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디디에 드쿠앵 지음, 양진성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는 그동안 이 살인사건'을 상황극으로 만든 작품들을 통해서 여러번 접했던 이야기이다.

 


그러나, '드드에 드쿠엥'이 저널리스토로 활약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세밀하고도 생생하게 소설로 재구성하니, 이전에 알았던 사실들보다 더 충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1964년 3월 13일 뉴욕에서 일어난 '키티 살인사건'.


그 사건은 귀가하던 28살의 여자가 자신의 집앞에서 무참하게 살해되는 것이다. 도망가는 키티 제노비스의 등을 칼로 두 차례 찌른 순간 그녀가 외치는 소리는 조용한 한 밤중, 아니 새벽에 가까운 겨울의 하늘에 울려 퍼진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p147)
그녀의 외침에 몸브레이 하우스 건물 위쪽의 유리창에 불이 켜진다. 그리고 또 몇 집에서도 불이 켜진다.
그리고 누군가 소리친다.
"야 ! 여기서 꺼져 !" 아니면 "너 거기서 뭐 하는거야 ?" (p148)
살인자 모즐리는 멈칫하고 재빨리 도망을 친다.
그리고 제노비스도 그 틈을 이용하여 자신의 집을 향해 힘겹게 달아나지만, 아무도 더 이상 도와주지를 않는다. 제노비스는 자신의 집에 들어가는 입구의 복도까지 도망치지만, 상처가 심하여 그곳에 머물게 되고 모즐리는 다시 쫓아와서 가슴 등지에 칼을 휘두른다.
그리고, 죽어가는 여자를 강간까지 한다.
그때도 누군가 복도에서 나오는 신음소리에 문을 열어 보기는 하지만....
이 광경을 목격하거나 살인의 소리를 들은 사람은 모두 38명이라고 한다.
주택가 한 가운데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목격자들.
그들이 경찰에 신고만 했어도 2분 거리에 순찰차가 순찰을 돌고 있었던 상황이라고 한다.
침묵의 방관자 38명도 제노비스를 죽인 공범자는 아닐까?
사건 발생후 그 공범자들은 제노비스의 살인사건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그녀의 살아 있을 때의 성격 등은 이야기했지만, 그 이상의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를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뉴욕 타임스의 로젠탈이 마틴 갠스버그에게 이 사건을 취재하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미국 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사건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후, 심리학자들은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제노비스 효과', '방관자 효과'라는 심리용어까지 만들어 내는 것이다.

 


윈스턴 모즐리 (살인범)은 어떤 사람일까?
그는 부인과 아이가 있는 가장이다. 직장에서는 꼼꼼한 근로자이고, 모범적인 직원이다.
제노비스 살인 후에도 직장에 출근할 정도로 아무런 죄의식 조차도 없는 인간인 것이다. 그는 이미 애니 메이 강간 살인사건도, 바바라 클랙릭 살인사건도 저지른 후 였다.
그의 특징은 여자들을 살인한 후에 시체를 강간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도 모즐리가 법정에서 감사, 변호사와 나누는 법정 대화가 인용되는데, 검거된 후에 아무런 감정표시없이 자신의 범행을 이야기하고, 이전의 범행까지 자백을 한다.
변호사는 그를 정신분열증 환자라고 하여, 사형은 면하고 무기징역을 받게 되는데, 이후에 자신의 직장에 금속물질을 넣고 병원에 가게 되는 과정에서 탈주를 하게 된다.
그리고, 빈 아파트에 숨어 있다가 집주인과 친하게 지내던 이웃이 이상하게 여겨 아파트에 찾아오게 되자, 두 부부를 잔인하게 폭행을 하고, 그 중 아내와는 남편이 보는 앞에서 강간까지 한다.
인면수심의 모즐리는 제노비스 사건후 40년이 지난 2008년에 13번째 가석방 신청을 했으나, 기각되었다고 한다. 그는 또 다시 몇 년후에 가석방 신청을 할 것이라고 한다. 이 당시 나이가 72살이다.
모즐리는 낮에는 완벽한 남편이자, 아버지의 역할을 하지만, 밤에는 이와같은 살인마로 변하는 것이다.
그는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선과 악을 구별하는 능력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는내내 과연 인간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 것일까?
모즐리와 같은 인간에게는 인간의 바탕에 선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의구심이 든다.
또한, 악랄한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들에게 정신분열증이라는 이유로 감행을 해 주는 것은 어디까지 인정해 주어야 할까?
정말로 정신분열증에 의한 살인이라고 해도 이토록 잔인할 수가 있을까?

 

  

 

38 명의 방관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날의 우리들을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들이다.
중고등학생들이 교복까지 입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때론, 한 학생을 괴롭히는 무리들을 볼 때도 있다.
영국의 BBC에 보도될 정도로 여학생들의 교복치마는 자꾸 올라만 간다. 학생들의 이야기에서 부터 출발하였던 모 드라마의 영향도 있고, 하위실종이라는 연예인들이 뿌려 놓은 유행에서 기인한 현상이기는 하지만, 저 정도까지 올라갈 수가 있을까 하는 교복치마를 입은 학생들.
그러나, 어른들은 그냥 방관하고 있다. 부모도, 교사도, 동네 어른들도....
자칫 잘못하면 학생들에게 봉변을 당하는 어른이 될 수 있으니, 그저 보고 눈살은 찌푸려지지만 지나치게 된다.
이런 현상이 결국에는 38명의 방관자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만약에 이 살인사건을 창문너머 나 혼자 보게 되었다면, 내가 신고해야 하겠다는 의무감에 경찰에 신고를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같이 보고 있다면,꼭 내가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또는 내가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신고를 할 경우에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작용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을까.
38명의 방관자들 중에서 이 사건으로 인하여 죽게 된 제노비스를 도와주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나만 아니면 돼~~", " 나 아니라도 그 누군가가 하겠지~~" 이런 생각이 우리 사회에는 팽배해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본다.
주택가에서 일어난 제노비스 살인사건.
약 30분에 걸쳐서 일어난 사건이고, 도움의 손길을 원했던 제노비스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 왔다면 어떻게 했을까?
물론, 한 밤중에 어둠 속에 나가서 그녀를 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찰에 신고는 하지 않았을까. 

개인주의가 만연하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소설이다.
아니, 소설이라기보다는 실제 상황이었으니,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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