라테이아가 되었지만, 그녀는 과연 그녀의 의지대로 살 수 있었던 것일까?

'로젠탈 스쿨'의 학생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 갈라테이아와 결코 다르지 않은 것이다.

세상에는 부모와 교사, 또는 누군가의 갈라테이아들이 있는 것이다.

피그말리온의 욕망에 의해서 만들어진 갈라테이아처럼.

자신의 욕망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피그말리온(독재자)들이 있는 것이다.

로젠탈 스쿨의 학생들은 누군가의 욕망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피그말리온의 소유가 된 로봇인 것이다.

그 누군가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기에 피그말리온의 지시에 따라 살고 있는 것이다.

노동의 댓가로 숙식을 제공받으면서, 어떤 불의의 상황에서도 묵묵히 악마의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졸업을 한다고 해도, 그들은 학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달이 학교에 돈을 보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불의가 판치는 세상. 그런 상황이 불의, 부정, 인권말살 등인 줄 알고 있으면서도 지도층은, 사회는 그것을 모르는 척 눈감아 주는 것이다.

'로젠탈 스쿨'의 그물에 갇힌 그 순간부터 그들은 피그말리온의 아이들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말살된 피그말리온의 욕망에 의해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권리를 박탈당하게 되는 것이다.

<도가니>와 너무도 닮은 이야기.

암울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일 수도 있는 이야기. 그래서 이 소설을 마지막 장을 넘기는 손은 떨리고, 마음은 안타까운 것이다.

이제껏 우리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지만, 조각상 갈라테이아는 조각가 피그말리온의 이상과 취향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같은 현상에 대해서 이렇게 색다른 소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도 작가의 아이디어가 참신하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또한,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그런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부모에게서 고의이든, 아니든 버림받은 아이들.

그래서 그 누군가는 그 아이들을 이렇게 함부로 다루어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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