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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정진홍의 900킬로미터
정진홍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평점 :
<마자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의 책표지를 보는 순간,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조형물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 이 책의 내용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으면서 저자의 생각들을 담아낸 책이라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아마도, '산티아고 가는 길'과 관련된 글인줄 알았다면 선뜻 읽으려는 마음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나는 '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한 책을 적어도 10 권 이상은 읽었다. 그중에는 스페인 여행기의 끝부분에 몇 장을 덧붙인 책들도 있었지만, '세스 노티붐'의 <산티아고 가는 길> 처럼 그 길 위에서 성당, 수도원의 건축 양식의 설명에서부터 문학과 예술의 해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해박한 지식으로 설명해 주는 여행 에세이의 장르를 뛰어 넘는 격조있는 책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책들도 다수가 있었다.
출판사에서 인지도가 있는 작가에게 그 길을 걷게 하고, 그 이야기를 담아 낸 이야기에서부터, 지인과 함께 걸으면서 서로의 성향이 맞지 않아서 책 속에까지 투덜투덜 하는 책도 있어서 '그 책을 왜 썼을까?' 하는 책도 있었다.
그만큼 이제는 '산티아고 가는 길'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길이다.
이제는 산티아고 가는 길’이 순례자의 입장에서 걷는 길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어떤 계기로 걷게 되는 경우가 많고, 그 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고, 앞으로의 인생 설계를 하는 길이라는 의미가 더 크게 부각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을 때까지도 나는 정진홍에 잘 몰랐다. 이미 출간된 저자의 책 제목만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를 읽으면서 그의 인문학전 깊이와 날카로운 통찰력과 해박한 지식들에 심취되었다.
노란 화살표를 따라 가는 길, 또는 조개 껍데기가 이정표가 되는 길.
생장 피에도포르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그리고 다시 피니스테레까지 47일간의 900 km의 여정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는 '안주하는 삶이 아닌 도전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구태여 그가 그 길을 걸으려고 한데는 그만의 철학적 사유가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 산티아고 가는 길 900 킬로미터는 내 인생 전체에서는 실로 '위대한 멈춤'이었다. 더 멀리, 제대로 인생길을 나아가기 위한 '뜨거운 쉼표'였다. " (p. 7)
" 삶의 맛은 '채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되레 '비움'에서 오기 때문이다. " (p. 24)

" 어제와 다른 '나',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만들 희망에 차 있을 때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 (p. 44)

그렇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홀로 고독하게 가는 길이다. 그 길위에는 여기 저기 묘비들이 있을 정도로 때로는 삶고 죽음의 경계선을 밟고 있음을 자각하면서 가야 하는 길이다.
빨리 걷기 보다는 느리게 걷어 가야 하는 길, 여럿이 걷기 보다는 홀로 고독하게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면서 걸어야 하는 길.
그 길은 걸을수록 마음이 비워지는 길이지만, 비우면 비울수록 마음이 채워지는 길이기에 마음으로 걷는 길이기도 하다.
길을 걷는 자들의 배낭의 무게만큼, 인간은 욕심과 집착과 미음과 분노와 원망과, 무관심 등으로 채워진 마음을 이 길 위에 내려 놓게 되는 것이다.
저자가 눈을 피해 들어 갔던 대피소의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추위에 떨면서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이 세상 모든 책들 중에서 자식에게 물려줄 단 한 권의 책으로 꼽는 내용을 읽으면서, 그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책 속에는 또 다른 책들에 관한 내용들이 나오는데, 저자가 말하는 머리로 읽은 책들을 나도 머리로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40대의 저자가 느끼는 중년 남자의 삶에 관한 부분들은 가슴을 멍하게 만든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은 노인들보다도 중년 남자들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건만, 그들에게 남은 것은 소외감 뿐인 것이다.
그들은 돈을 못 벌어도, 무대 뒤로 사라졌어도, 잉여인간이 아니건만....
우리의 아버지들을 떠올리게 된다.
" 삶은 어차피 홀로 가는 외로운 길이다 남들과 더불어 가는 길, 함께 가는 길이라 말들 하지만 결국 삶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길이다. 그것을 외롭다 할 수 없다. 그것을 슬프다 할 수 없다. 그것이 인생이니깐. " (p.p. 248~249)

책의 끝부분에 실린 '살면서 다하기 힘든 후회 열 가지'는 비록 내가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걷지는 않았어도, 내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해 주는 내용들이다.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를 통해서 처음 접한 저자의 글들은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다.
힘차게 달리기를 하다가 골인하는 순간에 느끼게 되는 허탈감, 무력감에 잠겨 있는 사람들에게도, 삶이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도, 책 속의 한 문장, 한 문장은 힘이 되어 마음 속에 큰 울림을 남겨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