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초 : 한 남자 사랑의 기초
알랭 드 보통 지음, 우달임 옮김 / 톨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지적 성찰의 집합체라는 생각이든다.

작가의 책들중에 에세이로 분류되는 책들인 <여행의 기술>, <불안>, <행복의 건축>, <공항에서의 일주일을>, <일의 기쁨과 슬픔> 등을 읽어 보아도 서정적인 에세이가 아닌 어떤 사물이나 상황에 대해서 정치, 사상, 철학, 심리학 등의 지적 능력을 동원하여 관찰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알랭 드 보통의 이런 책들을 읽던 중에 그가 쓴 사랑에 관한 소설이라고 해서 읽게 된 책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이다.

이 책은 알랭 드 보통의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이라고 불리는 소설 중의 하나이다.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너를 사랑한다는 건=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의 개정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이성이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고 이별을 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달콤한 사랑의 이야기가 아닌 남녀의 심리분석과 철학적 사유에 이르는 글들로 채워 나간 독특한 소설이다.

(...) 솔직히 이런 분석은 너무 사람을 힘들고 삭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소설이라는 생각으로 읽으면 안된다. 철학책이라는 개념이 더 이 책을 이해하기 쉬우니까}은 소설가로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이야기의 전개과정을 보여준다.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브리티시 항공 보잉기 안에서 1인칭 화자와 클로이(여)의 만남에서부터 헤어짐까지의 사랑의 과정을 저자만의 새로운 시각으로 엮어 나간다.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는 비행기 탑승의 확률 계산으로 부터 시작한다. 보잉기의 내부 그림까지 곁들여 가면서 계산한 확률은 5840.82분의 1이란다. 이것이 두 남녀의 '낭만적 운명'에서 정해진 필연적 사건의 만남이 될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이후의 과정별 상황 전개의 심리적 분석, 어떤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 그때의 철학적 분석 등이 계속 이어진다. 모든 상황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다. 마르크스, 자유정치, 공포정치까지 동원하여 설명이 이어진다.

이글의 주제가 되는 '연애'는 우리 대부분이 경험하게 되는 과정인데, 그 과정을 분석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 운명적 만남- 전화걸기- 만남- 상대방 알아가기- 친근감- 같이 지내기-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 알아가기- 여자의 부모님 만나기- 사소한 의견차이-그녀의 어떤 점이 좋은가에 대한 생각- 좋아하는 의미-다툼-멀어짐 -화해- 여행- 남자의 친구와의 만남뒤의 이상한 예감- 상대방에 대한 불안감 - 다시 가까워지는 듯- 뭔지 모르는 의심- 그녀의 행동의 변화- 결별- 여자의 새로운 연인(자신의 짐작의 적중)- 블루 크리스마스(자살시도)- 실패- 회상(보고싶은 마음)- 서서히 잊혀짐-

이와같은 과정은 흔한 사랑의 과정들인데, 과정에 의미가 부여된다.

이 책의 기본 줄거리인 1인칭 화자와 클로이의 사랑 이야기는 아주 평범하고 때론 너무 많이 보았던 사랑이야기의 장면들이기때문에 진부하게까지 느껴질 수 있는데, 사랑의 과정을 해석하는 시선은 너무도 철학적이고 학문적인 통찰과 사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의 글이 특이하고, 그러한 글쓰기의 재주가 돋보이는 것이다. 아마도 글쓰기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표현해도 과언을 아닐 것이다. (...)

(<왜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는가>를 읽고 쓴 서평 중에서 )

이렇게 알랭 드 보통의 글들은 지적 성찰이 돋보이는 독특한 작품들이기에, 정이현 작가와의 공동작업으로 소설을 쓴다는 것을 알고는 어떤 소설이 탄생할 것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두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주제는 같으나, 서로 다른 이야기의 책이 나온 것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이십 대에 쓴 저자의 자전적 연애소설로 인간의 관계와 사랑에 대한 탐구였다면, 17년만에 쓴 보통의 신작소설인 < 사랑의 기초 - 한 남자>는 사십 대가 된 알랭 드 보통의 자전적 결혼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사랑을 하여서 결혼을 한 부부들이 어느 정도 가정생활에서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이 지극히 평범한 삶의 모습으로 정착되었을 때에 부부들이 가질 수 있는 일상을 깊이있게 탐색해 나간다.

가정생활, 육아, 자녀에 대한 부모의 역할, 성, 외도 등 다양한 소주제의 성찰이 심리학적으로, 철학적으로 탐구되고 분석되는 것이다.

" 이 소설은 ‘오래된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최초의 행복감이 자취를 감춘 뒤에, 내가 그토록 매혹되었던 낭만적 사랑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사랑에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낡은 사랑의 초상이 독자들에겐 암울하게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작가인 나는 이것이 진지하고 성숙한, 조심스럽지만 보다 희망적인 답이 되길 바랄 뿐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

보편적인 연인들처럼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여 중년을 맞은 벤과 엘로이즈의 일상 속에서 그들의 사랑이 어떻게 변하여 가고 있는가를 작가는 남성인 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책 속의 글 중에 누구나의 마음 속에 들어 올 수 있는 문장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는,

'우리가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보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결국에는 훨씬 잘 해 준다'글이다.

냠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가장 잘 해주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친절하게 대해 주면서, 집에 돌아와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스트레스를 다 풀어 버린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사랑에게 기대하는 것은 행복이라기 보다는 친밀감'이라는 것이다.

'행복이라기 보다는 친밀감'

과연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알랭 드 보통이 이 소설을 통해서 전하는 메시지를 보면,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그럭저럭 계속해 가나가는 일.

그것은 진짜 용기이고, 영웅주의라는 것이다.

중년부부의 사랑을 달콤하고 재미있게 그려내기 보다는 결혼에 관한 주제들을 중심으로 여러 방면에 걸쳐서 탐색하고 분석하는 알랭 드 보통 특유의 글쓰기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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