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맨 & 플레이어
조안 해리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젠틀맨 & 플레이어>의 책장을 덮는 순간 나는 한 편의 스릴러 영화에 푹 빠졌다가 나온 것같은 느낌이 든다.
제법 두꺼운 책인데도 어느 한 순간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 보다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에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책제목부터 강한 궁금증이 생기는데, <젠틀맨 & 플레이어>란 2차 세계대전 이전의 영국 정상급 크리켓 경기와 체스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각 장의 제목이 체스의 말을 의미하는  폰, 킹, 나이트, 체크, 비숍, 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체스판에서 킹은 가장 강한 말이고, 폰은 가장 약한 말이기는 하지만, 끝까지 체스판에서 전진하면서 더 강한 말로 바뀔수 있는 유일한 말이라고 한다.

 

 

이 게임의 규칙을 잘 모르기는 하지만, 이 정도의 설명만으로도 <젠틀맨 & 플레이어>가 어떤 이야기로 전개될 것인지 가늠할 수도 있겠지만, 그 윤곽만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어떤 속단도 허용되지 않는 치밀한 구성과 기막힌 반전이 있는 소설이다.

그 반전도 한 번이 아닌, 반전이 일어난 후에 또다른 사실이 밝혀지면서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읽는 도중에 왠지 명확하지 않았던 주인공에 대한 묘사에서 머리를 갸우뚱거리면서 꼼꼼하게 책을 읽었는데, 무엇인가 이상하다.

'핀치벡이 호모?, 리언을 사랑해? ' 하던 의문이 벗겨지는 순간 지금까지 읽으면서 석연치 않았던 부분들이 명확하게 밝혀지는 것이다.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은 여기까지 이글을  읽으면서 많은 궁금증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하는 생각에...

책의 구성도 특이하여 이 소설에는 두 명의 화자가 등장한다. 한 사람은 영국의 명문학교인 세인트 오즈월드 문법학교의 라틴어 교사인 스트레이틀리이다. 그는 33년간 이 학교에 근무한 교사로 99학기를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교사를 천직으로 아는 사람이다. 그는 지금 100학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 그가 100학기를 무사히 넘기기가 힘들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되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으로 인하여.

 

그리고, 또 다른 화자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처음에는 이런 구성에 익숙하지 않아서 책 속의 '나'란 존재에 잠깐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리곤, 두명의 화자에 의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이 책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즉 게임을 올바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장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한바탕의 게임으로 쑥대밭이 되어가는 명문학교의 이야기는 이처럼 두 명의 화자에 의해서 이야기되어야 이 게임에 대한 객관성이나, 긴장감 그리고 대립 상황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체스판에서 벌어지는 게임처럼....

두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을 덮을 때까지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소설의 작은 악마, 줄리아 스나이드는 세인트오즈월드의 사택에 사는 아이이다. 아버지는 이 학교의 수위이고, 어머니는 집을 나가 버린.

 "무단출입금지. 명령에 의해 여기서부터는 관계자 이외의 출입을 금함'이란 표지판이 아무나 학교 교문을 들어서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이 수위 아버지는 아들에게도 엄격하게 선을 그어 놓고 학교출입을 금하는 것이다.

스나이드에게 명문학교는 선망의 대상이고, 동경의 대상이며, 자신이 넘볼 수 없는 곳이란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어느날 금지된 학교안으로 들어가 보게 되고, 그것을 시작으로 스나이드는 차츰 더 과감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 지금은 유형지에 있지만 언젠가는 내가 속한 곳으로 돌아갈 사람으로 여겼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다른 아이들의 괴롭힘과 소소한 모욕들을 어떻게든 참아낸다면 언젠가 세인트오즈월드가 나를 환영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 (p73)

 

 

아무도 없는 방과후의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수위인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열쇠로 훔쳐 도서관을 비롯한 교실, 교사들의 방 등 학교의 비밀스런 곳까지도 자기집 드나들듯이 활보하고 다니게 되는 것이다.

" 처음에 나는 세인트오즈월드를 선망했다. 세이트오즈월드를 향한 도전이 좋았고, 사람들을 속이는 데서 기쁨을 느꼈으며, 소속감을 느끼고 싶었고, 존과 샤론 스나이드의 아이가 아닌 그 이상의 존재가 되기를 갈망했다. " (p302)

스나이드는 학교갈 나이가 되어 명문 세인트오즈월드가 아닌 서니뱅크파크라는 보잘 것없는 학교에 가게 된다. 그 학교에서 스나이드는 그곳의 학생들과는 다르게 똑똑하고, 책읽기를 좋아하고,  반항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기에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 스나이드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니뱅크파크의 학생이지만, 틈틈히 세인트오즈월드 교복을 입고 명문학교로 들어가서 그 학교의 학생처럼 이중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 선은 넘으라고 있는 거야. 난 내게 늘 금지되었던 것, 그게 갖고  싶었을 뿐이야!" ( 책 속에서)

그런 와중에 혹독한 사건에 직면하게 되고....

 

세인트오즈월드는 스나이더에게는  자신이 정말 살아있다고 느꼈던 곳, 그곳에서 꿈을 꾸었고, 기쁨과 증오, 욕망을 느꼈던 곳이다.

몇년이 지나 그는 세인트오즈월드의 교사로 부임하게 되는 것이다.

자격증을 비롯한 위조자료를 제출하여서 어린날 그렇게 속하고 싶었던 명문학교의 교사가 되는 것이다.

위조된 케임브리지 졸업장,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은근히 고급스런 옷차림.

그래서 그는 그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당당한 교사의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멋지게 명문 세인트오즈월드의 명성을 땅에 떨어트리기 위한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는 것이다.

이어지는 불미스러운 사건들.

젠틀맨의 세계인 세인트오즈월드를 향해 플레이어인 주인공은 어떤 추락을 가져다 줄 것인가?

그리고, 그가 그런 게임을 하게 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이에 대한 답은 간단치가 않다.

    

 

성장기에 있었던 스나이드, 유령처럼 세인트오즈월드를 헤매던 핀치벡이 자신이 동경하고 꿈꾸는 세계에 대한 복수에서 그 학교의 추락을 원한 것만도 아니다.

그렇다면 핀치벡이 되어 명문학교에서 만나게 되는 또 하나의 문제투성이 학생인 리언에 대한 사랑이나, 리언에 대한 복수심이 이런 사건을 만들었던 것만도 아닌 것이다.

명문학교의 수위였던 아버지에 대한 실망감이나 애증때문만도 아닌 것이다.

 

" 단순한 복수? 그렇게 간단한 문제라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나 우리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음을 안다. 복수가 그 일부라는 것은 인정한다. 줄리언 픽치벡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림자 속에 숨어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이길 절실히 바라던 그 유약하고 비굴한 아이라면.

 

그러나 지금의 나라면? 나는 근래의 나 자신에 만족한다. 나는 건실한 시민이고, 직업 - 의외로 재능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 - 도 있다. 세인트오즈월드에 관한 한 아직 투명인간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 역할을 단순한 사기꾼 이상으로 발전시켰다. (...) 핀치벡이라면 이 기회를 움켜잡았을 것이다. 무론 핀치벡은 투명인간으로 남아 있는 것에 만족했다. (...)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내가 늘 원하던 것은 무엇인가? (...) 언뜻 보이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젠틀맨'과 '플레이어'의 이 게임에서 열두번째 선수가 되는 것! 투명인간에게도 그림자는 있다. " (p375~376)

 

그의 행동에는 이런 모든 것들이 함께 존재하면서 유령처럼 떠도는 그의 모습이 아닌, 선을 넘을 수 없었던 젠틀맨에 대한 오만과 편견, 명예를 추락시킴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려는 마음이 큰 작용을 하게 된 것이다.

줄리아 스나이드, 줄리언 핀치벡, 그리고 킨과 미스 데어

이들의 연관관계가 경악을 금할 수 없는 기막힌 반전을 보여주는데, 이것이 바로  이 소설의 묘미 중의 묘미인 것이다.

이 소설의 작가인 '조안 해리스' 가 명문 리즈 사립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친 교사이기에, 이 소설의 무대가 되는 명문학교에 대한 명확한 해석과 함께 교사, 학생, 학부모를 비롯한 많은 이 소설의 캐릭터들의 묘사와 심리분석이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요즘 학교 폭력을 비롯한 학교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이 거론되는 시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해주는 소설이란 생각도 들게 해준다.

이 한 권의 책은 독자들에게 엄청난 재미와 함께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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