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티나 데이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정환 옮김 / 서울문화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미스터리의 제왕'이라는 '히가시노 게이고'.

그러나 내가 읽은 그의 작품은 <탐정클럽>이 고작이었다.

<탐정클럽>은 몇 편의 단편 모음이고, 어떤 사건을 의뢰받은 탐정들에 의해서 사건이 해결되는 형식으로 극적인 반전은 읽는 재미가 있기는 하나, 차근차근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사건이 진행되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탐정이 해결된 내용을 전달하는 형식이어서 독자들이 사건 속으로 뛰어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단편보다는 장편이 훨씬 책 속으로 몰입할 수 있으며, 함께 사건을 파헤치는 묘미를 기대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플래티나 데이터>는 내가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 한 편의 장편 소설이었지만, 책의 중간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책을 손에서 놓치 못할 정도로 책 속에 푹 빠져들게 만들었다.

어떤 작품이든지간에 작가가 그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집필을 하면 할수록 좋은 작품이 나오고, 독자들도 그런 작품을 알아 보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플래티나 데이터> 역시 집필 기간이 3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 가루라 그리고 내면의 류.

<플래티나 데이터>의 주인공인 가구라는 어린 시절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게 된다. 아버지의 자살!!

도예가였던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 몰았던 것은 컴퓨터가 만든 도예작품.

이 사건이 재미였던, 아니면 과학발전을 입증하는 차원의 기획이었던, 아버지의 장인정신을 무참하게 짓밟은 사건이었다.

컴퓨터가 재현한 아버지의 도예작품들. 컴퓨터가 만든 위작을 가려내는 TV 프로그램에서 아버지는 3개의 작품이 모두 자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 작품을 만들 당시의 상황까지, 느낌까지 모두 느낄 수  있었던만, 3개의 작품은 모두 위작.

아버지가 자신의 작품을 모두 깨뜨리고 자살을 하신 모습을 보고 가구라는 큰 충격과 함께 공황상태에서 기절을 하게 되고, 그후에 그는 다중인격이 되는 것이다.

가구라, 그리고 가구라의 내면에 존재하는 또 다른 가구라인 류.

나는 그동안 다중인격에 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많이 읽었기에, 가구라와 류의 다중인격을 내나름대로 생각했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그런 상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가구라는 실제의 모습, 가구라 내면의 또다른 류는 과격한 살인마의 기질을 가진 모습으로....

여기에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캐릭터의 선정의 남다름이 엿보이며, 또한 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실마리가 있는 것이다.

가구라는 경찰청 특수 해석 연구소의 주임으로 새로 개발한  DNA 수사 시스템에 의해 사건 해결을 담당하는 발달한 과학의 실체에 신뢰감을 갖고 있는 이성적인 인물. 그러나 류는 가구라와는 전혀 다른 감각적인 인물로, 그가 그리는 그림에는 류의 마음과 의식의 밑바닥에 깔린 아버지의 장인정신에 대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사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가구라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어차피 인간의 마음은 나약한 존재이며, 데이터야말로 모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지만, 류는 가구라가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류는 그것을 자신의 가장 큰 보물로 생각한 것이다.

 

 

어떤 사건에서 입은 트라우마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이 가구라와 류는 한 사람이지만 내면에서는 이렇게 완연한 차이점을 보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의 그 어떤 주제들보다도 이런 설정이 마음에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이다.

 

★ '플래티나 데이터' 그리고 '모글'
과학기술의 발전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것일까?

얼굴의 한쪽의 절반을 차지하는 반점을 가진 다테시나 소키와 그의 오빠.

다테시나는 자신의 외모때문에 힘든 상황을 수학이라는 학문에 매진하여 수학천재가 된다. 다테시나 남매가 만들어낸 최첨단 DNA 수사 시스템의 실용화.

이 시스템으로 각종 사건 현장에 모발 한 가닥만 떨어져 있어도, 사건의 범인을 색출할 수 있다. 혈액형, 키, 몸무게, 심지어는 몽타주가 아닌 범인의 사진까지도.

디지털 테이터가 있다면, 모든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은 경찰청 특수해석연구소의 DNA 수사 시스템의 검색 결과는 ‘NOT FOUND’. NF13으로 분류되게 된다.

그런데, 이 시스템을 만들어낸 다테시나 남매가 살해되게 되고, 그들이 연구하던 결과물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플레티나 데이터'. 그것의 해결할 수 있는 '모글'

 

 

과학의 발전은 과연 어디까지 가능하게 할 것이며, 그것이 가져다 주는 부작용들은 어떤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게 한다.

★ 국가 지도층의 추악한 모습은 이 작품에서도 한 몫을 한다.

국가 지도층은 국민들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모든 정책은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과연 그럴까. <플래티나 데이터>에서도 방대한 양의 DNA 데이터를 축적하는 사업에 국민들의 협조를 구하고, 그것이 범죄를 예방하는 방법이라고 하지만, 그것 자체를 두려워 하는 집단은 국가 지도층, 사회 지도층이라는 것이다.

개인 정보를 취급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범죄 행각이 들어 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두려워하고, 시스템에서 빠져 나가려는 음모를 꾸밀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정신을 조종하는 노하우는 권력을 쥐는 것과 연결되는 거야, 그래서 실험이 필요했어. (P 472)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탄탄한 구성과 정교한 문체, 그리고 강한 흡인력.

<플래티나 데이터>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에 단연 최고라는 평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소설의 소재나 주제가 그렇게 낯설지는 않지만, 소설의 구성이 탄탄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기설기 얽혀 있는 이야기들이 조금씩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책 속에 빠져들 정도로 강한 흡인력을 가진 작품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캐릭터들도 다양하다.

끝까지 가구라의 행적을 쫓는 아사마. 그리고 내면의 류.

또다른 사람의 내면의 인물인 스즈랑.

미스터리 소설의 묘미인 범인 찾기는 쉽게 짐작이 가는 인물이지만, 미스터리 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스스로 책을 읽어가면서 범인을 추측해 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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