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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학교 - 이정록 시집
이정록 지음 / 열림원 / 2012년 10월
평점 :
몇 년전에 TV에서 섬진강 시인인 '김용택'의 삶의 모습이 담긴 이야기를 방영하는 것을 보았다. 그가 초등학교 교사였으니, 학생들과의 수업 장면들이 소개되었다.
대도시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수업 방식으로 수업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인상깊었던 장면은 학생들에게 시를 쓰도록 하는 것이었다.
학창시절에 시를 지어 보라고 하면 얼마나 당황했던가?
머리 속은 금방 하얗게 변해 버리고 말았었다. 시란 산문과는 달라서 시를 쓰는 형식도 생각해야 하고, 함축적인 시어도 생각해야 하고....
그런데, 김용택 시인은 학생들에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시를 쓰도록 했다. 학생들이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시라고 말하곤 했다.
어찌 보면 다듬어지지 않은 그런 시들이 시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린 학생들에게 일상 생활 속에서 시를 접하게 하고, 시를 써 보게 하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정록 시인은 자신의 72살 어머니가 무심코 내뱉는 말들에서 시를 찾아 낸다. 시인이 이 책의 서문인 '시인의 말'에서 밝히듯이 어머니와 한 몸이 되어 잠에서 깨어난다. 빙의는 아니었지만, 그로 인해 어머니의 말에서 시를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 시의 품새와는 사뭇 다르니 시마(詩魔)도 아니고,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지않았으니 빙의(憑依)도 아니었다.
서른 편 쯤 쓰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를 낳으신 어머니가 수천수만임을.
아주 옛날에도 나를 낳으셨고 지금도 출산중임을
앞으로도 나는 계속 태어날 것임을" (p. 6)
이 시집에는 이정록 시인이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쓴 <어머니학교>라는 시가 어머니의 나이만큼 72편이 실려 있다.
시들을 읽어 보면 어머니가 그저 말하는 것이 곧 시로 탄생된 것이다.
흔히, 어머니들이 말하는 '내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면 몇 권이 될거야'라고 말씀하시듯이, 어머니들의 말은 때론 산전수전 다 겪은 삶의 연륜이 쌓인 말일 경우가 많듯이, 시인의 어머니도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쌓인 삶의 연륜이 그대로 말로 표현된 것이다.
그래서 그 말 속에는 삶의 지혜가 있고, 철학이 있고, 해학이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툭 뱉어낸 그 말들을 시로 쓸 수 있다는 것도 시인의 역량이 아닐까.
다듬어지지 않은 어머니의 말씨가 그대로 담겨 있다.
퉁명스러운 말씨이기도 하고, 무심히 건너는 말씨이기도 하고, 사투리가 듬뿍 담긴 말씨이기도 하다.
분명 시인도 아니고, 학교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촌에서 사셨기에 시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자연의 이치를 알고 있는 어머니, 삶의 지혜가 쌓인 어머니.
그래서 아들은 어머니의 말을 받아 적는 것으로 한 편, 한 편의 시가 쓰여진다.
물 (어머니학교 12)
티브이 잘 나오라고
지붕에 삐딱하니 세워논 접시 있지 않니?
그것 좀 눕혀 놓으면 안 되냐?
빗물이라도 담고 있으면
새들 목도 축이고 좀 좋으냐?
그리고 누나가 놔준 에어컨 말이다.
여름 내내 잘금잘금 새던데
어디에다 물을 보태줘야 하는지 모르겄다.
뭐가 그리 슬퍼서 울어 쌓는다니?
남의 집 것도 그런다니? (p. 30)

이 시를 읽은 느낌이 어떤가?
일상의 체험이 그대로 담겨 있다. 그런데, 새가 목 말라 할까봐 그걸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가?

검은 눈물 (어머니학교 32)
타닥타닥 !
튀기는 소리가 아니라
호호! 식히는 소리라야 해.
성난 새끼 추스를 때에는, 구름이
구름에 스미듯 촉촉이 젖어야지.
개펄을 치고 오르는 진흙범벅의 어깻짓이 아니라
슬며시 날개를 접는 품새라야지. 접은 날개깃
다시 한 번 추스르고느 먼 노을이나 바라봐야지.
가랑비 맞는 짚불처럼 검은 눈물 들이켜야지.
토닥토닥 ! 성난 새끼 추스릴 때에는. (p. 61)
눈물 비누 (어머니학교 47)
비누나 비누갑마냥
쉬이 더러워지는 게 삶이여.
처음부터 때가 껴 있던 게 아니라
골골 때가 탄 거지, 미움이나 원망이란 것도
무언가 다가와 몸 부리고 간 흔적 아니겄냐.
내가 끌어들인 거품이 가슴 속 어둔 골짜기에
둥지를 튼 거지, 다음 몸이 들어와 살 부빌 것 생각해서
사금파리나 면도날은 어떻게든 파내야지.
주름살은 날카로운 게 빠져 나간 자리여.
그 마음 골짜기 다스리는데는 눈물만 한 비누가 없어야.
모든 강물의 원천은 눈물샘이여.
남몰래 넘치는 눈물 한 방울. (p. 81)

<어머니학교>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지 않다면, 아들이 이런 시들을 쓸 수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이 시들을 읽으면서 어머니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