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클라시쿠스 - 클래식 멘토 7인이 전하는 클래식 대화법
김용배 외 지음 / 생각정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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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으셨다. 학창시절에 아끼고 아낀 돈으로 구입하셨다는 클래식 음악을 담은 레코드판이 여러 장 들어있는 앨범처럼 두꺼운 것들도 있었다.

휴일의 아침은 클래식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대청소를 하는 날이었다. 그렇게 얻어 들은 클래식 음악들.

아버지가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된 것은 아버지의 매형 덕분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러니까, 내 기억 속에는 남아 있지 않은, 사진으로만 보았던 나에게는 고모부가 되시는 분이다.

그분은 한국의 오페라 역사에 한 획을 그으신 분이었다. 원래는 의학을 전공하신 의사셨는데, 선교사로부터 발성법을 배우면서 음악에 심취되셨던 것이다.

1930년대 후반에 이탈리아에 성악 공부를 위하여 유학을 가셨고, 돌아와서는 한국 최초로 오페라를 공연하셨다고 한다.

이후에,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디션에서 동양인 최초로 합격을 하셨고, 의사와 음악 활동을 함께 하시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통해서 고모부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 서평을 쓰면서 그분에 대해서 검색을 해 보니, 내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내용들도 알 수가 있었다.

아버지가 막내였기에 고모와는 나이 차이가 많았는데, 자주 출가한 누나의 집을 다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클래식에 눈을 뜨시게 된 것이다.

나는 어릴적부터 클래식을 많이 들어 왔지만, 클래식 소품이나 유명한 베토벤, 모짜르트, 멘델스존 등의 작품들의 극소수는 알고 있지만, 작품명에 피아노 협주곡, 바이올린 협주곡, E minor, op.64 , D major, op.77 등이 들어가게 되면 그때부터는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처럼 클래식은 우리에게 가까이 하기엔 먼 존재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음악 감상실이라는 곳이 있었다. 생각나는 곳으로는 '돌체', '르네상스'라는 곳이 떠오른다. 음악 감상실의 입구에서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신청곡을 받기도 했는데, 감상실 앞의 작은 게시판에는 지금 들려주는 클래식 음악명을 적어 두었고, 감상실을 찾은 사람들은 심각한 척 앉아서 음악에 몰두하기도 했었다.

어쩌면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클래식 마니아들이라기 보다는 어딘가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작용을 했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옛 추억을 더듬으면서 펼쳐든 한 권의 책은 <행복한 클라시쿠스>이다. 클래식 음악의 안내서라는 책띠의 글을 눈여겨 보면서....

'클라시쿠스(classicus)라는 단어부터 생소하다. classicus는 classic의 어원이 된 라틴어로 '클래식과 함께 하는 사람들', '클래식과 대화하는 사람들', ' 클래식 안에서 자유로운 사람들' 이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우리의 일상에서는 클래식이 함께 하고 있기는 하다. CF 광고 속의 음악, 드라마나 영화 속의 음악 들에서도 클래식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듣는 클래식은 아주 작은 몇 소절에 그치게 되기는 하지만....

'반짝 반짝 작은 별'이라는 동요의 멜로디가 모차르트의 <아, 어머님 들어주세요에 따른 12개의 변주곡>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일상에서 클래식이 가까운 곳에 있음을 알게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클래식 음악은 무게감이 있다. 연주회에 가는 것부터가 그렇다.

의상부터 신경을 써야 하고, 편안함 보다는 경직되어 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비싼 입장료에 대한 부담감까지.

서민으로서 클래식 연주회에 간다는 것은 평생의 몇 번 갈까 말까 한 행사(?) 일 수도 있다.

특히, '조용히 듣고 있기'의 억압감이다. 음악이 피아노시모로 이어질 때에 기침이라도 나온다면, 그 당혹감은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또한 박수치기에 대한 압박감.

" 악장 간 박수의 자제는 더 나은 연주를 위해, 더 좋은 감상을 위해 내 개입을 자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박수를 치지 않는 행위는 더 좋은 연주를 들려 달라는 적극적인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클래식을 아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연주자와 감상자 모두 보다 좋은 음악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이며, 당대의 불문율일 뿐이지 절대의 진리도 문화적 우월함을 과시하는 규율도 절대 아니다. " (p.73)

대중음악 콘서트의 흥겨움에 젖어 있는 우리들에게 이런 사소한 것같은 행동의 제약들은 아무래도 부담감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책 속에는 클래식 멘토 7명이 어떻게 클래식을 접하게 되었는가, 자신들에게 클래식 음악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클래식 초보들이 어떻게 클래식에 입문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루고 있다.

그런데, 클래식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이 책을 읽는데도 어려움이 있다. 클래식 음악작품명과 함께 그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는 멘토들의 이야기는 책장이 잘 넘어가지를 않는다.

그 음악을 들어 본 적이 없으니, 피상적으로 읽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의 4악장에 해당하는 정만섭의 글은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다.

슈만과의 관계를 3 꼭지의 일화로 풀어나간다.

군복무시절에 부관과의 이야기. 그는 군복무 병장 말년에 전방에서 몰래 몰래 클래식 음악에 심취되었었다고 한다. 이어폰을 끼고 경계 근무를 서던 중에 부관의 순찰을 받게 되는 난감한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그런데, 그의 이어폰의 한쪽을 자신의 귀에 끼고 잠깐 음악을 듣던 부관은 슈만의 음악임을 알아 차리는 것이다. 클래식에 대한 어느 정도의 깊이가 없으면 알 수 없었던 음악의 중간 부분이었건만.

그후 10년이 흐른 후에 지하철에서 그때의 부관이 클래식 음반 전집을 판매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아는 척하기도, 모른 척하기도 어색한 상황이었는데, 결국에 그들은 결국에 해후를 하게 되고, 그가 CD한 장을 건네 주는데, 그것은 군복무시절에 그들이 함께 이어폰 한쪽 씩을 끼고 듣던 슈만의 '안단테 칸타빌레'였던 것이다.

어떤 스님과의 음악으로의 만남. 스님이 글렌굴드의 음반만을 골라 사가게 되면서 클래식으로 만나게 되는 스님 '스굴드'와의 이야기.

대학시절의 캠퍼스 커플이었던 헤어진 사랑과의 연결이 되었던 슈만의 시인의 사랑에 관련된 이야기.

" 음악과 만나는 단계는 참으로 다양하다. (...) 음악과 만나고, 그 만남의 경험이 점점 확장되고, 그 때문에 내 생활이 달라지기도 한다. " (p. 154)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도 어떤 계기가 있어서 마음에 다가온 경우가 있다.

엄정화가 주연을 하였던 <호로비츠를 위하여 For Horowitz (2006)>라는 영화의 끝장면에 빈에서 활동중인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연주하는 엔딩곡이 '라흐마니노프' 의 피아노 협주곡 제 2번인데, 그 감동이 그 순간부터 이 음악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또 한 곡은 영화 <피아니스트 The Pianist (2002)>의 주제곡인 쇼팽의 야상곡 (Nocturne)인데, 그 애잔한 선율은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줄줄 흘렀던 기억과 함께 마음 속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이외에도 이 영화 속에서는 쇼팽의 음악이 여러 곡 나오는데, 쇼팽의 피아노 선율은 고음의 청아함이 돋보이기도 한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단기간에 섭렵되는 것이 아니기에, 일상 생활을 하는 중에 좋은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되면 그 곡에 심취하게 되고, 그런 과정이 거듭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내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책의 5장 유정우의 글에서는 클래식이 언제,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음악이지만, 상류층의 엔터테인먼트로 인식되는 이유나, 클래식 음악이 과거의 유물로 인식되는 이유, 클래식 공연장에서 지켜야 할 사항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클래식 멘토 7명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그들이 추천하는 클래식 음악이 몇 곡 선정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느낀 점들이지만,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어떤 계기에 좋아하게 된 음악을 한 곡, 두 곡 듣다 보면, 그 음악과 관련되어 또다른 음악을 듣게 되고, 그런 일상의 반복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

꼭 클래식 음악이 아니라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악듣기가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한다.

대중음악 콘서트장에서 마구 자신의 열기를 발산할 수 있는 것도 좋고,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집에 앉아 기회가 될 때마다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도 좋고....

이 책은 KBS 클래식 FM 개국 33주년 기념도서로 출간된 책인데, 클래식 멘토 7명의 이야기를 통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을 접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려는 의미에서 나온 책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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