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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침 一針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2년 3월
평점 :
<일침>의 저자인 정민은 어린이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MBC TV의 <느낌표>를 통해서 선정되었던 <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정민 ㅣ 보림 ㅣ2002>를 통해서 어린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대중들이 쉽게 한시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한시를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풍경, 시가 쓰여지게 된 배경, 시를 쓴 사람에 대한 이야기 등을 아버지같은 선생님의 모습으로 옆에 앉아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책이어서 많은 독자들이 한시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게 해 주었었다.
그후에 읽게 된 책은 <미쳐야 미친다/ 정민 ㅣ 푸른역사 ㅣ 2004> 였는데, 책제목의 뜻이기도 한, ' 불광불급( 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역사 속의 인물들을 통해서 풀어나가는 내용으로 재미있게 읽었었다.
두 권의 책으로 친근감을 느끼게 된 저자인 정민의 새로운 책인 <일침>도 그래서 관심이 가는 책인 것이다.
이번에는 어떤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유익함을 선사할까?
<일침>에 실린 글들은 그동안 저자가 아껴 만지고 다듬었던 글들이며, 글을 쓸 때는 구분이 없이 썼지만, 책을 엮는 과정에서 4부로 나누게 되었다.
1부: 마음의 표정
2부: 공부의 칼끝
3부: 진창의 탄식
4부: 통치의 묘방
이렇게 4부로 나누어지고 그 속에 담긴 글제목은 사자성어로 씌여져 있다. 사자성어라고 하니까 벌써부터 겁먹고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렇게 쉬운 사자성어가 나와도 버벅거리면서 말도 안 되는 사자성어를 이야기하는 예능인들을 보면서 도대체 우리의 지식 수준이 이정도 밖에 안될까 하는 생각을 하곤했기에, 사자성어가 사자처럼 무서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하면 초등학생, 중고등학생들이 한문을 공부하다 보니, 무식한 어른들보다 훨씬 사자성어를 잘 알고 있기도 하다.
책의 목차를 보는 순간, 나 역시 아찔하다. 듣도 보도 못한 사자성어가 줄줄이 빼곡하게 목차를 메우고 있다.
그러나, 글제목에 따라 사자성어를 한자로 써 놓고, 뜻 풀이를 해 놓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사자성어가 가진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이런 사자성어가 어디에서 유래되었는가, 사자성어가 쓰여 있는 책이나 그 말을 사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것이다.
사자성어. 단 4 글자에 담긴 뜻은 그리도 넓고, 그리도 깊은 것이다.
한 제목, 한 제목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그 속에 담긴 심오한 뜻을 마음에 새기게 되는 것이다.
지지지지 (知止止止)
발음만으로는 노래 가사처럼 느껴지는 이 사자성어의 뜻은 '그칠 데를 알아서 그쳐야 할 때 그쳐라'
그침을 아는 지지(知止)도 중요하지만, 이를 즉각 실행에 옮기는 지지(止止)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니, 분간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한다.
있어야 할 자리, 나만의 자리는 어디인가? 지금 선 자리가 내자리인가?
이런 생각으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는 사자성어이다.
이명비한(耳鳴鼻澣) 귀울림과 코골기, 어느 것이 문제일까? 귀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은 남은 듣지 못하고 나만이 들을 수 있은 것이고, 코골기는 남은 듣지만 자신은 듣지 못하는 소리이다.
내게 있는 것을 남들이 알아 주지 않거나, 남들은 다 아는데, 저만 모르는 것에 빗대어 하는 말로, 이 말이 뜻하는 것은 "좋은 글을 쓰고, 본이 되는 삶을 살려면 어찌해야 하나? 제 이명에 현혹되지 않고, 내 코고는 습관을 인정하면 된다. " (p. 71)
찬승달초(讚勝撻楚 ) 칭찬이 매질보다 훨씬 더 낫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지 않은가? 사자성어로 이에 해당하는 말인데, 부모의 칭찬, 신뢰, 그리고 환한 낯빛은 아이를 춤추게 (?) 하는 것이다.

우작경탄(牛嚼鯨呑 ) 소가 되새김질 하고, 고래가 한입에 삼키듯이
이 사자성어는 비교해야할 많은 것들에 쓰일 수 있는데, 독서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정독과 다독에 대한 비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소가 되새김질하듯 책을 음미하며 천천히 읽을 것인가? 아니면 고래가 한 입에 삼키듯이 많은 책을 읽을 것인가?
답은 책에는 다독할 것도 있고, 정독할 것도 있다는 것이다.

<일침>은 정독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자화자찬(自畵自讚) 제 입으로 하는 칭찬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사자성어이지만,
" 예전에 자화자찬은 지금처럼 단순히 제 자랑의 의미로만 쓰는 말은 아니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와 긍지를 담았다. 살아 있는 정신의 표정이 있었다. " (p. 265)
이렇게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자성어마저 그 속에 담긴 뜻을 미처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도 있는 것이다.

요즘의 세태는 팍팍하다.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져서 싸우기 일쑤이다. 내 생각과 다르면 틀린 것으로 간주해 버린다.
나 이외에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로 변해가고 있다.
"현실이 답답하면 옛 글에 비추어 오늘을 읽었다"라고 말한다." (p.4 , 서언 중에서)


저자는 인문학자로서 그동안 한문학을 통해서 얻은 지식들로 생각의 폭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넓은 줄 모르고 벌어지기만 하는 사회갈등, 그 갈등 속에서 잃어버려 가고 있는 것들을 찾기 위해서 책 속의 글인 100개의 글로 우리 사회에, 우리들에게 일침을 놓고 있는 것이다.
날카로운 일침을 놓고 있는 것이다.
그 일침은 차고술금 (借古述今), 즉 옛 것을 빌어 지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은 한 번 읽고 책장 속에 꽂아 놓을 책이 아니다. 가끔씩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읽고, 또 꽂아 놓고, 또 생각나면 다시 꺼내서 읽어야 할 그런 책이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함께 해야 할 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