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위 미친 여자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펄벅의 <대지>를 비롯한 소설, 위화의 소설 몇 편, 그리고 얼마전에 읽은 추산산의 <내 사랑은 눈꽃처럼 핀다> 외에는 중국 소설을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한때 중국과는 정치적 이념이 달랐기에 중국의 소설을 접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번에 읽게 된 소설은 쑤퉁의 <다리 위 미친 여자>이다.

작가인 쑤퉁은 1963년생이고 1983년에 단편 <여덟 번째 동상>으로 등단하였으며, 그의 소설인 <처첩성군>은 20세기 중국문학 베스트 100 에 선정되었다.

<다리 위 미친 여자>는 14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단편소설집이다.

단편소설을 읽는 재미는 한 권의 책에서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며 단편이 지니는 글의 짧은 호흡 속에서 처음 읽을 때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반전에 놀라움의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책에 실린 14편의 단편들은 다양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것은 단편소설집 속의 이야기들이 중국의 변화하는 시기에 초점이 맞추어 졌기때문일 것이다.

작품 속에서는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폐허가 되어 가는 모습을 그려내기도 하고, 어떤 시점에 있어서 추억 속의 한 장면으로 되돌아가서 그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들을 그려내기도 한다.

또한, 주인공들의 모습도 과거에 어떤 이유로든 일그러진 모습으로 살아갔던 사람들이거나, 현재에도 부유하듯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표제작인 <다리 위 미친 여자>는 작가가 주인공을 11월의 국화에 비유했듯이,

막 피어 고운 듯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시들시들한 11월의 국화.

다리 위에 매일 나타나는 미친 여자는 언뜻 보면 눈에 띄는 미모이지만, 찬찬히 보면 시들시들한 모습의 여인이다.

미모의 여자이기는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가 미쳐서 시들거리는 것이다.

미친 여자는 매일 다리 위에 곱게 차려 입고 나타난다. 하얀 벨벳 치파오를 입고 손에는 단향나무 부채를 들고.... 또는 꽃무늬 치파오를 입고 다리 위에 나와서 자신의 딸인 쑤쑤를 기다리기도 한다.

멀리서 보면 그 단아한 모습이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정신은 어디론가 달아났다.

아무도 미친 여자를 상대해 주지 않지만, 슬그머니 나타나서 말벗이 되어 주는 할머니가 있다.

친절한 듯한 할머니는 몇 마디 말을 붙이고는 미친 여자의 치파오에 달린 매듭 단추옆의 나비 브로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녀가 가졌던 보석들은 이렇게 할머니의 손으로 들어간다.

미친여자에게 다가오는 또 한 사람은 여의사 추이원친이다.

미친여자가 입은 옷이 탐이 나서 접근하여 그녀와 똑같은 옷을 만들기 위한 수작을 부린다.

똑같은 옷을 만들기 위해서 그녀의 매듭단추까지 떼어내는 일을 저지르지만....

옥신각신하던 끝에 다리위의 미친여자는 참죽나무거리에서 이십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다리 아래의 정신병원으로 실려가게 된다.

간단한 줄거리 요약으로는 이 단편소설의 진가를 알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처음 접하는 작가의 단편소설들이기에 처음 얼마 동안은 읽는 속도가 느렸지만, 그이후에는 읽는 재미에 빠지게 되었던 그런 소설들이다.

<다리 위 미친여자>에서 과연 미친여자는 하얀 벨벳 치파오의 주인공만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뭔가에 미친 두 여자의 이야기인 것이다. 아름다움에 푹 빠져서 원래 미친여자, 그리고 미친 여자와 똑같은 치파오를 입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멋에 미친 여자가 나오는 것이다.

치파오를 둘러싼 미친 두 여자의 이야기에 남의 것을 탐하는 할머니가 감초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처럼 우리 사회에도 멋에, 아름다움에 정신줄을 놓은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연예인의 결혼식 후일담은 언제나 씁쓸함을 남겨준다. 웨딩 드레스가 외국에서 공수해 온 몇 억짜리, 티아라는 몇 억. '장난하냐?' 왜 이런 것이 이슈가 되는 것일까?

자신의 결혼식을 빛내기 위한 웨딩 드레스와 티아라가 몇 억인들 어떻겠는가.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가 있으니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인터넷에 띄우는 자들이 더 정신줄을 놓은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 속의 이야기들 중에는 마치 전설의 고향처럼 귀신에 얽힌 듯한 이야기들도 있다.

<수양버들골>에서의 트럭 운전사가 겪게 되는 사고와 그 사고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는 이야기.

<의식의 완성>에서 나 라는 주인공이 들려주는 민속학자 이야기. 바꿔쑹 촌에 온 민속학자가 기이한 항아리를 발견하고, 그 항아리에 얽힌 귀신잡기 풍속을 재현한다. 그 과정에서 60년전의 풍속을 그대로 재현하는데, 기이한 일이 일어나게 된다. 마치 독자들도 귀신에 홀린 것같은 환상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재미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가 계속된다는 특징이 있다.

" 나는 그 민속학자를 알았다. 그의 죽음은 신비한 요소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추도회장에서 나는 다른 민속학자들이 혼잣말하듯 중얼대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거야말로 의식의 완성이로군. " (p. 154)

<물귀신>이야기도 하루종일 다리 위에 서 있는 계집아이 덩씨네 바보 이야기인데, 물귀신이 그녀에게 준 한 송이 붉은 커다란 연꽃. 믿거나 말거나, 그리고 약한 전설의 고향이라고 해야할까.

그런가 하면, <수양버들골>, <토요일>, <신녀봉>, < 하트퀸>은 각종 교통기관인 기차, 유람선 등에서 만나게 되는 인연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그중의 <토요일>이 묘한 느낌을 가져다 주는데, 기차에서 만난 두 남자가 친구가 되는 이야기이다.

짐을 들어준 인사치레로 집에 놀러 오라고 하니까 정말 놀러 온 라오치.

그는 샤오밍의 집에 토요일마다 찾아 오게되고, 그때마다 무엇인가 샤오밍에게 도움을 주게되어 고맙기는 한데, 샤오밍과 아내에겐 토요일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꾀를 내서 그의 방문을 막게 되는데....

만남보다 더 힘든 헤어짐. 헤어짐 후의 어색한 만남.

추억과 얽힌 이야기로는 <좀도둑>, <술자리>, < 8월의 일기>, <대기압력>, < 집으로 가는 5월> 등이 있다.

<술자리>는 얼핏 성석제의 소설 <왕을 찾아서>가 연상되기도 한다. 물론, 소재도 주제는 다르지만, 자신의 고향을 찾아가서 성장기의 친구를 만나게 되는 것이 그런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대기압력>은 오래 전에 떠난 고향에서 삐끼가 된 물리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자신이 제자임을 말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를 따라 허름한 초대소에서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하룻밤을 묶게 되면서, 그 선생님의 행동에서 과거의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하게 되는 이야기인데, 상당히 흥미롭다.

책 속의 단편소설들은 시대가 명확하게 담겨 있지는 않지만, 1960년에서 1970 년대에 이르는 즈음의 이야기들로 생각된다.

근대화의 작업에 의해서 주인공들이 살던 도시가 폐허가 되고, 그 폐허 속에서 잃어버리고 살았던 날들을 기억해 나가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 여기는 그가 예전에 살았던 곳이다. 이 폐허가 된 땅에 아직도 그의 발자국이 남아 있을까? 그것이 이 낡고 지친 도시만이 대답할 수 있는 물음이다. 어제의 마음은 어제에 남겨두자 ." (p. 298)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현재 속에서 과거를 생각하면서 그들이 잃었던 것이 무엇인가를 독자들과 함께 생각하게 해 주는 것이다.


14편의 소설이 각각 특색이 있으면서도 추억이 깃든 이야기여서 추억 속 여행을 하는 듯하기도 한다.

처음 접해본 중국 작가 쑤퉁의 단편소설은 퇴색한 빛깔의 무늬들처럼 다소 칙칙한 배경을 깔고 있기는 하지만, 과거 속의 여행처럼 많은 느낌으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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