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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 곽세라 힐링노블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6월
평점 :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은 '13년째 여행하며 마음과 영혼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 ( 작가 소개 글 중에서), 곽세라의 중편이 2편 담긴 소설책이다.
2편의 소설은 작가가 자기자신을 '집시'라고 말하듯이 정착하지 못하고 어딘가를 부유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소설인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은 유조선에서 흘러나온 기름유출 사건으로 인하여 사람들로 부터 버려진 작은 마을의 카레가게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주 맛없는 카레를 만드는 가게에 자주 들리는 주인공 유정은 얼마전에 이곳으로 스며들었다. 이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녀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 '나' 라는 건 불치의 병 같았다. (...) 내가 나란 걸 알게 돼 버리고, 일단 알아버리고 나면 마음은, 생각은, 기분도 인간의 그 종양 덩어리에 휘쓸려 전전긍긍하게 된다. 이 과정은 매번 경이롭다. 내가 그토록 고분고분한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이. 종이인형처럼 꺾이고, 젖고, 휙 비틀려 버릴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좋든 싫든 이 지독한 덩어리와 함께 마지막 날을 맞으리라는 걸 얌전히 뼛속 깊이 받아들인다는 것이. " (p. 63)
극단 츠키의 헤어 담당인 엄마로 인하여 극단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녀의 머리카락이 군데 군데 보랏빛이기에 어려서부터 놀림의 대상이 되었고, 극단에서도 배역을 맡지 못하는 잡일을 담당하게 된다.
묵묵히 극단 일을 돕던 중에 그녀는 뮤토가 된다. 뮤토란 무대 위에서 어떤 배역을 맡아서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나 선생을 따라서 어디론가 플레이를 하러 가는 것이며, 그 플레이 중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대사만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유정은 자신의 고객들의 머리카락을 손질하면서 플레이하는 것이다. 그의 고객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과거 속의 아픔을 날려 버리고, 그들의 미래와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 머리카락은 모든 것을 말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 외면하고 있는 것, 앞으로 일어날 것 모두를. 그걸 출렁출렁 늘어 뜨리는 사람들이 울거나 웃는 걸 보면... (...) " (p. 30)
처음에는 혼자 플레이를 했지만, 나중에는 다른 뮤토와 함께 플레이를 하게 된다.
고객들의 결핍의 욕망은 유정의 손길이 스쳐가면서 해소되기는 하지만...
유정은 뮤토로서 일을 한지 7년만에 그곳을 벗어나 바닷가 마을로 오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카레를 만나고, 리에를 만나고, 네코마마를 만나고, 그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그들의 아픔과 슬픔, 거짓말 등을 알아가게 되고, 그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두 번깨 소설인 '천사의 가루'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각자 이 소설 속의 관찰자 입장이 되어서 각각의 이야기로 사건을 스케치하여 나가는 것이다.

요요는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다. 마치 '다큐멘터리 긴급 출동 911' 처럼 길위에 너부러져 숨진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 본다. 그 시각에 공항에서는 라라가 크림색 코트를 입고 그를 기다리고 있다.
오지 않은 요요를 같은 시각에 같은 곳에서 같은 옷을 입고 몇 날 며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요요와 라라의사랑, 요요의 죽음이후에 항상 공항의 그 자리에서 요요를 기다리는 라라의 이야기를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시점을 통해서 전개해 나가는 소설이다.
각 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주 짧은 이야기들이고, 각 상황에 따라서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들이 모여서 그들의 사랑을, 그들의 이별을 그려내는 것이다.
사랑의 기억보다 더 강렬한 것은 사랑의 부재인 것일까.
상실의 아픔보다 더 아름다운 상실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요요의 죽음을 받아 들일 수 없었던 라라에게 전해지는 천사의 가루.
라라는 그 천사의 가루를 조금씩 날려 보내면서 상실의 아픔을 잊어가는 듯 하지만, 소설은 그것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 사랑의 끝까지 가보지 못하고 남겨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p. 388)
라라의 주변을 맴돌면서 상실의 아픔을 날려 보낼 수 있는 천사의 가루를 전해 주었던 사람.
그는 라라가 자주 들리던 에코도 스시에서 그녀를 기다리지만, 그녀는 이제 그곳에 나타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자신이 라라에게 전해주었던 것처럼, 그에게도 전해지는 작고 하얀 상자.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결말이 가져다 주는 그 느낌때문에....
상실 후에 오는 이별을 받아 들일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잘 표현되었다.
이 책의 책표지 글에는 " 사랑과 집착, 욕망과 두려움에 대한 치명적인 관찰!" 이라는 문장이 있는데, '천사의 가루'가 바로 그 치명적인 관찰의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색이 있는 소설이다.
작가후기를 통해서 작가는 " 다만 지독히 아름답고, 바보같고, 부서지기 쉬운 삶의 순간들과 그것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 그리고 고요한 치유에 관한 이야기" ( 작가 후기 중에서)라고 쓰고 있다.
힐링노블 !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을 통해서 곽세라 작가의 소설을 처음 접하기에 소설의 기술적 요소인 문장의 스타일이나 장면 묘사, 상징 등을 처음에는 따라잡기가 좀 어렵기도 하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소설읽기를 통해서 작가의 스타일에 젖어 들게 되면 작가가 작품 속에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상황을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묘사되는 문장들은 작가의 상상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 두 편의 중편소설을 쓰는데, 그 바탕이 된 것은 아무래도 그동안 그녀가 세계 각국을 넘나들면서 만났던 인연들과, 경험들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한다.

독특한 소재와 문장 스타일이 돋보이는 두 편의 중편소설을 통해 또 한 사람의 작가를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해 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