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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무리구치 선생님의 마지막 복수가 읽은 후에 한참동안 머리를 '멍'하게 만드는 이야기이다. 아직도 그 충격에 잠겨서 리뷰를 쓴다.
'고백'의 저자인 '미나토 가나에'의 데뷔작이다. 1973년생인 여성 작가이다. 어려서부터 '공상을 좋아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태평양상의 오지에서 2년간 봉사활동을 한 적도 있고, 지금은 단시短詩, 방송 시나리오, 소설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뛰어 넘는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녀의 집필 특징은 집필전에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이력서를 작성하며, 캐릭터 성격도 꼼꼼하게 설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런 세밀한 인물 설정때문에 작품속의 인물들은 가공의 인물들이지만 살아 있는 듯이 작품의 구성을 도와주고 있다. '고백'은 2008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에서 1위를,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서 2009년 서점대상 4위를 차지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들이 읽고 좋은 리뷰도 상당수가 올라와 있는 작품이다.
'고백'은 이야기의 형식부터가 특이하다. 옴니버스 스타일의 독백 형식을 갖춘 작품이어서 각 장에 나오는 인물들에 따라서 똑같은 상황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묘사가 미세하게 다르게 느껴지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또한, 이 이야기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도 독자들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게 된다.
각 장은 등장인물들 중의 한 사람의 독백 형식을 빌려서 같은 이야기가 그 장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등장인물의 시각에 맞게 전개된다.

첫 장은 유코(무리구치)선생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싱글맘인 여 선생님은 중학교 1학년 종업식날에 자신이 학교를 사직한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교직 생활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마지막 학생들에게 남기는 이야기는 엄청난 사실이 들어 있다.자신의 딸인 네살짜리 딸의 죽음은 경찰이 발표한 수영장에 추락한 것이 아닌 자신의 반 두 학생에 의해서 저질러 진 범행임을 밝힌다. 비록, A,B라는 이니셜을 사용하였지만, 구체적인 학생의 특징을 들으면 학급 학생들이 짐작할 수 있는 사항까지 들려준다. 그러나, 선생님은 결코 그들을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13살 미성년자의 살인이 고작 무죄방면이나 보호관찰 처분을 받기에, 선생님은 그들에게 '생명의 무게와 소중함을 알고,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깨닫고 그 죄를 지고 살아가길 원하기에' 자신의 방법에 의한 복수를 가하고 교단을 떠난다. 그 방법은 두 학생의 우유에 남편의 HIV 혈액(후천성 면역 결핍증)을 넣어서 먹게 한 방법이었다. 책이기에 선생님의 음성을 들을 수는 없지만, 문맥상 그녀의 음성은 시종일관 변하지 않는 낮은 음성으로 그 엄청난 이야기를 소름이 끼칠 정도로 담담하게 들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복수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선생인 자신은 교단을 떠나지만, 그 자리에 똑같은 구성원으로 새로운 2학년이 되는 학생들에게 남겨진 굴레는 어떤 모습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어쩌면 선생님은 자신이 교사라는 윤리관보다는 딸에 대한 애정에 더 큰 비중을 두었을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의 소중한 딸의 생명을 앗아간 두 소년에 대한 처벌을 자신의 잣대에 의해서 자신의 방법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선생님의 행동은 복수의 범위를 뛰어 넘은 그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두 학생에 대한 복수라기 보다는 남은 학생들 모두에 대한 복수가 될 것이다.
두번째 장은 편지 형식을 빌린 학급 반장인 미즈키가 2학년이 되어서 그간의 소식을 선생님에게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선생님이 종종 읽던 문예지 신인상에 응모하는 글로 시작된다. 범인으로 주목되었던 나오키는 계속 결속을 하게 되고, 또 한 명이었던 슈야(와타나베)는 학생들에게 왕따가 된다. 학생들은 처음엔 슈야에 대해서 혐오감을 드러내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감쪽같이 그를 기피하게 되다가 결국에는 갈수록 잔인한 행동으로 번지게 된다. 이 장에서는 '소년법'그리고 '피해자와 범인'에 대해서 독자들이 좀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해 준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범인에 대한 경멸과 또다른 방법의 멸시는 과연 그런 제재를 같은 학생간에 가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그리고 범인이자 피해자인 것 같았던 나오키의 엄마 살해 사건....
세번째 장은 또다른 살인을 하게 되었던 나오키의 누나가 엄마의 일기를 통해서 나오키의 심리분석을 해 본다.'존속살인'이라는 범행에 쏟아지는 세간의 호기심들. 과연 나오키의 집은 일그러진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나오키는 종업식날 담임교사의 입에서 나온 우유팩 속의 에이즈 혈액에 대한 혐오감에 심한 결백증에 시달린다. 그의 어머니는 교양있고, 예의 바르고 엄격한 교육방침으로 나오키를 키우지만 그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초등하교 고학년부터는 중위권에 머무르는 아이.... 어머니의 지나친 관심과 비교가 나오키를 힘들게 만든다. 완전히 심적으로 지쳐 버린 나오키, 그런데, 일기를 통해서 오히려 나오키의 어머니가 나오키를 살해하고 자살할 의도가 있었음이 밝혀진다.
거기에 한 몫을 더한 것은 학생들이 보낸 형식적인 응원 편지의 진실.
첫 글자를 아래로 읽으면, '살인자 죽어!!'

네번째 장은 엄마의 살인 후에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한다. 나오키에게 '엄마의 기대, 그것은 남들 위에 서는 인간이 되는 것, 엄마의 남동생, 고지 외삼촌처럼' 그러나 어려서 칭찬만 받고 살던 나오키에게 언제부턴가는 '착하다'는 엄마의 칭찬으로 바뀐다.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은 중상위가 고작이니, 착하다는 표현밖에 쓸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 모든 것은 엄마의 욕심이고 욕망이고 소망일 뿐이었다. 학교를 가지 않는 나오키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오키는 슈야에 의한 또다른 피해자였을까? 아니었다. 선생님 딸의 살해의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살의가 없었으나, 자만심에 가득찬 슈야(와타나베)의 한마디가 그를 엄청 화나게 만들었다. 와타나베가 실패한 살인을 성공시킨 것은 바로 나라는 생각에, 와타나베의 살인의 실패를 한껏 비웃어 주면서, 그도 자신과 같이 숨어서 은둔하면서 살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는 버젓이 학교 생활을 한다고 하니 충격에 싸인다. 그가 학교를 안 가는 이유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이 아닌, 에이즈 감염에 의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자신의 죽음이 불안하고, 두려웠던 것이다. 만약, 학교에 등교한다면 누군가 친구들에 의해 살해당할 것이라는 공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렁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인생이 바로 나오키의 인생인 것이고, 엄마의 상한 자존심이 그를 죽이려 하고, 이에 엄마의 칼을 피한것이 존속 살인이 된 것이다.

다섯째 장은 와타나베의 유서에 의한 고백이다. 유능한 박사과정을 받던 엄마의 우연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만난 사람이 아빠이다. 아빠는 시골 전파상을 하는 그런 사람이다. 어울리지 않는 커플의 만남. 엄마의 학문에 대한 발목을 잡은 것은 나, 바로 와타나베이다. 엄마는 아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이어 이혼에 이른다. 엄마에게 배웠던 지식들, 좋은 머리의 엄마을 닮아 공부와 발명에 자신이 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만남을 위해서는 무엇인가 세상을 떠들섞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자꾸 그것이 빗나간다. 엄마와 이별한지 5년만에 알게 된 사실, 엄마가 자신을 떠난 것은 학문에 대한 욕망때문만이 아니었음을....
엄마에게 자신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세상의 많은 바보들과 자신은 분명 다른데..... 그것이 발명에 쏟았던 와타나베의 열정이었고, 살인까지 서슴치 않았던 것이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자, 그러면, 엄마가 찾아 오리라...
이기적인 와타나베의 인격은 어머니 이외의 인물은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의 생각이 스스로 만들어 낸 산물인 것이다.
마지막 장은 다시 유코 선생님의 고백이다. 와타나베에게 보내는....
여교사의 남편의 말이 독자들의 생각을 대변한다고 생각된다. '증오를 증오로 갚아서는 안돼'라는 말이....
마지막 여교사의 와타나베를 향한 독백은 '올바른 방향을 찾지 못하고 길을 잃은 이기적 자아들은 서로 맞물려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가게 되고, 파멸까지 이르게 된다.
이처럼 각 장의 고백을 통해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인물들의 심리가 세밀하게 쓰여진다. 보통의 작품에서 보듯이 제3자의 눈으로 보았다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심리적 상황들이 각자의 독백형식을 빌려서 들려주니 등장인물의 행동과 심리가 새로운 이미지로 살아서 돌아오는 느낌이다.
와타나베와 나오키의 성장과정과 가정환경이 어쩌면 사춘기에 접어든 그들에게 커다란 사건을 만들게 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탄하고 조용한 집안들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많은 것들이 결핍된 상태로 공존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행복에 희생당한 경우는 와타나베일 것이고, 엄마의 욕망에 희생당한 것은 나오키일 것이다.
또한 유코 선생님의 삐뚤어진 자식 사랑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딸의 죽음앞에서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혀 가면서 두 제자를 죽이고 싶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극한 상황이 되었을 지는 몰라도, 교사로서의 윤리관을 먼저 생각했어야 하지 않을까한다. 작가가 교사로서의 사명감보다는 딸을 읽은 부모의 분노와 절망에 더 큰 주제의식을 맞추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교사의 행동은 복수의 개념을 넘어선 범죄행위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청소년 범죄의 처벌 수위가 너무 낮고, 제도적 허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떠한 이유로도 인간이 인간을 처벌할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딸의 죽음에 대한 복수라는 주제를 가지고 쓰여지기는 했지만, 딸의 죽음에 얽힌 인물들 각자의 관점이 다양하게 묘사되었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특징일 것이다. 똑같은 상황에 처했지만 등장인물에 따라 새롭게 각색되고 비쳐진다는 것이 읽는 재미이기도 하다.
상상을 초월하는 결말이 마지막 책을 닫는 독자들의 가슴을 무겁게 하는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