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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가?,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준다. 그동안 그의 책들이 출간될 때마다 즐겨 읽곤 했는데, 요즘의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이 출판사를 옮겨서 새로운 모습으로 개정판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내 놓았던 출판사가 2011년에 부도가 났다고 한다. 출판계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책을 사랑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그래서 아주 산뜻한 책표지로 개정판이 나왔던 것인가 보다.
이 책을 읽은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2010년 12월경에 읽었으니, 1년이 조금 지났다.
그래도, 새롭게 출간된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어 본다.
처음 출간 당시에는 '알랭 드 보통'이 한국독자들을 위해서 장문의 편지를 보냈었는데, 그 편지는 실려 있지 않다.
'일상의 철학자'라고 하는 '알랭 드 보통'의 글은 예사롭지가 않다. 항상,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들에 대해서는 끝까지 파헤치는 기질이 있다.
그의 사랑과 인간관계의 3부작 소설이라고 하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 너를 사랑한다는 건>은 사랑에 관한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소설답지 않은 소설임을 이미 독자들은 느꼈을 것이다
그의 에세이들도 일상 속에서 문학, 철학, 역사를 비롯하여 자신이 쓰고자 하는 주제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에세이들이기에 서정적이거나, 감성적인 에세이들은 아니다.
물론, 그것이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가 가지는 매력이기도 하다.
어떤 소재와 주제들이 그의 깊은 사유와 관찰력을 통해서 새로운 이미지로 재탄생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으며, 그런 글들은 '알랭 드 보통'의 지식의 창고에서 쏟아지는 각종 지식을 전파하는 것같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우리들의 일상에서 가정생활보다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직장, 그 직장에서 가지게 되는 사람들의 일에 관한 이야기.

일에 대한 이야기를 왜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고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는데, 이 책을 번역한 정영목은 그에 대해서 이런 말을 <옮기고 나서>에 덧붙인다.
" 알랭 드 보통'이야 평소에 함께 다니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을 한데 묶어놓고, 서로 낯선 것들이 만나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효과를 살피며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던가. " (p. 374, 옮기고 나서 중에서)
그러니까 "알랭 드 보통'은 일에 대한 한 개인의 감정만이 아닌 문명과 사회에 관한 깊고 은근한 통찰, 거기에 개인감정의 미세한 움직임과도 따로 놀지 않는 통찰을, 거기에 재치와 유머와 서글픔이 보석처럼 박혀 반짝이도록 글로 표현 한 것이다" (옮기고 나서 중의 내용을 정리)
그의 다른 책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자신의 책상에 앉아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쓴 책이 아니다. 이 책 속의 10개의 제목들을 중심으로 자신이 직접 문헌을 조사하고, 일의 현장에 직접 들어가서 그곳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일을 하면서 그가 주제로 잡은 일에 관한 모든 것을 글로 쓴 것이다.
그라 주제로 삼은 것은 다양하여,
발트해를 가로질러 펄프를 운반하거나, 참치를 잡거나, 다양한 비스킷을 개발하거나, 들판에서 떡갈나무를 그림으로 그리거나, 전선을 놓거나, 회계처리를 하거나, 탈취제 자동판매기를 발명하거나, 항공사를 위해 강도가 높아진 코일 튜브를 만드는 등의 일을 작가가 직접 그곳에 가서 체험하여 글을 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하루종일 따라 다니면서 인터뷰도 하고, 취재도 하고, 체험도 하였던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사진작가 '리처드 베이커'의 작품들인데, 그 역시 '알랭 드 보통'과 함께 일의 현장 속에 있었던 것이다. 특히, 흑백사진이 주는 이미지들은 일의 이미지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내용 중에 특히 눈길을 끄는 내용은 <물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류의 뜻, 역사, 물류센터 등을 찾아 다니다가 작가는 '물류의 이동'을 체험하기로 한다. 물류센터에 쌓여 있는 싱싱한 참치 스테이크에 붙어 있는 포장지의 글이 그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몰디브에서 낚시로 포획" 이라는 글귀.
그래서 그는 " (...) 이 물고기 한 마리에서 출발하여 이 물고기가 이곳까지 올 때보다는 조금 느린 속도로 다시 바다까지 거슬러 가보고 싶은 욕망마저 생긴다. " (p.51)
'물류이동'를 취재하기 위해 참치를 추적해 본다. 따뜻한 물에 사는 참치가 어떻게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는지 그 과정을 배, 비행기등으로 이동하면서 알아 본다. 그러나 이렇게 유명한 작가도 난관에 봉착한다. 15개 식품업체에 접촉을 했지만, 업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혹시라도 어떤 문제가 야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어렵게 성공하여, 물류네트워트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서양 몰디브 원양어업 기지에서의 어선 승선, 그리고 50k에 달하는 참치를 잡아 몽둥이를 쳐서 죽이는 끔찍한 살생현장에서 냉동실로 옮겨 어류가공공장의 가공과정을 거쳐서 항공기 화물칸에 실려 런던 브리스톨 교외의 한 슈퍼마켓에서 팔려서 한 가정의 어린이의 스테이크로 식탁에 오르는 과정을 계속 추적해 나간다.

인도양의 바닷속에서 52시간에 걸친 과정의 모든 순간을 목격하고 느끼고 글로 써 내려 가는 것이다. '어휴, 정말 보통의 작가가 아닌 알랭 드 보통만이 가능한 글쓰기이다.
10개의 소재들이 모두 이런 과정을 거친다. 세계적인 비스킷 공장도, 떡갈나무를 그리는 화가의 그림작업도, 회계사들의 업무도, 송전공학도. 항공산업도.....



직접 부딪혀서 글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여기에 깊이 있는 작가의 지식까지 첨가되니 읽기에 쉬운 에세이가 아닌, 힘들게 읽혀지는 에세이가 된다. 그의 에세이를 머리를 식히기 위한 글로 생각하면 너무도 큰 착오이다.
글 중에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이 그나마 6. '그림'이다,
떡갈나무를 주로 그리는 화가의 작업과정을 따라잡고, 전시회와 판매과정를 통한 '일'의 의미찾기는 그나마 많이 접해온 이야기이기에 무리없이 읽을 수 있다.
7. '송전공학'은 너무 어려운 이야기이다. 물리적 소양이 필요한 글이라고 해야 할지, 일이라는 개념만을 봐야 할지 혼돈과 이해불가의 문장들도 섞여 있을 정도로....
알랭 드 보통은 자유자재로 그것도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일이라는 현장 깊숙이 들어가서 직접 보고 느끼고, 관찰하면서 우리에게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이야기 해준다.

일이 사랑과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일부분이고, 진정한 삶을 위해 일을 하는 과정에서 기쁨도 느낄 수 있고, 권태로움도, 슬픔도 느낄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그런데, 좀 어렵기는 하다.'알랭 드 보통'의 스타일이니까.... 그래도 또 그의 작품이 나오게 되면 나는 호기심에 책을 손에 들게 될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