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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 류시화 제3시집
류시화 지음 / 문학의숲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류시화의 시집을 언제 읽었더라~~
책장 귀퉁이에서 눈길조차 끌지 못하고 박혀 있는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ㅣ 푸른숲 ㅣ1991>
출간당시에 구입했으니 20 년이 넘은 책이다. 그리고 몇 번을 꺼내 읽었지만, 이후에는 손길도 가지 않은 시집.
류시화는 시인이지만 그동안 인도와 네팔 등지를 여행하면서 사색과 명상이 담긴 책들을 쓰기도 했다. 그밖에도 법정 스님과 관련된 책을 쓰기도 했고, 명상서적들을 번역하여 세상에 내놓기도 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을 것처럼>, <지구별 여행자>,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마음을 열어 주는 101가지 이야기>, < 조화로운 삶>, <인생수업> 등은 그가 우리들에게 선 보인 잠언 시집이거나 치유 시집, 아니면 산문집, 그리고 명상서적들을 번역한 책들이다.
쭈욱 훑어 보니, 복잡한 머리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책들이기도 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잠언과 명상이 담긴 책들이기도 하다.
마치 소나무 숲이 울창한 곳을 걸을 때의 느낌과도 같은 책들이다.
오랜만에 접해 보는 류시화의 시집. 그의 3번째 시집이자 15년만에 출간되는 시집이라고 한다.
시가 우리들에게 주는 느낌은 절제된 문장 속에서 은유의 표현이 담겨 있기에 더 가슴에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시는 삶을 역광으로 비추는 빛' ( 책 속의 글 중에서)라고 표현하는가 보다.
이 시집 속에는 <옹이>외에는 미발표작들이 담겨져 있다. 시인의 말처럼 '주로 길에서 썼다'는 시들이기에 '먼 곳에서 온 편지같다'는 시인 이홍섭의 말에 공감이 간다.
몇 편의 시를 읽어 가다보니 다른 시집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시인의 삶이 또렷하게 비쳐지기도 한다.
시인의 방랑벽이 가족력이었고, 젊은 날의 시쓰기가 자신 조차도 '난해한 시' 라는 생각을 가졌었음을 은연중에 표현한다.
이마를 사랑해서 만난 여인. 그러나 그 사랑은 정신이 아슬아슬 경계를 넘나들면서, 시인은 다락방 벽에 '죽고 싶다 죽고 싶다' 글을 남기고 여인은 그 글을 닦아 내면서 시인을 보듬어 준다.
훗날 30, 40 대에 이르러 시인은 길 위를 헤맨다. 시인은 갠지즈강의 화장터의 불빛을 바라보면서 날을 보내고, 그곳에서 모국의 산수유를 그리워 하기도 한다.
이런 자신의 고백은 <자화상>을 비롯한 시에 또렷하게 표현이 된다.
그동안 우리들은 그의 시를 읽으면서, 그의 여행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가 번역한 명상서적을 읽으면서 삶의 상처들을 치유하고, 깊은 사색과 명상에 잠겨 보곤 했었는데, 시인에게도 치유해야 할 상처들이 있었기에 그렇게 길 위에서 서성이면서 우리들에게 삶의 아픔을 치유하도록 도와주었었던 것인가보다.
실패와 좌절, 혼돈의 과정을 거친 시인이 수행자가 되어 시를 쓰기도 하고, 가식없는 민낯이 되어서 시를 쓰기도 하는 것이다.
고통, 방황, 종교, 명상.... 그 끝자락에서 느끼는 시인의 깨달음이 이 작은 한 권의 시집 속에 담겨 있다.
( 사진출처: 내 사진첩 속에서)
옹이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 물을 밀어 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죽지 않을 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떠나지 않을 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침묵할 것이 아니면 말하지도 않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이면, 미워하지도 않을 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 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다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 번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p.12)
직박구리의 죽음
(...)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인가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인가
무표정에 갇힌 격렬함
불완전함 속의 완전함
너무 오래 쓰고 있어서 진짜 얼굴이 되어 버린
가면
혹은, 날개가 아닌 팔이라서 날 수 없으나
껴안을 수 있음 ( 직박구리의 죽음 - 일부, p. p. 45~46)

( 사진출처: 내 사진첩 속에서)
완전한 사랑
사람들은 완전한 사랑에 대해 말한다 자신을 비운
초월적인 사랑에 대해
그러나 완전한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겨울의 소매 속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 폭풍이 거세어지자
더 이상 눈보라를 피할 수 없어
날아들어 온
멧새 한 마리를
늙은 개가 못 본 체하고 자기 집 안으로
들여보내 준다
일 년 내내 그토록 잡으려고 쫓아다닌 새를
입 속으로는 투덜거리면서 (p.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