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뿌리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을 읽으면서 소설 속에서 세종을 만나기도 했고, 신윤복과 김홍도를 만나기도 했다.

물론, 이 소설들은 역사 속의 인물이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역사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소설의 허구성이 많이 가미된 작품들이다.

그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역사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정명 작가만의 색다른 감각과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탁월한 능력때문이 아닐까 한다.

작가는 그 어떤 작가들보다도 작품을 쓸 때에 많은 자료들을 찾고 오랜 기간에 걸쳐서 구상하고 쓰고 다듬고 다시 쓰기를 하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천년 후에>를 쓸 때는 3년간을 매일밤 틈틈히 썼고, <뿌리깊은 나무>는 10년의 구상과 집필을 거쳐서 독자들 곁에 온 소설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조선시대의 '훈민정음' 창제를, <바람의 화원>은 '신윤복'과 '김홍도'의 풍속화가 소재가 되는데, 여기에 살인이라는 장치가 가미되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뿌리깊은 나무>는 <다빈치코드>나 <장미의 이름>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정명의 소설 중에 '악의 추억'은 또다른 느낌을 주는 소설이다. 기존의 소설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상도시를 만들어서 그곳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다는 특징이다.

살인 사건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살인사건으로 연결되면서 다른 죽음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첫 살인사건은 단순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충격은 도시 전체로 번지게 되는 '다중 나선형 연쇄살인'인 것이다.

<악의 추억>은 <천년 후에>, < 뿌리깊은 나무>, < 바람의 화원>처럼 2권으로 구성되지 않은 한 권짜리 소설이지만 이 소설이 기억에 남는 것은 책을 읽은 후에 마음 속에 긴 여운이 남기 때문이다.

"증오와 사랑, 기쁨과 슬픔은 상반된 감정이지만 심리적인 자극이란 점에서 같아요, 극도로 증오하던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거나 기쁨이 극에 이르면 눈물을 흘리는 현상말이예요, 범죄자를 증오하고 뒤쫓으면서도 그들을 동정하는 형사의 심리도 마찬가지죠" "정반대의 감정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뇌가 감정을 착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죠" (악의 추억 p. 195)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무엇이 '사랑'인지, '증오'인지, 무엇이 '욕망'인지 '의심'인지 인간의 내면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동안 이정명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가졌던 좋은 느낌들때문에 <별을 스치는 바람>을 주저 없이 읽기로 했다.

몇 개월 전에 읽었던 구효서의 <동주 >를 떠올리면서 다시 윤동주를 만나 보고 싶기로 했다.

작가 '구효서'는 시인 윤동주 앞에 붙는 '민족', '저항'이라는 관형사를 조심스럽게 벗기고, 그가 반한 윤동주의 얼굴, 눈빛, 미소 등 사진에 박힌 그 모습 그대로를 재발견하고 싶어서 <동주>를 썼다고 한다.
<동주>는 미스터리 형식을 빌리기는 했지만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언어, 말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윤동주의 죽음을 통해서, 그의 유고의 추적을 통해서 언어를 말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시인에게서 시인의 언어인 한국어를 번역하게 하는 것은 그의 시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 소설의 제목은 <동주>이지만 윤동주는 이 소설의 화자도 주인공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뭔가 좀 아쉬웠던 마음을 <별을 스치는 바람>을 통해서 채워 보고 싶은 마음도 이 책을 읽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세종대왕에 이어서, 신윤복, 김홍도 그리고 이번에는 윤동주.

윤동주의 시 한 구절 정도는 우리 국민이면 읊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느껴지는 시인 윤동주.

이정명은 그의 이야기를 어떻게 펼쳐 나갈 것인가 책장을 넘기는 손이 바쁘기만 하다.

윤동주가 옥사를 하기 1년전인 1944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이 소설의 발단이다.

간수중에 가장 악질인 스기야만 도잔이 살해당한다. 아주 처참한 모습으로.

철창 속에 갇힌 조선인 죄수들. 그 중에 최치수가 살인범으로 잡히게 되는데....

살해된 스기야만 도잔의 안 주머니에서 나온 모서리가 낡은 갱지 한 장.

그 갱지 속에 씌여진 시와 살인사건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스기야만 도잔은 간수이자 검열관인데, 인정사정 없는 냉혹한 자, 거칠고 잔혹하기 그지 없는 자이다.

그런데, 의외로 의무실의 간호사 미도리는 그를 섬세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피아노를 치는 소녀의 모습과 그 음률이 좋아서 피아노 조율을 배우기도 했었다는 스기야만.

한 인간의 내면 속에는 이처럼 완벽하게 다른 면이 존재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살인 사건을 맡게 된 간수인 '나'는 독방의 변기통 아래로 뚫린 탈출구를 발견하게 되고 이 사건을 다시 수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제까지 밝혀 지지 않았던 스기야만 도잔과 히라누마 도주의 이야기가 하나 하나 밝혀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책으로 만남을 가졌던 장소까지.

그들은 시(詩)라는 고리와 책이라는 공통분모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스기야마 도잔은 악랄하기 그지 없는 간수이자 검열관인데, 원래는 글을 알지 못했다. 검열을 위해서 글을 배우게 된다.

히라누마 도주, 즉 윤동주는 어떤 계기로 해서 조선인들의 편지를 일본어로 대필해주는 일을 하게 되는데, 스기야마의 검열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문장력을 발휘하여 편지 대필을 해 준다.

이를 검열하던 스기야마는 윤동주의 글에 차츰 차츰 매료되고 그의 시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그가 편지 대필에서 언급하는 책들이나 작가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문학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잔인하기만 한 스기야마의 마음을, 그의 혼을 사로잡는 윤동주의 시들.

검열을 위해서 들었던 붉은 펜을 내려 놓게 만드는 윤동주의 편지글들.

차마 압수된 윤동주의 책들과 시를 불태우기를 두려워하는 스기야마의 마음.

윤동주가 시를 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그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스기야마.

" 시인은 깊은 산 속의 오솔길을 안내하듯 문장의 미로를 펼쳐 보였다. 스기야마는 헐떡이는 사냥개처럼 인용된 작가들과 작품을 찾아 서가 틈을 헤맸다. (...) 밤새 미심쩍은 글자와 글자 사이, 행과 행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를 헤맸다. 불온한 문장을 찾을 수 없었지만 문장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했다. 히라누마 도주는 순결한 시인일지 모르지만, 교활한 글쟁이기도 했으니까. " (p. 213)

이 소설 속에는 윤동주의 시들이 다수 소개된다. 그리고 윤동주가 좋아하던 시인들인 '프랜시스 잠', '라리너 마리아 릴케'의 시들도 함께 실려 있다.

이 책 속에 실린 시에서 어쩌면 이 살인사건의 단서를 찾아야 할 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윤동주의 시를, 그리고 다른 시를 읽는 것도 또한 큰 재미이기도 하다.

스기야마의 살해 사건을 추적하게 되는 '나' 역시 어머니가 중고 책방을 하는 가정에서 자랐기에 책벌레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그 역시 살인 사건을 통해서 윤동주의 시를, 그리고 문학에 대한 열정을 가졌기에 이 사건이 차츰 차츰 미궁에서 새로운 단서들이 나타나는 것을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 것인지 번뇌하게 된다.

가르치지 않아도, 변화를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게 되고 스스로 변화하게 되는 하는 것은 그 무엇때문일까?

스기야마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시킨 것은 그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문학, 책, 시....

참혹한 후쿠오카의 형무소 안에서도, 비열한 전쟁 속에서도, 잔혹한 인간들로부터의 탈출구가 된 것은 바로 문학의 향연이 아니었을까.

윤동주는 스스로 1945년 11월 30일에 형을 마치고 걸어서 후쿠오카 형무소를 나가겠다고 이야기하곤한다.

과연 그는 형을 마치고 형무소를 걸어서 나올 수 있었을까....

이미 결론을 알고 있기에 그에게 가해졌던 생체 실험의 이야기를 상기시키지 않을 수 없다.

윤동주의 주옥같은 시를 읽으면서 더 이상 조선어로 시를 지을 수 없었던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그리고 시인과 검열관으로 만났지만 윤동주의 시로 인하여, 윤동주의 편지 속의 문학작품들로 인하여 점점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들이 전쟁 중에 만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아직도 제 2차 세계대전 중의 침략 행위와 그 당시 자행되었던 수많은 일들을 반성하지 못하는 일본인들에게 이 책은 꼭 읽어 보아야 할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한 문장, 한 문장. 한 구절, 한 구절. 한 단어, 한 단어.

곱씹어 읽어야 할 정도로 필치가 두드러진다. 빨리 읽어 내려가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장력이 뛰어나다.

또한 이정명 소설의 특징인 빠른 전개와 강한 끌림이 있기에 속도감이 붙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2부로 들어가면서 더 큰 감동과 가슴이 아려오는 슬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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