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있어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에 늦었다는 말을 있을 수 없음을 때때로 느끼게 된다.
다만, 꿈을 향한 도전과 용기와 결단이 부족하기에 슬그머니 꿈을 접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의 저자인 오경아는 방송작가이다. 그가 집필했던 방송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그녀의 필력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FM 영화음악>, < 심수봉의 트로트 가요광장>, < 이종환,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 시대>, < 양희경의 가요앨범>, <FM 가정음악>, <김경란의 클래식 산책>.
라디오를 거의 듣지 않는 나도 익히 들어온 음악 프로그램이고, 이곳 저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함께 진행자들의 멘트를 들었던 기억이 날 정도로 잘 알려져 있는 음악 프로그램들인 것이다.
오경아는 이런 프로그램의 집필 과정중에 불현듯 자신의 일을 접고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잇달아 1년을 간격으로 세상을 떠나시게 되는 엄마와 아버지의 사망도 일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어디로, 무엇을 하기 위해서 떠났을까?
39살의 나이에 두 딸을 데리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정원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서....
그리고 6년이 지나서 한국에 돌아 오게 되고, 다시 2주간에 걸쳐서 영국의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의 자신만을 위한 휴가를 보내게 된다.
이 책의 내용은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의 작은 딸과 함께한 2주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영국에서도 가장 소박하고 아름다운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적한 곳이다.
양떼들이 언덕에서 풀을 뜯어 먹고, 때론 도로까지 내려와서 도로를 온통 점령해도 느릿느릿 양떼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느림의 미학이 있는 곳이다.

이 곳의 카페 중에는 관광객이 북적거리게 되자, 문을 닫아 버릴 정도로 돈을 벌기 위해서 카페를 증축하거나, 도로를 넓히거나 하는 등의 안간힘을 쓰는 그런 곳과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녀가 머물렀던 우디의 오두막집의 매력이 소박한 정원이고, 그곳에서 마시는 한 잔의 차가 여유로움을 가져다 주는 그런 곳이다.
이 책을 읽던 중에 눈에 띄는 내용이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상영되었던 나탈리 우드와 워렌 비티 주연의 영화 <초원의 빛(1961)>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은 '워즈워스'의 시 속의 한 구절인 '초원의 빛이여'에서 따온 것인데, 중학교 시절 영어 시간에 키크고 멋진 영어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던 그 장면이 떠오른다.
<초원의 빛>이라는 영화도 언젠가 보긴 보았지만, 그 내용은 거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 책에서는 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해준다)
마지막 장면이었던가, '워즈워스'의 시가 나왔던 것같은데....
" 한때는 그렇게도 밝았던 광채가
이제는 영원히 사라진다 해도
풀의 장려함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 시절을 다시 돌이킬 수 없다 해도
우리 슬퍼하지 말고, 차라리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 " (p 169~170)
오래전의 기억이 낯설지 않게 떠오르듯이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는 초원의 빛처럼 싱그럽다.

저자는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6년전 자신이 쫓았던 꿈을 정리하고 한국에서의 또다른 새로운 삶을 생각한다.
" 이 삶이 지금보다 천천히 흘러가기를
이 삶이 지금보다 덜 싸우며 살게 되기를
이 삶이 지금보다 조금 더 초록이기를 " (p172 ~173)
책 속의 사진들에서 초록의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듯이~~
책 속의 사진들에서 소박한 정원의 모습을 느낄 수 있듯이~~
그렇게 마음에 다가오는 책이다.


그런데, 앞에서 잠깐 생각해 보았던
"누구에게나 인생에 있어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에 늦은 순간은 없다." 는 나의 생각은 어쩌면 현실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에 실린 그녀의 삶 속에서도 그런 부분들을 찾아 볼 수 있다.
(1) 그녀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6년이란 세월을 남편 홀로 한국에 남아 있게 하였다. 저자와 두 딸은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면서 꿈을 이루어 갔겠지만, 남편의 삶은?
가족이란?
(2) 그녀가 유학 자금으로 집 한 채 있던 것을 사용하게 되면서 한국에서의 집은 작은 집, 또 더 작은 집으로 옮겨 가게 되었는데, 지금은 분당의 반지하 연립에 살고 있다고 한다.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은 아니지만, 45살의 나이에 무모한 도전은 아니었을까?
(3) 두 자녀들은 영국에서의 생활에 만족을 느끼는 것같지만 큰 딸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대학생활을 하게 되었고, 작은 딸은 영국에서 대학생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4) 그녀가 박사학위까지 받아 왔지만, 그녀가 전공을 얼만큼 살릴 수 있을까?
전공이 정원 디자인이기에 다양한 곳에서 전공을 살릴 수는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학문일 경우에 유학을 마친 후의 진로는?

이 책의 시작이 일상을 접고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면서의 이야기이기에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삶은 곧 현실이고,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접아야 하는 경우가 많기에 그녀의 도전이 더 빛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저자의 딸의 말처럼 "엄마가 스스로에게 쓴 일기"(p9) 이기도 한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 여기의 글들은 레이크 디스트릭트와의 인연, 낯선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만난 '그곳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 여행지에서 문득 떠올랏던 '그리운 이들'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때 그 장소에서 떠올랐던 날들에 대해 주제없이 써 내려간 '생각의 모음' " (p12~13) 인 것이다.
책 제목만을 보고 엄마와 딸의 절절한 가슴아픈 이야기라는 생각을 가졌다면 조금은 다른 생각의 글들을 접하게 될 것이다.
유난히 레이크 디스트릭트에는 수선화가 많이 피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수선화들을 보면서 멀지 않아 하얗게 또는 노랗게 아파트 화단에 피어날 수선화를 떠올려 본다.
저자가 만난 정원들보다는 못하겠지만, 철따라 고운 꽃들이 앞다투어 피는 아파트 화단의 꽃들과 싱그러운 초록이 그리워진다.
그 화단의 꽈리 나무와 과꽃은 오래전 엄마의 화단에서 캐 온 후에 해마다 피어나는 꽃이기에 나는 그곳에서 우리 엄마를 만날 수 있기도 한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