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렇게 감동적일 수가 있을까 ?

<별을 스치는 바람 2>의 200 페이지를 넘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옴을 느낀다.

시인이 한 줄의 시도 쓸 수 없다는 것.

시인이 시를 모국어로 쓸 수 없다는 것은 시인이기를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아름다운 시어들, 읽으면 가슴 속에 알알이 박히는 윤동주의 시들.

별, 바람, 그리움, 어머니, 프랜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패, 경, 옥.....

그가 읊던 그 시어들이 너무도 슬프게 다가온다.

동주는 자신이 조선인들의 편지를 대필해주는 것으로나마 글을 쓴다는 것에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저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 그에게 찾아온 상실감.

인간 생체 실험에 의해서 차츰 영혼이 황폐해지고, 기억을 잃어가는 동주의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도 감옥 음악회에서 조선인들의 입을 통해서 들려질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듣겠다고 자신에게 처치되는 주사가 생체 실험임을 알면서도 그를 원하는 동주.

인간은 야수의 탈을 쓰고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 야수의 탈을 쓰고 천사의 행동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스기야마의 잔혹한 폭행과 고문. 그것은 의무동의 원장의 지적이고 온화한 얼굴 뒤의 야수의 모습과 대비된다.

얼핏 영화 <피아니스트>가 떠오른다.

나치를 피해 홀로 남은 스필만은 허기와 추위와 고독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겨우 연명하여 가던 중에 독일 장교에게 발각이 된다.

냉혹하기만 한 독일 장교는 스필만의 피아노 연주를 듣게 되고 그들은 음악으로 교감을 하게 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피아니스트>가 쇼팽의 피아노 곡으로 스필만과 독일 장교를 연결시켜 주었다면, <별을 스치는 바람>은 문학을 통해서 윤동주와 스기야만, 윤동주와 '나'(유이치)가 연결이 시켜준다.

스기야마가 윤동주의 시와 글과 문학적 소양에 매료되었듯이, 그의 후임인 '나' (유이치)도 문학으로 동주와 교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스기야마는 동주의 시를 불태울 수 밖에 없었지만, 그 시들을 지켜 주기 위해서 감옥소 밖에서 연을 날리던 소녀와 연싸움을 하도록 하여 동주의 시를 감옥 밖으로 날려 보낸다.

시들은 날개는 없었으나 연에 실려 바람을 타고 담장을 넘어 간다.

스기야마와 마찬가지로 '나'도 동주에 대해서 애잔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동주의 사그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전쟁이, 일본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가를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 그의 기억은 벌레먹은 잎사귀같았다. 그는 자신이 죄수임을 알았지만 왜 그곳에 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시인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떤 시를 썼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그의 머릿속에 우리가 함께 나눈 시간들이 남아 있을지 궁금했다. " (p. 235)

1945년 11월 30일, 감옥문을 걸어서 나가겠다고 이야기하곤 하던 동주는 그해 2월 16일 세상을 떠나 그가 노래하던 별을 따라 간다.

그는 이미 '별을 헤는 밤'의 마지막 연을 통해 자신의 생을 예견한 듯한 시를 우리에게 전하고 갔다.

"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별을 헤는 밤 중에서)

<별을 스치는 바람>은 작가가 윤동주에 대하여 연구를 하였던 연구자들의 논문과 자료, 그의 동생과 후배, 그리고 그의 생애를 다룬 책과 시집 등을 참고로 하여 한 편의 소설을 탄생시킨 것이다.

소설의 구성도 탄탄하고, 감성적인 문체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특히 마지막 반전도 독자들의 허를 찌른다.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이야기,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에필로그에서 종전후에 '나'(유이치)는 전범 수용소에서 심문을 받게 된다.

그 중에 한 대목이 인상적이어서 여기에 소개한다.

" 내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는 사실을 바꾸지 못합니다. 나는 그들의 죽음에 책임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잔인한 시대를 살아 남았다는 것으로도 나는 유죄입니다. " (p. 289)

바로 일본인들에게 읽히고 싶은 문장이다.

요즘도 독도 문제를 비롯하여 일제 강점기에 한일간에 일어났던 문제들에 대해서 망언을 일삼는 일본 정부의 고위 관료들에게 이 책을 읽히고 싶다.

"잔인한 시대를 살아 남았다는 것으로도 나는 유죄입니다. "

책장을 덮으며 윤동주를 생각해 본다. 그의 시들을 기억해 본다.

"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별을 헤는 밤 중에서)

그리고 작가 이정명을 생각한다. 역시 기대 이상의 좋은 소설을 나에게 선사한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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