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다 죽다 - 정사情死의 정치학 혹은 지독한 순정이나 아련한 절망의 형식
박종성 지음 / 인간사랑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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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다 죽다>

 

 

제목만으로는 이 책의 장르를 짐작하기 조차 어려울 것이다.

또한 이 책의 부제인 <정사의 정치학 - 혹은 지독한 순정이나 아련한 절망의 형식>만으로도 이 책의 장르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에세이나 가벼운 인문학 서적으로 생각했다면 읽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밝혀 두건데, 이 책은 사회학 관련 책이다.

철학책을 읽는 것보다도 더 책장이 넘어가지 않고, 읽으면서 과연 어떤 내용인지 쉽게 이해가 안될 정도로 난해하다.

이 책의 저자인 박종성는 정치행정학 교수이다.

그의 저서를 훑어 보는 것만으로도 저자의 학문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혁명의 이론사>, <박헌영론>, <왕조의 정치변동>, <강점기 조선의 정치 질서>, <정치는 파벌을 낳고 파벌은 정치를 배반한다>, <한국의 파벌정치> 등.

그리고, 재미없는 정치에 짜증난 학생들을 위해 영화와 문학을 강의실로 옮겨와서 < 정치와 영화>, <포르노는 없다>, <씨네 폴리틱스> 등이 있다.

이렇게 저자의 저서를 나열하는 것은 그만큼 저자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으면 이 책을 읽기가 난해하다는 것이다.

처음 어느 정도의 책읽기는 저자의 글쓰기 성향을 알지 못하면 따라 읽기가 힘들다.

정사라고 하면, 현해탄에 몸을 던진 '사의 찬미'의 윤심덕이 생각나지 않던가~~

'정사의 정치학'이란 부제 역시, 책의 1장에 해당하는 ' 연애, 그 막막한 정치 : 그리고 자살의 인문학'을 읽을 때까지는 이 책이 '정치를 정사에 빗대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인가, 아니면 정사를 정치에 빗대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인가' 조차 혼돈스러울 정도로 저자의 글은 현란한 문체로 쓰여져 있다.

" '기어이', '사랑을 이루기 위해', ' 이루지 못한' 과거를 분연히 딛고 서는 철저한 자기부정. 하지만 이처럼 죽어서라도 끝내 사랑의 연을 잇거나 혹은 그 좌절을 느끼며 죽음을 다짐하려는 논리적 모순은 당사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정치적 인과관계를 이룬다. " (p. 26)

" 그러다 끝내 스스로 사라지는 어느 한쪽의, 아니 둘 모두의 '죽음'을 세상은 언제부턴가 '정사'라 부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가혹한 자살이요, 누구도 등 떠밀지 않은 가련의 결행이었다. 저들의 숱한 죽음은 무엇보다 '시대'와 '인습'에 대한 저항이었다. 게다가 상식의 파괴로 엄혹히 기억되고 있다. "( p. 27)

사랑때문에.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건지려는 정사.

이는 자기중심적이라기 보다는 그 밑에 해당하는 이기주의의 행동일 것이다.

그것은 '정사'의 당사자들은 남느 이의 마음은 죽음을 가로막을 어떤 장해도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저자는 '정사'를,

'왕조시대의 사랑과 이별',

'넘쳐나는 미련과 절제의 빈곤'

'그러나 정사가 드문 세상'으로 나누어 설명을 해나간다.

여기에서 왕조시대란 조선을 중심으로 정사를 생각해 본다.

 

 

조선은 유교 사상이 바탕이 되어 남녀차별의 사회갈등이 심했던 양성 불평등의 사회였다.

세상은 남성중심으로 돌아갔고, 여성은 속박과 질곡의 나날을 보내야 했고, 여기에 계층과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 존재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문학작품이나 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읽거나 보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조선시대의 정사 통계'를 보여준다.

조선조의 761건에 이르는 자살이 통계에 올라와 있다.

이런 자살의 통계가 겉으로는 동일한 것같지만, 그 자살의 사연은 다양했을 것이다.

 

 

열녀라 불리는 여인들의 자살. 그리고 이루지 못한 사랑때문에 한 자살.

남성들이 적어 놓은 다종다양한 열녀의 자살은 사회적 강요나 정치적 반복 학습에 의한 기형적 자학일 수도 있음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불륜에 관한 문헌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왕조 시대의 사랑의 어긋남을 말해주는 것일 것이다.

조선의 신분사회가 강요한 복종의 일방성이 '정사'에 있어서도 위선의 문화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식민지 시대의 정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근대'라는 개념은 선망과 이상의 인프라가 작옹하는 시기이다.

암울했던 식민지 시대에 나타나게 되는 신여성들.

그들은 의식수준과 형태의 파격을 함축하는 아이콘이었을 것이다.

이 시대에 떠오르는 정사의 인물은 단연 윤심덕이다.

<다뉴브 강의 잔물결>을 번안한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그의 정사만큼이나 애절하게 들린다.

" 정사가 한낱 숙고와 심사의 대상이 아니라, 결국 지독한 이기와 용서받지 못할 원색적 탐욕의 봉우리에서 치러지는 고결한 탈주의적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p. 146)

이처럼 저자의 문체는 직설적인 문장들이 아니라, 현란한 문장이어서 난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그래서 읽는 독자들은 정확한 글의 의미를 깊이 해석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사의 현대사이다.

 

 

해방이후 한국사회가 정사를 보는 시각은 많이 희석된다. 지금의 추세는 정사를 그리 크게 다루지도 않고, 별로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 듯하다.

" '사랑하다' 죽지만 그 경우들 대부분은 '사랑으로' 같이 목숨걸거나, '사랑때문에' 함께 이승을 등지는 과거의 낭만성을 보이기 보다 주관적 분노나 의심에서 비롯된 자기 파괴적 행태를 보인다. 원인은 '사랑이지만' 결과는 '홀로 무너지는' 예외적 일탈행위로 볼 일이다. " (p. 217)

" 오늘의 정사는 '보여도', '드러나지 않으며', '희미하건만', ' 질기고', '아쉽게' 지탱한다. " (p. 220)

이처럼 조선시대부터 식민지를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정사의 정치학'을 설명해 준다.

대학 논문보다도 더 어렵게 느껴질 정도로 쓰여진 글이지만,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많은 사례들과 통계자료, 도표 등을 이용하고 있다.

그 누가 '정사의 정치학'을 생각했겠는가, 서로 어울리지도 않고, 어떤 연관이 있으리라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을 저자는 이렇게 서로 연결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많이 힘겹게 읽히는 책이지만 사회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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