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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꽃 이야기 - 時設: 시적인 이야기
한강 지음, 우승우 그림 / 열림원 / 2003년 2월
평점 :
품절
계곡에서부터 내려온 맑은 물처럼 청정한 느낌이 좋아서 한강의 소설을 또 읽게 되었다.
시인이기에 문체 역시 서정적인 긴 시를 읽는듯한 느낌을 가지게 해주는 것도 한강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산뜻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글 속에 담겨진 내용은 소소한듯하면서도 마음에 깊은 여울을 만들어준다.
불교적 색채가 들어가기는 했지만, 어떤 불교의 교리도 강요하지 않는 듯한 <붉은 꽃 이야기>
한꺼풀 한꺼풀 고운 마음으로 만든 붉은 연등이나 붉은 연등보다 더 붉고 소담스럽게 피어나는 자목련의 모습이나 모두 모두 가슴이 시리도록 큰 아픔을 깨달음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 불빛은 제가 불빛인 줄 알았을까. 붉은 꽃 속에서 제가 밝혀져 있었던 것을 알았을까" (p.102)
<붉은 꽃 이야기>는 주인공 선이가 7살, 남동생 윤이가 4살 되던 해에 사월 초파일 연등식에서 연등을 보게 되면서 시작된다.
윤이는 그 많은 붉은 연등들 보다 하얀 연등을 좋아한다. 마치 하얀 꽃인양.
하얀 연등은 죽은 사람에게 달아주는 영가등이니, 뭔가 상서롭지는 않다.
동생 윤이와 함께 연등을 보던 중에 선이는 붉은 연등이 줄지어 있는 연등 행렬에 정신을 잃고 붉은 등을 따라가다 동생을 잠깐 잃어 버리게 되고, 오빠에게 혼된 꾸지람과 함께 빰까지 맞게 된다.
연등을 본 후에 윤이는 또 다시 그 하얀 꽃을 본 날을 기다리지만, 작은 사고로 인하여 죽게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중학생 선이는 절로 들어가게 된다.


7살 어린 선이이 본 붉은 꽃, 그 붉은 연등은 인연의 끈이 아니었을까....
윤이를 잃은 마음의 상처는 하얀 꽃이 아닌 붉은 꽃으로 깨달음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닐까.
한 순간에 다가온 인연을 속세를 떠나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로 인하여 깊은 깨달음을 갖게 되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내용이나 문장이나 아주 간결하고 깔끔하다. 그리고 서정적 문체가 이 소설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 이 소설을 통해 우리들이 삶이란 매순간 상처와 각성의 되풀이에 의해서 성숙된다는 것을 깨닫는 데 있다. " ( 시인 박형준의 글 중에서)
<붉은 꽃 이야기>의 내용 중에는 선이가 초파일 연등에서 보았던 붉은 꽃을 그리는 장면들이 묘사되는데, 그와 걸맞게 책 속의 그림이 소설을 돋보이게 해준다.
"붓 아래서 삶과 죽음을 뛰어 넘고, 먹물 유희 가운데 영원의 생명을 노래하라" (원담 스님의 글 중에서)
간결하지만, 깊이있는 소설과 어우러진 그림은 이 책을 읽으면서 잔잔하게 여울지는 연못의 연꽃을 보기도 하고, 바람이 살랑거리는 대나무 숲을 여행하게도 해준다.
그래서 <붉은 꽃 이야기>는 가슴에 큰 여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