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파라치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이석용 지음 / 청어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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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라치 [ paparazzi] : 유명한 사람을 쫓아 다니며 사생활을 찍는 자유 계약 사진사, 그러한 직업을 가진 영화 속의 인물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Daum 국어사전 검색)

파파라치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영국의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가 생각난다. 살아서 그렇게 파파라치들의 추적을 받더니, 결국에는 파파라치때문에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파파라치들이 세상에 내놓는 사진들을 볼 때에 드는 느낌은 깜짝 놀랄만한 사건의 사진이라고 해도,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유명인의 사생활을 들추어 내는 행위, 그것을 세상에 까발리는 행위. 그것이 그리 곱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석용의 소설 속의 파파라치는 악행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요, 누군가로부터 부를 얻으려는 것도 아닌, 오히려 사람들에게 그들의 속 마음을 깨우쳐 주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역할을 하는 파파라치인 것이다.

내가 이 소설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파파라치라는 소재가 특이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어릴 때의 열병으로 '들을 수 없기에 말하지 못하는' 청각 장애인인 19살 길도의 똑딱이 카메라의 뷰파인더에 비친 세상 이야기이다.

길도는 누나가 장기 해외출장을 가게 되면서 10살 조카 다홍이와 독립 생활을 하게 된다.

길도 부모님의 걱정도 청각장애인이 아들이 세상을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가 가장 큰 문제였기에 길도의 독립을 은근히 반가는 입장이기도 하고.

그러나,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로 나온 19살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 길도에게 한상욱 신부는 똑딱이 카메라를 빌려준다. 언젠가 길도와 나들이길에 카메라를 주고 사진을 찍게 했던 기억으로는 길도의 사진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그 무언가를 볼 수 있는 사진이었기에.

" 카메라는 참 재미있는 물건이에요, 어떤 걸 찍어도 모두 과거형으로 만들어 버리거든요. 늘 현재를 살 수 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뒤돌아 보며 살게, 그래서 다시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말게.' 하는 신의 메시지가 담긴 물건 같아요." (p. 45)

그래서, 길도는 똑딱이 카메라로 자신을 파파라치해 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파파라치한다.

 

 

길도에게 파파라치당한 사진을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의뢰가 들어오게 된다.

직장을 그만 둘까 하던 여직원, 남편과 아들을 잃은 아픔을 봉사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여자, 어느날 갑작스럽게 술 마신 후의 필름이 끊어져 버리게 되는 직장인, 자신의 집에 개가 살고 있다는 허황된 생각에 사로잡힌 만화가 등.

이렇게 파파라치를 당한 사진을 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형식으로 꾸며진다.

" 남의 삶을 들여다 본다는 것. 드러난 것과 감추어진 것 중 어떤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 하는 물음이 맴돌았다. " (p. 107)

길도는 파파라치 의뢰가 들어오면 그 의뢰가 왜 들어 왔을까 부터 생각하게 된다. 그래야만 자신이 어떻게 의뢰인을 파파라치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사진을 찍을 것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길도의 사진 찍는 감각은 사진을 찍는 기술을 배운 것도 아니지만, 그만의 생각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을 찍어내는 것이다.

"자네는 '파파라치'가 아니라 '예언자'로 간판을 바꿔 달아야 할지도 모르겠네. " (p. 240)

그렇다. 길도는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그 무엇인가를 꿰뚫어 보는 길도만의 뷰파인더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비록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서 평범한 사람들은 볼 수 없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길도의 사진은 이면 (裏面)을 담은 사진인 것이다.

 

 

길도는 겉모습은 장애인이지만, 마음만은 정상인보다 더 정상인, 아니 선한 마음으로 꽉 들어찬 것이다.

그래서 겉모습은 정상인이지만,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 즉 심리적으로 장애인인 사람들의 마음을 몇 장의 사진으로 치유해 줄 수 있는 것이다.

카메라의 뷰파인더에 비친 세상의 모습, 그것은 만화경 속의 변화무상한 모습과 같은 것이다.

인간미가 넘치는 파파라치.

자신의 의뢰인들의 생활, 생각까지도 꿰뚫어 보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파파라치,

그래서 소설 <파파라치>는 읽는내내 마음이 따뜻해 지는 그런 소설이다.

이 소설의 작가인 이석용은 건축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건축관련 강의를 하고, 건축관련 책을 낸 건축관련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두 장의 메모에서 출발했고, 투병중이던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야기가 차분하면서도 착하다. 그래서 인간미가 넘쳐 흐른다.

 

 

작가가 우연한 기회에 쓰게 된 소설이기에 앞으로 또 다른 작품을 독자들에게 선보일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독자로서의 바람이 있다면, 또다른 작품으로 만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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