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예술 산책 - 작품으로 읽는 7가지 도시 이야기
박삼철 지음 / 나름북스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한 때는 자주 걸어 다녔던 길들.

정동길, 광화문 거리, 북촌길, 인사동길...

그러나 한동안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이 길들 중의 몇 곳을 가끔씩 가게 되면서 그 길 위에서 추억을 만날 수 있었다.

아니, 많이 변한 모습에서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천천히 걸으면 좋은 길들. 그런 길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속에 오롯이 박혀 있다.

도시는 삭막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게 되는데, 그런 삭막함을 달래주는 조형물들.

가끔은 그런 조형물들을 보면서 왜 이곳에 저런 모습으로 서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런 조형물들이 유명 예술인들의 값비싼 예술품임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는 때론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는, 우리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거리의 예술품들을 만나기도 한다.

<도시 예술 산책>에서는 길 위의 작품 147개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 나간다.

여러 책들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다루기는 했지만, 같은 장르의, 같은 주제의 그런 어떤 책들보다도 깊이 있고, 폭넓은 이야기들이 담겼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책은 대략 3가지 유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시의 작품들을 사진과 함께 세세하게 설명해주고 평가해 주는 내용, 그리고 도시와 예술을 다양한 주제로 풀어나가는 도시 담론, 그리고 서울의 9개 동네길의 마을 예술지도 그리기로 꾸며져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책의 내용과는 무관한 영문학을 전공했다. 스포츠 조선 문화부에서 미술을 담당하게 되는 첫 직장생활을 울면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첫 직장생활 6년만에 다른 부서로 옮길 때는 울면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물론,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그만큼 예술과는 동떨어진 전공을 가졌던 사람이었기에 더 열심히 예술을 공부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6년간에 걸친 직장생활이 그를 이주헌, 이섭,김진하 등 선배 큐레이터들과 함께 미술 기획사를 차릴 수 있게 했고, 끝내는 공공미술을 전공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내용은 그저 도시의 공공미술 작품만을 보여 주고, 설명해 주는 단계를 훌쩍 뛰어 넘어 다양한 주제로 도시읽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예술 작품의 설명은 문학, 철학, 사상 등과 접목되어서 상당히 수준높게 이루어진다.

이 책에 실린 몇 몇 작품들은 도시를 거닐면서 마주쳤던 예술품들이기에 낯익은 작품들이다.

삼청동 국제 화랑의 '조너선 보로프스키'의 <지붕 위를 걷는 여자>, 낙산의 백민준 작가의 <가방 든 남자와 강아지>, 옛 정동의 배재학당의 교사 한 채와 조각 기둥. 63 빌딩 앞의 <생명의 숲>, 대치동 포스코 센터의 <아마벨> 등.

" '시간의 디자인'이 공간 곳곳에 여울져 흘러 시간과 공간, 그 속의 기억으로서의 사건이 함께 산다." (p. 96 - 옛 배재학당의 모습에서)

작년 겨울에 광화문의 <해머링 맨>이 털모자를 쓴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노동자의 모습을 거대하게 표현한 모습도 모두 작가가 의도한 그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사진 출처: 나의 사진첩에서)

시민 참여 작품인 <서울, 황금알을 품다>, < 인왕산에서 굴러온 바위>는 작가의 생각에 따라 시민들이 그 자리를 메우는 참여가 필요한 작품들이고, 그래서 그 의미가 더 큰 것이다.

특히 < 인왕산에서 굴러온 바위>는 잊혀진 장소에 서린 기억을 한데 모아, 공동의 기억창고를 만들자는 의미라고 한다.

'돌을 쌓아 주세요, 바위가 소원을 들어 줍니다.'

돌을 쌓는 그 손길에 소원을 바라는 그 마음이 함께 할 수 있으니, 아니 좋을 수 있겠는가 !

포스코 센터에 있는 아마벨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신선한 발상이라기 보다는 좀 거부감이 생겼는데, 실제로도 '아마벨'의 설치 배경이나 그 후의 철거에 대한 논란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눈에 들어오는 도시의 예술품들을 보면서 그 의미가 궁금했던 것들이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서 작가의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쉽게 된다.

그러나, 모든 예술 작품이 그렇듯이,

"작가에겐 표현할 자유가 있지만, 보는 이에겐 해석할 자유가 있다" (p. 150) 는 것이다.

내 맘대로 해석해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내가 본 예술 작품은 내 수준으로 보이는 것이기에.

신선한 발상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작품에 최정화의 <천개의 문>이 있다. 이것은 건물 리모델링의 공사 가림막이다.

이미 외국에서는 파사드라고 해서 디자인이 화려하고 다양하다. 우리나라도 철제로 막아 놓던 것을 지나 산뜻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것들이 많다.

그래도 아직은 많이 변화하지 않은 모습들을 보게 되는데, 최정화의 <천개의 문>은사람들이 실제 거주했던 집의 방문 711개로 만든 가림막이다.

발상이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도시 곳곳에는 내가 천천히 걸으면 만날 수 있는 예술품들이 널려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 나의 사진첩에서)

마지막으로 서울의 대표적인 9개 길을 따라서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이 지도와 함께 부록처럼 수록되어 있으니, 시간이 된다면 서울의 이 길들로 나가보면 어떨까

 

" 걷자, 느리게, 살자, 느리게.

그러면 도시가 작품이 된다. 삶과 일상이 예술이 된다.

더는 전원을 꿈꾸며 삶을 유예하지 말자.

바로 이곳, 도시에서 '다른 삶'을 살자." (책 뒷표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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