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카트 멘쉬크 그림 / 문학사상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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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중에서 신간서적이기에 선뜻 구입한 책이다. 어떤 내용인지도 모른채로.

그만큼 하루키의 책에 대한 신뢰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큰 기대를 하고 읽었던 <상실의 시대>를 읽고 '이게 뭐지?' 하는 그런 느낌은 그의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어떤 이야기를 풀어 놓아도 '하루키답다 ' 하는 생각으로 바뀐 지 오래 되었다.

<잠>은 하루키의 신작 소설은 아니다. 단편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긴 중편소설 정도의 분량의 소설이다.

책의 페이지 수는 100 쪽이지만, 일러스트, 작가후기까지 포함되니, 내용은 그 쪽수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 <댄스 댄스 댄스> 2편의 장편소설이 성공을 거두게 된 후에, 마음이 얼어 붙었다고 한다. 소설을 쓸 마음도 나지 않아서, 소설을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때의 하루키 나이가 마흔을 맞았을 때이니, 성공후의 후속작에 대한 두려움과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마음의 경직, 나이가 가져다 주는 억압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당시 (1989년) 그는 로마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봄날 단숨에 2 편의 소설을 쓰게 되는데, 그것이 <잠>과 < TV피플>인 것이다.

그후 독일의 일러스트레이터인 '카트 멘쉬크'가 이 소설에 일러스트레이션을 하였다.

그래서 <잠>을 일컬어 '하루키 소설과 일러스트의 만남' 또는 '소설 ×아트'라고 말한다.

그런데, 거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루키는 다른 작품들도 단편소설일 경우에는 출간 후에 세월이 많이 흐르면 작품을 손보기도 하는데, 이 작품을 2010년에 '버전업'하였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의 책상 앞에 놓이게 된 <잠>이 탄생하게 된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최소한 몇 번쯤은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내 보았을 것이다. 그 보다도 더 심한 경우에는 불면증에 시달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옆에서 단잠을 자는데, 나홀로 깨어 있어야 하는 밤은 고통스럽기까지 한 것이다.

<잠>의 주인공인 여자는 17일째나 잠을 못 이루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병원에 가 보라고 하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불면증은 불면증이 아닌 불면증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타당한 것은, 불면증에 시달린다면 밤이 아닌 낮에는 멍한 느낌이 들거나, 잠이 올 것 같은데, 그녀는 밤에 잠을 이루지 않고도 낮에는 일상 속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증상이 나타난 것은 어느날 밤에 소위 말하는 '가위눌림'이라는 악몽을 꾼 후부터이다.

잠 안 오는 밤에 그녀는 무엇을 할까?

처음에는 곤히 잠든 남편곁을 나와서 브랜디를 마시게 되지만, 어느 순간, 그녀는 책장 속에 파묻혀 있던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니나>를 꺼내 든다.

그 소설에서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 정도일 뿐이다.

학창시절 도서관을 들락거리면서 많은 책들을 읽었지만, 결혼후에는 거의 책을 놓아 버렸던 그녀에게 <안나카레니나>는 학창시절 읽었던 그때의 그 느낌과는 다른 또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안나카레니나>를 읽고 또 읽으면서 소설의 매력에 빠져 버리게 된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 소설 속에는 다양한 수수께끼와 시사로 가득차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러시아 고전문학에까지 심취하게 된다.

이런 내용이 전개되면서 하루키는 <안나카레니나>의 소설 내용이나, 이 작품의 작가인 '톨스토이'에 대한 견해를 책 속에 비쳐준다.

평범하고 행복한 주부가 불면으로 인하여 자신의 세계를 찾아 나가는 이야기가 일상에 찌든 현시대의 주부의 모습과도 같음을 문득, 문득 느끼게 된다.

어제와 그제가 뒤바뀌어도 아무 지장이 없는 그런 날들.

이런 일상에서 탈출 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녀의 불면증때문인 것이다. 이건 주부들이 편안한 일상에 안주하지 않고, 자아를 찾아가는 탈출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하루키는 분명 남성임에도 여자들의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1Q84/ 무라카미 하루키 ㅣ 문학동네>에서도 '아오마메'의 여성 심리를 잘 표현했듯이.

그런데, 여기까지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하루키' 문학이 아닌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밤마다 깨어서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한 밤중에 차를 타고 집 밖으로까지 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헤쳐 나가야만 하는 덫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결말은 독자들의 상상 속으로~~

<잠>은 하루키의 소설만으로도 흥미롭지만, 이 소설을 더 빛나게 하는 것은 일러스트라고 생각된다.

가장 강렬한 일러스트는 흑과 백의 조화가 아닐까. 거기에 은빛까지 첨가된다면.

동화책에 <눈 감으면 보이는 상상세상/ 조대연 글, 강현빈 그림 ㅣ 청어람주니어 ㅣ 2010>은 흑과 백, 그리고 금색이 첨가된 일레스트레이션이 눈에 확 들어오는 책이다.

만화책인 <신 신 /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 글, 그림 ㅣ 휴머니스트 ㅣ 2011>은 흑과 백의 농담만으로 그린 만화이다.

이런 책들이 컬러판 보다도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되는데, <잠>의 일러스트도 그렇게 강렬하게 책 속의 내용을 각인시켜 주는 것이다.

하루키가 자신의 성공 뒤에 온 무력감에서 소재를 얻어서 '하염없이 깨어 있는 여자의 일탈'을 소설로 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오래전에 쓴 소설이지만, '버전업'을 해서 인지 오늘날의 일탈을 꿈꾸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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