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소설이 아닌 에세이였다.

<여행자 : 하이델베르크 ㅣ아트북스 ㅣ2007 > 였는지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ㅣ 랜덤하우스 ㅣ2009> 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행 에세이를 즐겨 읽다보니 읽게 된 작품들인데, 그이후에 <스테이 : 내 삶의 배경으로 떠나는 여행 ㅣ 갤리온 ㅣ2010 > 등을 비롯한 작가의 책들을 읽게 되었고, 그 다음에 소설들을 골라 읽게 되었다.

김영하의 최근작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 문학동네, 2010>가 단편 모음집인데 반하여 이번에 출간된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작가가 5년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이기에 기대가 컸다고나 할까, 관심이 가는 책이었다.

 

 

그래서 예약판매를 통하여 두 권의 미니북을 함께 받을 수 있었다. 미니북은 <오빠가 돌아왔다> 와 <엘리베이터에 끼인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였는데, 50 페이지 정도의 단 한 편의 작품만이 실린 미니북이었다.

이전에 파울로 코엘료의 <알레프> 예약판매때의 미니북 <순례자>와 <연금술사>에 비하면 '좀 아니다 '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그동안 작가가 쓴 소설인 <검은 꽃>, <퀴즈쇼>와 함께 '고아 트릴로지'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이야기의 내용이 어두울 것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슬픈 사연으로 가득찬 제이.

그는 십대 미혼모가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출산하는 순간 죽이려는 것을 경찰에게 발견되면서, 돼지엄마라는 사람에 의해서 길러지게 된다. 그러나, 생활이 여의치가 않은 돼지엄마는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는 집을 빠져 나가면서 제이를 남겨두고 간다.

같은 동네에 살던 동규는 어릴 적에 원격 조정으로 움직이는 모형 헬리콥터가 자신에게 달겨드는 순간 패닉상태에 빠지면서 함구증에 걸리게 된다.

제이와 동규는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친구였으나, 제이가 재개발구역에서 몰래 숨어 살다가 시설로 붙잡혀 가면서 헤어지게 된다.

제이가 시설에서 도망쳐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거치게 되는 거리의 아이들과의 생활.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읽으면서 제이와 가출 소년소녀들의 동거 장면의 묘사는 차라리 책을 덮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심각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십 대 청소년들의 방황, 가출, 가출후의 혼숙, 난교,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자신들의 행동에 한 치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

" 여기는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날것 그대로의 야생이라는 것을" (p. 98)

거리의 아이들과는 비교도 안 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청소년들.

지나친 부모의 간섭에 힘겨워하고, 과도한 학업에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오늘날의 청소년들.

그러나, 그들에 가려서 안 보이는 곳에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나오는 거리의 아이들인 제이, 동규, 후드티, 야구모자, 금희, 한나, 목란 등의 아이들이 처첨한 모습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처음 접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는내내 그들이 왜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가, 분노가 치밀어 올 정도였다.

아이들의 잘못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어른들의 잘못이 너무도 크기에.

이런 아이들의 삶은 대를 이어서 이런 아이들의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나사건이후 제이는 수련을 쌓은 듯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고, 그는 몸에 밴 자신감과 깊은 인상을 남겨주기에 폭주족의 우두머리가 되고, 동규 역시 가정의 불화로 인하여 가출을 하게 되면서, 다시 제이와 동규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 너희들은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들로 인해 아프다. 아이들은 제이가 자기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존재라고 느꼈고, 그의 기이한 생활태도에 외경심을 품었다. " (p. 141)

이 소설은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부분이 특색이 있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와 작업 과정을 이야기로 들려주고는 있는데, 어느 부분을 읽을 때까지는 작가의 실제 이야기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를 읽어 가면서 이 부분이 소설 속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장치임을 느끼게 된다.

어디까지가 실세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 허구적인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부분을 통해서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나 작가의 의도를 눈여겨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지영의 <도가니>가 출간당시보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영화화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것처럼,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도 이 소설을 읽는 것으로 끝내기에는 너무도 많은 문제들이 내재되어 있다.

그 누군가는 이런 청소년들의 문제를 그대로 덮지 말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차선을 모두 차지하고 굉음을 울리면서 내달리는 아이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하늘을 날아 오를 듯이 질주하는 아이들.

그들이 이 세상을 향해서 내뿜는 절망의 이야기들을 귀기울여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신나게 질주하는 오토바이의 곡예는 그들의 아픔의 몸부림이 아닐까.

 

 

강남 고속 터미널 화장실에서 태어나 십 대 어미에게 죽음을 당하기 직전에 버림을 받아야만 했던 제이.

제이는 우리 사회의 거리 곳곳에서 내 옆을 스쳐가는 어떤 아이일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중간 중간 불쾌하리만큼 충격적인 장면들을 그냥 덮어버리기에는 가슴이 멍멍해지는 것이다.

이 땅에서 소외된 아이들. 아직 꽃봉오리도 피지 못했건만, 망가져 버린 아이들.

그 아이들의 목소리.

작가의 귀에는 그 목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독자들의 귀에도 그 목소리가 들렸으면 한다.

그러나, 어떤 해결책도 없는 우리들이 너무도 원망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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