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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난설헌>을 읽으면서 이 책을 쓴 최문희 작가가 궁금했다. 그래서 몇 번의 검색에 걸쳐서 너무도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사의 내용은 <76세 작가의 집념으로 되살아난 허난설헌의 영혼’> 이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놀라울 일이었다. 앞서 최문희 작가와 동행으로 강릉의 난설헌 유적지를 찾는 기사를 읽었기에 작가의 모습으로 연세가 많으시다는 것은 알았지만, <난설헌>이 76세에 쓴 소설이라는 것이 흥미롭기도 했다.
그리고, 작가의 말에 " 내 한문 실력의 한계를 벗어나는 부분은 남편 오 교수가 보완해 주었고,(...)" 라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 내용의 '오 교수'가 나의 스승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작가 소개글의 "서울대 지리교육과 졸업"이란 글을 읽으면서도 지리교육과와 소설가라는 좀 특별한 경력이 눈에 들어 오기도 했는데, 작가의 부군이신 오홍석 교수님은 나의 대학시절에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 강의를 오시던 교수님이셨다.
제주도가 고향이셨기에 제주도 답사때에는 함께 답사를 가시기도 했던 분.
학생들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시던 분이기에 교수님의 사랑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두 분은 캠퍼스 커플이었고, 그당시에 최문희 작가는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셨다.
우리들이 보기에도 두 분은 자타가 공인하는 잉꼬 부부셨는데....
존경하는 스승님의 아내가 썼다는 <난설헌>.
그 사실만으로도 애착이 가는 소설이고, 내 책장 속에 고이 간직하고 싶은 한 권의 책이 되고야 말았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지하철 속에서였다. 1시간이 넘게 지하철을 타야 했기에 가볍게 읽을 책을 골라 외출을 하게 되었고, 지하철 속에서 펼쳐든 <난설헌>은 첫 장인 '녹의홍상'에서 초희의 혼례를 앞둔 함받는 날의 이야기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문체의 화려함과 조선 중기의 전통 혼례 의식까지,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사건까지, 아주 섬세하면서도 애련하고 아름답게 그려진다.
초희의 함들어 오는 날의 불길한 날씨, 조청단지에 빠진 쥐, 함 속에 곱게 들어 있던 녹의홍삼이 가닥 가닥 찢어 발겨져 나무에 걸리는 이야기가 그미의 삶이 평탄하지 못함을 소설의 초반부에서 부터 암시를 한다.
8살에 지었다는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은 어찌 그미(문학작품에서 쓰는 그녀의 뜻)를 조선 최고의 문인이라고 아니 할 수 있겠는가.
신경숙 작가가 <리진>을 쓸 당시에도 리진에 대한 자료가 단 몇 줄이었듯이, <난설헌>역시 작가가 많은 고증자료를 찾아 보았지만, 그미에 대한 자료는 단 몇 줄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미가 남긴 213수의 시(詩)들.
작가는 난설헌의 두 측면을 글로 담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시인으로서의 난설헌과 한 여인으로서의 난설헌. 이 두 측면을 직조짜듯이 두 가닥으로 엮어 나가야 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200자 원고지 2400매를 채웠던 소설은 원고지 1400매로 줄여야 했기에 작가는 난설헌의 여인으로서의 측면을 더 부각시키게 된 것이다.
유교 사상이 바탕에 깔린 조선의 여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꽤나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마음 속에 항상 용솟음치는 감정들을 시로 뿜어 낼 수 있는 난설헌이었다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미의 집안은 조선시대의 사대부의 집과는 다른 분위기였기에 항상 서책과 지필묵을 곁에 두는 아녀자를 이해할 수 있는 집안이었지만, 그미가 시집을 가게된 안동김씨 김성립의 집안은 그런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집안이니, 그미의 천재적 재능은 오히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자식의 앞날을 가로 막는 장애물로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서슬 푸른 네 치맛자락이 남정네 앞 길을 막는구나" (p. 248)
" 요물이로다, 내 지에 운기가 쇠락해, 저런 것이 들어 왔지, 계집의 기가 하늘에 뻗쳤으니 어찌 한 지붕 아래 사는 남정네의 앞 길이 창창 열리기를 바란단 말인가." (p.249)

거기에 남편의 무능력함과 외도는 조선의 가부장제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묵인되고, 그 속에서 그미는 더 큰 고통의 나날을 보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남편인 김정립과는 더불어 나눌 화두도, 시를 읊으며 소통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삶의 목표도...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소설 속에는 최순치라는 첫사랑의 인물이 등장한다. 물론, 소설이기에 그 부분은 허구의 세계이겠지만, 아주 아름답게 표현된다.
살포시 건네주는 부용화관, 먼 발치에서만 그리워하는 마음.
시댁에서 내쳐져서 임영에 내려가 있을 때에 짧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야기로.
그리고, 그미가 죽는 그날까지 멀리에서 서성이는 최순치의 가슴앓이로.
애틋하지만, 이루어질 수는 없는 그와 그미의 아름다운 사랑.
마음 속에만 품고 살아야 하는 사랑으로.
" 김성립과 정혼한 여인이 분명하거늘, 어쩌자고 마음에 물이랑을 잠 재우지 못하는가. 아니라고 뿌리칠 수록, 안 된다고 억제할수록 입술에 깨물리는 그리움을 어쩌란 말인가." (p. 46)

그미에게 여자의 운명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벽이, 어둠의 벽이, 남편의 벽이, 법도의 벽이 그미를 향해 좁혀 들어오는 것만 같은 것이었던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친정의 몰락, 그리고 딸과 아들을 먼저 앞세워 떠나 보내야 했던 아픔.
그것은 절절히 그미의 시로 쓰여질 수 밖에 없었고, 그 시를 바탕으로 작가는 난설헌의 일대기를 소설로 집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 강릉의 허난설헌 유적지가 있는 곳은 그미가 6살때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라고 한다. 푸른 바다, 솔바람, 성난 파도 소리, 희미한 모래톱에서 노니는 갈매기...
이런 것들이 어린 그미의 감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난설헌>은 영양 숙모가 그미의 시를 보고 말했듯이,
"이렇게 애절한 심정을 손누비질하듯 세세하게 풀어낼 줄 미처 몰랐습니다." (p.162) 라는 문장처럼 작가가 바로 난설헌의 일대기를 손누비질하듯 한 땀, 한 땀, 엮어 내고 있다.
손누비질처럼 그렇게 정교하게, 화려하게 엮어나가는 것이다.
소설 속의 이야기는 절절하게 아프지만, 그 이야기를 표현하는 문장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 정갈하게 다듬어진 외모와 빛의 알갱이처럼 영롱한 영혼의 소유자, 세속에 때 묻지 않은 순수, 원망이나 미움, 화를 자시의 내부로 끌어당겨, 시라는 문자를 통해 여과시켰던 난설헌이야말로 아름다움의 표상이었다. (p. 375)
작가는 '아름다운 여인'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하는데, 그 바람이 난설헌에 꽂히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은 '제 1회 혼불 문학상' 수상작품이다.
최명희 작가가 17년의 세월을 대하소설 '혼불'을 쓰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했던 그 '혼불'.
이 작품을 쓰던 중에 최명희 작가는 병에 걸린 것을 알고, 수술과 투병을 하면서도 소설을 썼던 그런 작품이다.
나는 '혼불'을 이 책이 출간될 당시에 읽었는데, 그때는 동네마다 작은 봉고차에 책을 싣고 다니면서 책을 대여를 해주는 그런 풍경을 볼 수 있었던 때였다.
일주일에 한 번 동네에 오는 책 대여차에서 참 많은 책들을 빌려서 읽었었다. 오죽하면 책을 대여해 주는 아저씨는 신간서적이 들어오면 먼저 빌려주곤 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래 저래 지나간 세월의 기억들이 이렇게 스쳐간다.
최문희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남편인 오홍석 교수의 고향인 제주도에 갔다가 떠오른 생각을 구상하여 쓴 <율리시즈의 초상>도 관심이 가는 작품이다.
그리고 작가는 지금도 작품을 집필중에 있다고 한다. 어떤 작품이 출간될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난설헌>을 덮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천재시인으로 조선 중기에 살았던 난설헌은 그미의 천재적인 재능이 그 시대를 살아가기에는 삶을 더 힘겹게 만들기도 했겠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역사 속에서 오롯이 기억될 수 있는 것은 그 천재적 재능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난설헌의 삶을 소설로나마 재조명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의미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은 역사소설이 아니기에 한 권의 장편소설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