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서울을 걷다
권기봉 지음 / 알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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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기에 서울의 이곳 저곳에는 추억이 깃든 곳이 많다.

그래서 서울의 가볼 만한 곳이나 역사와 문화가 깃든 곳에 대한 책들을 그동안 여러 권을 읽어 왔다.

<다시, 서울을 걷다>를 처음 만나게 된 그 순간에도 서울의 유서깊은 곳에 대한 단순한 답사기 정도의 책일 것이라는 단상으로 책을 펼치게 되었다.

 

그런데, 책과 함께 비닐에 싸여서 온 지도 한 장.

지도를 보는 것을 좋아하기에 우선 지도 속의 서울의 이곳 저곳을 눈으로 훑어 보면서 마음 속에 간직된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끄집어 내 보았다.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놀던 곳들, 학창시절의 생활 반경이 되었던 곳.

그리고 살아오는 동안에 거쳤던 곳들, 들렀던 곳들...

서울은 나에겐 그만큼 의미있는 곳이고, 추억이 깃든 곳이다.

<다시, 서울을 걷다>는 4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 일상을 걷다.

제2부: 장소를 걷다.

제3부: 의미를 걷다.

제4부: 문화를 걷다.

이 책의 첫 이야기인 '서울 지하철 제1호선'에 관한 내용은 바로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으로 쓰러진다. 그날은 지하철 1호선의 개통식도 있었던 날이었던 것이다.

그날 오후 갑자기 날씨가 어두컴컴해졌는데, 당시 많은 사람들은 그 시각에 육영수 여사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나라 안은 어수선했지만, 지하철을 처음 대하는 서울 시민들은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지하철 역으로 몰려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알고 있는 서울 지하철 제 1호선. 그러나, 이 책 속에서는 왜 지하철을 건설하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지하철 건설에 관한 비화들을 들려준다.

 

 

세종로를 거닐면서 만나게 되는 세종대왕 동상을 보면서 그 동상이 얼마나 권위주의적이며 전근대적인 디자인인지를 말해 준다.

 

 

성수대교의 붕괴, 소공동 차이나타운의 역사와 사라짐, 서울 마지막 달동네인 백사마을...

달동네 이야기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88 올림픽과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판자촌 철거, 철거후에 밀리고 밀려서 가게 되는 곳.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하는 백사마을은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두메 산골같은 그런 곳. 거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 것인가?

 

 

 

이 책의 3부 '의미를 걷다'는 한국 현대사에서 이슈가 되었던 곳들인 '남영동 대공분실', 위안부 문제로 시위의 현장이 된 '일본 대사관', 을사 늑약의 현장인 '중명전'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서울의 거리를 걸으면서도 잊혀졌던 곳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이 곳들에 대하여 역사적 고찰에서 부터 시작하여 사회적인 분석까지를 담아 낸다.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단순한 서울 답사기로 생각했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책이다.

마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을 때에 느끼는 것처럼 저자가 답사하는 곳에 대하여 모든 분야에 걸친 고찰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30대 후반 이후에 '세상은 호기심 천국'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이 가진 호기심을 자료를 찾고, 직접 그곳을 가서 보고, 생각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의 기자 정신이 보통 사람들은 거리의 겉모습만을 보는데 반하여 그는 거리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청진동의 피마길을 가본 적이 있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 피마길은 평민들이 '만들어낸 공간'이 아니라 지배층에 의해 '주어진 공간'이자, 계급사회라는 특성상 힘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규율에 의해 '반강제된 공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백성들이 피마길을 수동적으로 받아 들였던 것은 아니다. " (p. 265)

허름하기는 했지만, 그곳에는 서민들의 삶이 그대로 반영된 먹거리 골목이었다. 해장국, 녹두 빈대떡, 낙지볶음...

대학 다닐 때에 청진동 낙지볶음을 먹기 위해서 여러 번 들렀던 곳이다. 너무도 매콤한 낙지볶음에 막걸리 한 잔.

이곳은 단순히 재개발해야 할 곳은 아니었다. 서민들의 애환이 깃들었던 곳이고, 추억의 공간이고, 현대사의 한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개발에 의해서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그나마 좁은 피맛골이 만들어졌지만, 옛날의 그 정취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재개발 당시에도 이곳은 조선시대의 상업 활동의 중심지였기에 구들장, 고랫등을 포함한 어물전 유구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대로 덮어 버렸다고 하니....

" '역사적인 장소'라는 것은 그냥 눈에 보이는 장소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의 창고'이며 '문화적인 전통과 가치의 저장소'다. 기념할 만한 건축물이나 공간에는 단순히 흘러간 옛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것과 함께 해왔고 함께 해 갈 사람들의 지혜와 희망이 숨어 있다. " (p. 309)

 

저자는 이미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 가는 역사를 만나다/ 권기봉 ㅣ 알마 ㅣ 2012>를 펴낸 적이 있다.

 

 

이 책은 앞의 책과 시리즈로 엮어 졌다고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이 책은 서울에 있는 곳들 중에서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현장들을 저자가 찾아 다니면서 그곳에서 우리들이 꼭 알아야 할 사실들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과거에 치중된 이야기들이지만, 과거는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과거는 현재로 연결되는 것이고, 또 현재는 미래로 연결되는 것이기에 우리가 알 것은 알고, 고칠 것은 고치고, 느낄 것은 느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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