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요 엄마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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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가요, 엄마"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이 한 마디를 건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가슴이 아리도록 아프다는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구의 죽음이 슬프지 않겠느냐마는 엄마의 죽음은 자식이 이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햇볕이 쨍쨍 내리 쬐는 여름날이나, 장마비가 구질구질하게 내리는 날이면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언덕길을 갓 돌이 지난 아들을 데리고 문병을 다니던 때의 생각이 난다.

지금은 그래도 병원의 면회시간이나 유아들의 병원 출입의 통제가 그리 심하지 않지만, 그당시에는 하루 2번 면회시간을 지켜야 했고, 유아들의 출입은 엄격하게 통제를 받았기에 병문안을 가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에게는 엄마의 마지막을 오래도록 함께 해 드리지 못한 것이 일생의 후회로 남아 있다.

떠나시기 전날 마지막으로 엄마의 모습을 보았을 때, 당신의 건강보다는 외손자의 안부가 더 궁금하셨던 분이시다.

중환자실을 오르내리면서 죽음이 가까워 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셨겠지만, 그 두려움을 종교의 힘으로 이겨 내셨던 분이시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목이 메이도록 남아 있는 슬픔이 엄마에 대한 기억들이다.

 

 

<잘 가요 엄마>의 전반부를 읽는내내 책 속의 화자인 아들이 자신의 엄마의 죽음과 장례를 대하는 냉담한 태도에 마음이 불편하다.

'아니 뭔 아들이 이래'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나쁜 놈'이라는 말이 튀어 나온다.

아흔 네 살의 어머니는 몇 차례에 걸쳐서 노인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면서 죽음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들은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는 커녕 새벽 세시에 걸려 온 전화를 통해서 어머니의 죽음을 아우로부터 듣게 된다.

그리고 그는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기 보다는 먼 친척의 부음을 들은 것처럼 강건너 불 보듯이 평소처럼 자신의 할 일을 하고는 오후에야 자신의 고향에 도착한다.

어머니는 자신의 장례절차를 장례식도 없는 화장으로 하기를 당부하셨다.

" 형님이 곤란한 처지를 당할까 봐서, 돌아 가시는 날까지 철저하게 배려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 (p. 35)

아들은 장례식장에 도착하면 아우가 입관 절차까지를 끝냈기를 바랄 정도로 어머니와의 깊은 앙금이 남아 있는 것이다.

아흔 네 해를 살아온 엄마의 인생은 남루하기 짝이 없다. 궁핍했고, 추레했던 인생이다.

엄마는 두 번의 결혼을 통해서 화자와 이복동네인 아우를 낳게 된다. 그러나 결혼식도, 결혼 사진도 한 장 없는, 잔치도 벌인 적이 없는 혼례였다. 호적조차 친정에 남아 있는 2번의 결혼이었다.

엄마의 인생이 그렇게 후줄근했듯이 죽음 역시 무허가 장례식장에서 한 줌의 재로 변한다.

" 잘 가요, 엄마.

안개처럼 씨앗처럼... 한평생을 무겁고 가혹한 삶의 중력에서 벗어날 날 없었던 어머니는 결국 한줌의 먼지였다. 그러나 민들레 꽃씨가 되어 바람을 타고 멀리로 흩어지는 것은 잠깐의 착시였을 뿐, 먼 느낌이 들도록 던진 몇 줌의 먼지는 대부분 우리들 두 사람의 바짓가랑이와 구두 위에 내려 앉았다. " (p. 88)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하여 떠오르는 어머니와의 기억들.

사망 소식을 들은 후에,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에, 유골을 뿌리면서, 지난날의 기억들이 하나 하나 생각이 난다. 그것들을 모두 짜 맞추면 하나의 커다란 퍼즐이 되듯이.

장례식이 끝난 후에 들린 중국집 장춘옥에서, 다음날 고씨 고택과 외갓집에 가면서 아우의 이야기를 통해서 지난날의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거기에 자신의 기억들도 합쳐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었던 것은 전체 중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아우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게 된다.

"자나 깨나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 가슴 속에는 형님 한 분뿐이셨습니다. " (p. 35)

이복동생인 아우를 통해서 듣게 되는 어머니를 둘러싼 그들의 가족사.

독자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마음 속에만 간직했던 이야기들이 너무도 서글프게 들려온다.

초등학교 시절에 선생님으로부터, 또래들로부터 멸시를 받고 따돌림받던 이야기들.

어머니가 새아버지를 만나게 된 때의 이야기, 외삼촌의 딸이었던 애숙이 누나의 이야기.

고씨의 병신 아들인 정태와의 이야기.

자신을 친동생이상으로 돌보아 주던 애숙이 누나가 어느날 야반도주를 하게 되고, 단 하나 밖에 없던 친구인 정태가 바람처럼 사라진 배신감에 15살 나이에 집을 떠나 객지로 떠돌아 다니면서 살아온 날들.

그 날들 속에서 어머니에 대한 애증이 그토록 아들을 아프게 따라 다녔건만, 그 속에 감추어졌던 진실은 왜 그리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지....

이 책은 전반부에 느꼈던 아들에 대한 꽤심한 마음이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아들이 느꼈을 마음의 아픔을 공감하게 된다.

새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순간, 아들이 느낀 감정을 책 속에서 간추려 보면,

외삼촌과 엄마의 계략, 음모, 거기에서 느끼는 소외감, 슬픔, 절망...

 

 

그리고 그나마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애숙이 누나와 정태가 어느날 각각 사라지면서 거기에서 오는 배신감.

그것은 아들을 육순이 넘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마음 속의 녹지 않는 멍울로 남아 있게 했던 것이다.

이야기가 후반부로 접어 들면서 아들의 마음도, 어머니의 마음도 그렇게 너덜너덜 찢어 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던 가짜 악어백, 그리고 가짜 악어백 속에 담겨 있던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빨간 립스틱.

그것은 무거운 짐을 짚어졌던 어머니도 여자였음을 상징하는 표현들이 아닐까.

마치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의 어머니에게도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남자가 있었던 것처럼.

아들의 울타리가 되어 줄 것같아서 함께 살기로 생각했던 새 아버지도 결국엔 어머니에겐 짐이었고, 어머니의 비밀을 알고 있는 외삼촌도 어머니에게는 짐이었지만, 그 가난 속에서도 불평 한 마디하지 않았던 것이 그 시대의 어머니 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작가들은 자신의 글 속에서 자신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쓰기도 하고, 소설 속에 자신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집어 넣기도 한다.

박완서는 여러 작품 속에서 자신의 어머니의 교육열과 당당한 자녀로 키우기 위한 노력을 썼고,

최인호는 막내로 태어났기에 학교에 찾아오는 엄마가 다른 엄마들 보다 늙었기에 할머니처럼 느껴져서 도망갔던 것을 후회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신경숙은 그의 소설 속 구석 구석에 어머니의 모습을 담아내다가 <엄마를 부탁해>를 통해서 어느날 사라진 엄마를 찾는 과정에서 깨닫게 되는 엄마의 삶과 존재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것은 이청준의 <눈길>의 어머니라고 생각된다.

자신의 집이 다른 사람에게 팔렸지만,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에게는 그 집에서 하룻밤을 재워 보내고 싶었던 어머니의 마음. 집주인에게 사정을 해서 밤을 보낸 후에 돌아가는 아들을 배웅한다고 조금씩 조금씩 함께 걸어 갔던 어머니의 마음.

" 눈길을 혼자 돌아가다 보니 그 길엔 아직도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지나간 사람이 없지 않았겄냐, 눈발이 그친 그 신작로 눈 위에 저하고 나하고 둘이 걸어온 발자국만 나란히 이어져 있더구나 " (눈길 / 이청준 ㅣ 문힉과지성사 ㅣ p.p. 117~115)

자식에게는 나쁜 것은 알려주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마음, 자식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마음 속에 응어리진 미움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갈 수 있지만, 어머니는 결코 자식을 어떤 경우에도 미워할 수 없는 것이다.

언제나 어머니 자신보다는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인 것이다.

<잘 가요 엄마>에 나오는 아들은 성장과정에서 고통과 상처로 가슴 속에 응어리가 생겼고, 그것을 분노와 술로 풀면서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자신의 장례식이 아들의 명성에 누가 될 것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한 것이다.

" 그렇다 하더라도... 엄마는 죽음으로써 너와 화해하기를 바란 것 아니겠느냐, 장례 그 자체보다 그것의 의미가 더 컸을 게다. " ( p. 263)

작가는 " 이 소설은 그토록 진부했던 어머니에 대한 섬세한 기록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어머니에 대한 참회록이라고도 한다.

작가도 역시,

" 어머니와 내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어머니는 나로 하여금 도떼기시장 같은 세상을 방황하게 하였으며, 저주하게 하였고, 파렴치로 살게 하였으며, 쉴새 없이 닥치는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 ( 작가의 말 중에서)고 말한다.

더 늦기 전에 어머니에 대한 글을 남기고 싶어서 <잘가요, 엄마>를 쓰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어머니'란 단어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들의 마음을 찡하게 만들어 준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어머니가 떠나신 후에 참회하는 잘못을 하지 말고, 살아 계신 적에 따뜻한 말 한 마디, 해맑은 미소 한 번 더 보여 드리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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