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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평점 :
2011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7년의 밤>
이 책을 읽은 독자들도 많고, 올려진 서평들도 많다. 그러나, 나는 익숙하지 않은 작가의 소설을 읽는데에 좀 인색한 편이다.
에세이나 자기계발서는 그냥 읽고 말면 그만이지만, 소설의 경우에는 책을 잘못 선택하면 읽는 도중에 그만 둘 수도 없고, 끝까지 읽자니 얻는 것보다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드는 소설들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선뜻 읽게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기 시작하여 내려 놓기까지 강한 흡인력과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기에는 섬뜩할 정도의 내용들이 뇌리를 강하게 내리치는 듯하다.
<7년의 밤>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악몽을 꾸면서 깨어나고 싶어서 발버둥을 치던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아니면, 등장인물의 행동이 괴기스럽고 무서워서 마음을 졸이면서 끝까지 재미있게 보는 스릴러 영화라고나 할까.
아무튼, 처음 읽게 된 정유정의 소설 <7년의 밤>은 강하고 독하다. 또한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였을 것이라는 것이 작품 전체를 통해서 느껴지기도 한다.
박범신 작가의 추천의 말처럼 " 뒤돌아 보지 않는 힘있는 문장과 압도적인 서사, 그리고 정교한 취재를 기반으로 한 생생한 리얼리티"( 책 뒤표지의 박범신의 글 중에서) 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 소설 속의 마을은 가상의 마을이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2004년 9월 12일 미치광이 살인마인 최현수가 살인범으로 검거되게 되면서 시작된다.
한때는 잘 나가는 야구 포수를 꿈꾸기도 했지만 불행하게도 어깨 부상으로 인하여 야구 인생을 접어야 했던 최현수는 세령호가 있는 마을에서 살인범으로 잡히게 된다.
12살 여자아이의 목을 비틀어서 살해한 후에 물에 집어 던졌고, 여자 아이의 아버지도 몽치로 때려 죽게 했으며, 자신의 아내마저도 죽였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댐 수문을 열어서 경찰을 비롯한 마을 주미들의 다수를 수장시킨 것이다.
그의 아들인 서원은 이런 살인마의 아들이란 굴레에 갇혀서 친척집을 전전하게 되고, 학교도 몇 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어야 했던 것이다. 살인마의 아들로 살아가기가 힘들어 졌을때에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사건이 일어날 당시에 같은 방에 살았던 아저씨를 만나게 되는 것이고, 거기에서 이 사건에 대한 추적이 전말이 밝혀지게 되는 것이다.
최현수가 살해했던 12살 여자아이는 이 마을 유지이자 치과의사인 오영제의 딸 세령이다.
오영제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로 자신의 아내와 딸을 자신의 틀에 가두어 놓고 가정폭력을 일삼게 된다. 사건이 일어난 날도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달아나다 현수의 차에 치이게 되고, 일순간의 판단 착오로 그 여자아이를 목졸아 죽이게 되고, 취수탑 밑으로 던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오영제는 자신의 감각적인 능력으로 자신의 딸을 살해한 최현수를 긍지에 몰아 넣기 위한 복수심에 다른 사건들을 저지르면서, 현수에 대한 복수와 그의 아들에 대한 복수까지 꿈꾸게 하는 것이다.
그 복수를 눈치챈 현수는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가면서까지 자신의 아들을 지켜주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독자들의 오영제의 행동을 통해서 인간의 악마적인 기질에 경악을 면치 못하는것이다.
오영제의 행동은 자신은 "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자기 것'에 대한 병적인 집착" ( 책 속의 글 중에서)인 것이다. 인간의 본성 중에 영제의 악마적 근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그동안의 많은 살인사건에서도 접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그것이 믿기지 않는 것은 사실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다.
'미친광이 살인마'라 불리는 최현수는 순간의 선택이 그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것이다. 음주운전으로 운전 면허가 중지된 상태에서 하게 된 음주운전, 그리고 안개낀 밤에 어디선가 달려온 하얀 물체를 치게 되는데, 그것이 세령이었던 것이다.
당장의 일만을 생각하고 살해를 하게 되는 그의 선택은
"눈앞에 보이는 최선을 두고 최악의 패를 잡는 이해못 할 상황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작가의 말 중에서, p521)는 작가의 말에 해당하는 인물이지만, 그의 선택은 일순간의 선택이었지만, 평소의 도덕성과 연관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현수의 어린 시절의 암울했던 가정 폭력과 아버지의 자살 등이 그를 올바른 인간으로 살아갈 도덕성을 결여시켰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어릴 적 기억들 때문에 아들이 서원만은 끝까지 지켜주고 싶었던 사형수의 마음이 가엾기만 하다. 무시무시한 기억, 수용할 수 없는 진실 앞에 선 현수의 마음이 그대로 작품 속에 나타난다.
이 모든 사건의 한 가운데에서 끈질긴 오영제의 복수심에 의해서 가는 곳마다 살인마의 아들이란 질책을 견뎌야만 했던 서원은 그 누구보다도 가장 큰 피해자가 아닐까 한다.
" 내 삶을 흔들어 온 오영제의 손. 나는 그의 손가락에 낀 요요였다. 던졌다가 당기고 말아 주었다가 멀리 날려 보내면서 그는 7년을 기다린 것이다. 내가 어딘가에 정착하는 걸 막는게 첫 번째 목적이었겠지. 떠돌이로 만들어야 영원히 사라져도 궁금해할 사람이 없을테니까.덤으로 사소한 보복행위라는 즐거움도 누리고 자기 딸을 죽인 자의 아들을 맘 편히 살게 놔주느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설령, 때가 오면 자기 손으로 거둘 놈이라 할지라도. 나는 죽어라, 도망쳤으나 실은 한 번도 그를 벗어난 적이 없는 셈이다. " (p678)
12살에서 사건의 한 가운데에 놓이게 되면서 7년간을 아픔 속에 살아야 했던 서원.
그의 삶을 흔들어 놓은 것은 아버지인 현수와 복수심에 불타는 영제였던 것이다.
그렇게 7년 전의 밤은 끝나지 않고 악몽처럼 서원을 따라 다녔다.
이 책은 정교한 취재를 바탕으로 하였으며, 작품의 스케일도 크다, 여성 작가의 글이라기에는 강한 힘이 들어가 있다.
문장들도 그냥 읽고 지나가기에는 그 속에 담긴 뜻이 보이기에 곱씹어 가면서 문장 속의 의미를 파악하게 되기도 한다.
인간이란 정말 어디까지 악마적 근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악과 선, 인간의 본질, 도덕성 등의 깊이있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서원에게 끝나지 않았던 7년 전의 밤은 과연 언제, 어떻게 끝나게 될까?
마지막 장면이 가슴을 절절히 아리게 한다.
아직 19살인 서원이 등에 짚어지고 가야할 무거운 짐,
그 무거운 짐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버지의 사랑을 마음 속으로 받아들일 때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한다.
서원은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7년전 그때가 밤이 시작되던 시간이라면, 지금은 밤을 끝내야 하는 시간이었다. " (p516)
<7년의 밤>을 읽기 시작하여 밤이 깊어가도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책 속에 푹 빠져 버렸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는 손길은 빠르게 오고 가지만, 마음은 무겁고도 무겁기만 한 밤이었다.
" 한 남자는 딸의 복수를 꿈꾸고, 한 남자는 아들의 목숨을 지키려 한다." ( 책 뒷표지 글중에서)
아버지란 같은 이름.
그러나, 오영제의 딸에 대한 복수는 진정한 딸에 대한 복수였을까?
비록 살인마이기는 하지만, 최현수의 아들의 목숨을 지키려는 그 마음은 내 마음 속에 슬픔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