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894년 여름 - 오스트리아인 헤세-바르텍의 여행기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 지음, 정현규 옮김, 한철호 감수 / 책과함께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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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서양인들이 찍은 조선의 개화기의 사진들이 공개되어서 우리들의 시선을 끌 때가 있다.

나의 눈에 비친 빛바랜 조선인의 모습과 서울의 거리 모습은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렇다면 그당시에 조선을 찾았던 그들의 눈에는 그런 모습들이 어떻게 비쳐졌을까 궁금하다.

개화기에 조선을 찾았던 사람들에는 미국의 선교사들이 있었지만, 유럽의 아름다운 나라 오스트리아인으로서 이 땅에 왔던 사람이있었다니 좀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것도 통상을 위해서 왔던 것이 아니라, 여행자로 왔다고 하니 더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조선, 1984년 여름>의 저자인 '에른스트 폰 헤세 - 바르텍'은 오스트리아 작가이자 여행가이다.

1872년에 남유럽을 여행하는 것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서 세계 곳곳을 여행하게 된다.

세계일주 중에 일본을 여행하게 되고, 거기에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인 조선으로의 여행을 결심하게 된다. 이미 그는 중국과 일본을 여행한 끝이기에 동아시아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겠지만, 책 속의 글들을 보면 유럽인으로서는 분간하기 힘들다는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의 모습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민족마다의 특징을 간파했을 정도로 뛰어난 여행자의 감각을 가지고 있다.

1894년은 우리 역사상 어떤 해이던가?

격동의 해라고 할 수 있를 것이다.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동학농민 혁명이 일어났고, 갑오개혁을 실시했으며, 청일전쟁이 발발한 해인 것이다.

일본에서 증기선을 타고 조선의 부산으로 건너오려는 에르스트에게는 전쟁터와 같은 나라에 발을 디딘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일본에서 조선 제2의 항구인 부산에 도착하여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그 풍경을 글로 자세하게 남겨 놓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인이 본 부산의 첫인상,

" 세상의 그 어떤 곳에서도 조선의 이곳에서 처럼 형언할 수 없는 슬픈 인상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 (p. 13)

에른스트가 본 부산에는 일본인이 거주하는 곳이 있었고, 그곳의 모습은 일본과 닮아 있었지만, 그외의 부산의 모습은 상당히 초라했던 것같다.

이미 그는 어디에서 들었는지, 관리들의 부패에 대한 정보까지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부산에서 동래까지 조랑말을 타고 돌아다니기도 하면서 부산의 모습을 하나 하나 살펴보게 된다.

다시 배를 타고 제주도, 다도해, 제물포에 도착하게 되는 과정이 상세하게 씌여져 있다.

제주도가 뭍에서 범죄자, 강도, 살인자, 부패한 관료들이 유배를 가던 곳임도 그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인천에서 다시 배를 타고 용산, 그리고 서울....

이런 식으로 조선의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면서 그의 느낌들을 적어 나간다.

책을 읽으면서 유럽인의 눈에 비친 조선의 불편한 진실들은 여과없이 그대로 드러난다.

남자들의 게으름, 모여 앉아 담배를 피고, 잠을 자고, 일을 하지 않는 모습, 여자들은 하루종일 일에 묻혀 사는 모습, 여닐곱살 된 남자아이들이 벌거숭이로 다니다가 아무데나 오줌을 누는 모습. 밤이면 거리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의 모습.

그의 눈에 들어온 조선인들은 깨끗함과는 불구대천의 원수인지, 몸은 지저분하여 해충들이 들끊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자르지도 않으며, 오물 한 가운데에서 살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거리는 울퉁불퉁, 집들은 초가집이 대다수로 가구도 주거시설도 없으며, 상하수도 시설도 갖추어진 모습, 시장에서는 개고기가 팔리고 있는 초라하기 그지 없는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도시 중에서도 서울은 확실히 가장 기묘한 도시다. 25만 명 가량이 거줗는 대도시 중에서 5만 여 채의 집이 초가지붕의 흙집인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가장 중요한 거리로 하수가 흘러 들어 도량이 되어버린 도시가 또 있을까? 서울으 산업도, 굴뚝도, 유리창도, 계단도 없는 도시, 극장과 커피숍이나 찻짐, 공원과 정원, 이발소도 없는 도시다. 집에는 가구나 침대도 없ㅇ며, 변소는 직접 거리로 통해 있다. 남녀 할 것 없이 모든 주민들이 흰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다른 곳보다 더 더럽고 똥 천지인 도시가 어디에 또 있을까? 종교도, 사원도, 가로등도, 상수도도, 마차도, 보도도 없는 국가가 있을까? " (p. 83~p. 84)

 

이런 내용들은 나로써는 처음 접해 보는 글들이기에 그당시의 실정이 이토록 조선인들에게 힘든 상황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에르스트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님을 그의 글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책의 목차만으로도 그것을 짐작할 수 있을텐데,

 

조선의 조정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왕, 왕비, 조정을 이끌어 가던 외척세력, 왕의 장례 절차, 군대, 정치 사회적 상황, 놀이, 교육제도, 종교관, 서양의료에 대한 조선인의 인식,화폐제도, 우편제도, 조상숭배, 재판, 산업, 토산품, 주변국가와의 관계 등에 대해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직접 왕이 거처하는 궁궐에 가보기를 희망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왕이 거처하지 않는 두 번째 궁궐에 가보게 된다.

 

 

에른스트를 단순히 동아시아를 여행하다 잠깐 들려 보고 가려는 여행자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이처럼 사전 조사인지, 직접 체험에서 얻은 지식인지 모를, 아니면 두 가지가 병행된 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시의 조선의 상황과 주변 국가와의 관계까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조선에 대한 서양인들의 글은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인용하여 자신의 글처럼 쓴 글들이지만, 에르스트의 글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한국인의 입장에서 <조선, 1894년 여름>은 그 어떤 조선인의 글이나 외국인의 글에서도 볼 수 없었던 당시의 이야기가 다양하고 체계적으로 다루어지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저자가 너무 서민들의 생활만을 보고 쓴 글이 아닐까 할 정도로 당시의 모습은 비참하리만큼 초라하게 기록되고 있다.

더욱 책의 내용 중에는 저자가 잘못 알고 있는 내용들도 눈에 들어온다.

그중의 하나는 우리나라는 대대로 중국이나 일본의 속국이었던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외국인의 시각에서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것 등이 그렇게 비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이처럼 초라한 조선의 모습과는 달리 조선인들을 중국인이나 일본인들보다는 내면적으로 훌륭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조선인들의 내면에는 아주 훌륭한 본성이 들어 있다. 진정성이 있고 현명한 정부가 주도하는 변화된 상황에서라면, 이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깜짝 놀랄 만한 것을 이루어낼 것이다.” ( 책 속의 글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의 대외교역의 통계 수치'가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 이 나라의 규모로 볼 때 아주 형편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전혀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과, 오늘날의 교역이 단 10년 간의 결과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조선은 최근의 전쟁을 통해 이제 잠에서 깨어났다. 동아시아 열강들 사이의 경쟁심이 이 아름답고 부유한 나라가 앞으로 발전해나가는 데 더 이상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p. 314)

 

이만큼 그는 조선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조사하였던 것이다.

나중에 '에른스트 폰 헤세 - 바르텍'은 오스트리아 외교관으로 활약하게 되는데, 그런 측면과도 연결지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조선, 1894년 여름>은 당시의 사료들이 그리 많지 않고, 특히 외국인이 이처럼 다방면에 걸쳐서 조사하고 서술한 기록이 없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저자가 조선의 모습도 사진으로 남겼던 것같은데, 그런 자료까지 공개되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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