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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 - 공지영 앤솔로지
공지영 지음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공지영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이 언제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고등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후에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읽으면서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생겼었다. 이 책은 작가의 유럽 수도원 기행 에세이인데, 유럽의 수도원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싶어서 읽게 되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작가의 삶이 더 궁금해졌던 책이다.
대학시절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녀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고, 가슴 속에 멍들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던 것이다.
그녀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18년 동안 냉담자로 살아 왔다. 그가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와서 마주하는 수도원의 이야기...
그것은 단순한 수도원 기행이 아닌 작가의 삶을 되짚어 보는 이야기였던 것이었다.
필력 또한 돋보여서 그 책 속의 문장 중에는 가슴 속에 다가오는 문장들이 많았다. 그때만해도 읽은 책의 서평을 쓰지 않던 때여서 그 문장들을 곱게 컴퓨터 속에 담아 놓기도 했었다.
" 다시 돌아왔지만은 그 사람을 용서하라는 말일랑은 하지 마세요. 설사 그것때문에 지옥에 간다 해요, 물론 지옥에 가는 건 무섭지만. 그래도 지금 나는 그 사람만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그 말만은 내게 하지 마세요. 하느님...다른 건 다 돼도 그것만은 안 됩니다.'
당장 그를 용서하라는 계시를 받은 것도 아닌데 나는 성당에 앉아 안돼요, 안돼요 하며 엉엉 울었다. 사실 지옥은 누가 우리를 억지로 보내버리는 그런 곳이 아니었나 보다. 곁에 두고 그를 증오하던 마음이, 사랑이 미움 앞에서 무력하게 사라지던 걸 속수무책 바라보아야 했던 그 시절이, 내 스스로 걸어 들어간 지옥이었을 뿐."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 공지영 ㅣ 김영사 ㅣ2001 ( p.208) " - 개정판이 아닌 구판 중에서
'용서할 수 없다고 하던 그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대상일까? ' 이런 단상과 함께 가슴에 절절하게 담겨 있는 그 무엇인가를 나도 조금은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을 읽은 후에 작가의 책들을 한 권, 한 권 찾아서 읽게 되었다.
지금도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는 책으로는 <별들의 들판>과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그리고 우행시라는 일컬어지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있다.
때론 작가의 글들이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처럼 '아주 가벼운 깃털' 처럼 느껴진 적도 있고, 사회문제를 다루는 < 도가니>처럼 힘있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작인 <의자놀이>는 선뜻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작가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은 그녀가 글쓰기보다는 다른 행보를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그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물론, 대학시절부터 그런 활동을 하기는 했지만.
지난해에 책 관련 모임에서 보았던 작가의 모습이 당당하다 못해 당돌하게 느껴졌던 그런 기억들도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여튼 그녀의 글들은 마음에 남겨 두고 싶은 글들이 다수 있다.
바로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다>는 작가가 1988년 단편소설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면서 작가 생활을 시작한 지 25년간, 1000 만 독자와 함께 했던 책들에서 자신이 뽑은 글들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 앤솔로지는 선집이라는 의미로, 이 책은 그녀가 그동안 쓴 모든 작품들과 여러 매체들에 올린 글들 속에서 작가가 스스로 뽑은 치유와 위무의 언어들이다. " ( 저자 소개글 중에서)
그동안 작가의 책들을 단 몇 권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읽었기에 출처를 보면 그 책의 내용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간혹 어떤 글들은 그 책의 내용을 알아야만 더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는 글들이 있기도 하다.
72 고해성사
무릎을 꿇고 앉아 저의 죄를 고백합니다. 고백한 지 18년 만입니다. 하는데 맙소사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것도 뜨겁고 힘차게 펑펑 나오는 것이다. 그것도 뜨겁고 힘차게 펑펑 나오는 것이다. (...) 어느덧 작년 겨울 18년 만에 혼자 성당에 찾아가 하느님 앞에 엎드려, 하느님 저 왔어요, 항복해요, 내 인생에 대해 항복합니다. 엉엉 울던 그 때의 심정으로 고스란히 되돌아가고 있었다.
" 참 어려운 길 오셨습니다. 18년 만이라고 하셨습니ㅏ. 축하드립니다. 여기까지 오는 발걸음으로 이미 당신은 죄 사함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18년 동안 걸어온 길이 고단한 길임이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79. 버리면 얻는다
버리면 얻는다. 그러나 버리면 얻는다는 것을 안다 해도 버리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버리고 나서 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 봐. 그 미지의 공허가 무서워서 우리는 하챦은 오늘에 집착하기도 한다. -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122 선택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 인생이고 누구도 그것을 수선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그건 기억하는 것, 잊지 않는 것, 상처를 기억하든, 상처가 스쳐가기 전에 존재했던 빛나는 사랑을 기억하든 그것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밤하늘에서 검은 어둠을 보든 빛나는 별을 보든 그것이 선택인 것처럼 - <별들의 들판 / 별들의 들판> - 이 문장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글귀이다. 오래 전에 이 책을 읽고 미니홈피에 담아 놓았던 글이다.

132 무심한 마음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사랑도 아니고 그리움도 아니고,
그저 낡은 책갈피에 끼어 있던 빛바랜 꽃잎이 팔랑팔랑 떨어져 내리듯
무심한 마음이다. - < 상처없는 영혼>

227 헤어짐이 슬픈 건
헤어짐이 슬픈 건 헤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만남의 가치를 깨닫기 때문일 것이다. 잃어버리는 것이 아쉬운 이유는 존재했던 모든 것들이 그 빈자리 속에서 비로소 빛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더 슬픈 건 사랑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너무 늦게야 알게 되기 때문에. - <사랑 후에 오는 것들>
261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책 속의 글들은 1년이 365일이듯, 365개의 글로 나누어져 있다.
"작가 공지영이 소중한 당신에게 건네는 365일간의 선물" ( 책표지 뒷면의 글 중에서)이라고 한다.
공지영이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한 두려움이 많은 여름이와 호기심이 많은 겨울이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위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글들. 그것은 한때는 작가의 마음이 아프고 슬펐기에 더 절절한 문장들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