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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싸리 정사 ㅣ 화장 시리즈 2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저녁싸리 정사>는 화장(花葬) 시리즈의 완결판이라고들 말한다.
꽃을 소재로 한 죽음을 다룬 8편의 단편들을 일컫는 말인데, <저녁싸리 정사>에는 그중의 <붉은 꽃 글자>, <저녁싸리 정사>, <국화의 먼지> 3편이 실려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렌죠 미키히코'는 처음 접해 보는 작가인데, 이 책의 글들을 보면 마치 근현대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신선하고 세련된 문체들은 아니다.
그 대신 그의 문장들은 유려한 수사법과 서정적인 문체들로 쓰여져 있어서, 미스터리 소설인데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소설들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소설들을 끝까지 읽어보면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렌죠 미키히코'가 "일본 특유의 정서를 혼합한 독특한 작품을 선보이는 미스터리 작가"(작가 소개글 중에서)라는 평을 듣는다고 하는데, 그 의미는 <저녁싸리 정사>에 나온 작품들을 끝까지 읽어야만 알 수 있는 평가일 것이다.
♥ 붉은 꽃 글자
아버지가 살해됨에 따라서 헤어지게 되었던 남매처럼 지내던 여동생.
우연한 기회에 헤어진지 5년만에 만나게 되는 여동생이지만, 그녀는 기생이 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약혼자까지 있는 친구가 여동생 미쓰를 좋아하게 되고....
친구와 미쓰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
이 이야기를 단순한 여동생을 염려하는 오빠와 그 오빠의 친구를 사랑하는 갸날픈 소녀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면 그 뒤에 깔린 엄청난 반전에 놀라게 될 것이다.
"끊겨진 인연의 실 가닥, 서로의 끝자락이 바로 지척에 있는 줄도 모르고 오 년동안 공허한 어둠의 물레질만 했던 것이다. " (p18)
★ 저녁싸리 정사
8살 어린 나이에 저녁무렵에 참억새밭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중에 남녀가 그 들판을 분주히 지나가다가 어린 나에게 집을 찾아갈 수 있도록 초롱불을 건네주면서 땅에 떨어진 하얀 싸리꽃을 따라가라는 말을 건넨다.
그 남녀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죽음으로 끝내기 위해서 죽음의 싸리밭으로 향하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 기억을 가지고 성장하던 중, 그들의 죽음은 꽤 알려진 <저녁싸리 정사>였고, 그때 만난 남자인 신노스케가 유우와의 사랑에 관한 글을 <저녁싸리 일기>로 남겨 놓았음을 알게 된다.
그들의 죽음에 관심을 가지고 파헤치던 중에 유우와 신노스케의 죽음 뒤에 있었던 음모를 알게 된다.
"두 사람은 달빛 밝은 밤에, 어둠이 깊게 깔린 밤에, 싸라기 눈이 내리는 밤에 장지를 사이에 두고, 그림자와 기척만으로 거듭 교감을 나누었다. " (p 136)
"싸리꽃이 필 때 죽고 싶어요." (p145)
♣ 국화의 먼지
언젠가 잠깐 동네어귀에서 만났던 여인이 남편이 자살했다고 경찰에 알려주기를 원한다.
그녀의 남편은 군인이었는데, 불행한 사고로 불구가 되어 병상에 누워 지낸다.
군인이 자살했다는 날, 우연히 보게 된 그 집 창문에 어렸던 그림자.
그리고, 몇 번인가 보았던 여인의 이상한 행동.
그 남자의 자살에 의문점이 많음을 알고 그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 당신에게 군인으로써 긍지가 아직 남아 있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시겠지요?" (국화의 먼지 중에서, p247)먼저 이 세 편의 미스터리 소설은 꽃을 소재로 한 자살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이 소설들의 특징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이야기들이 바탕에 깔려 있다.
<붉은 꽃 글자>처럼 약혼자가 있는 바람둥이 친구를 사랑하는 여동생(친 여동생은 아니다)의 사랑.
그리고
<저녁싸리 정사>에서는 자신이 모시는 사람의 부인을 사랑하게 되고, 그녀 역시 멀지 않아 자살을 하려는 마음을 갖고 살다가 남편의 시중을 드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싸리꽃이 필 때에 죽기로 하는 약속을 하게 된다.
<국화의 먼지>에서는 여인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아닌 것 같으나, 가끔씩 드나드는 군인이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비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이 3편의 소설은 애달픈 사랑이야기이고,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기에 그 중의 한 사람이, 아니면 두 사람이 자살을 하는 것처럼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런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자아내는 이야기인데,
이것이 이 소설들의 끝이 결코 아닌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그런 자살을 파헤치는 과정이 더욱 흥미로운 것이다.
이 소설들에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엄청나고 교묘하고 의도된 트릭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들은 비정한 범죄트릭과 서정적 사랑이야기의 만남이라고 해야 좋을 듯 싶다.
순수한 사랑이야기와 살인사건의 만남.
이 소설들을 끝까지 읽은 후에야, 처음 이야기를 읽을 때에 얼마나 큰 오류를 범했는가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자살을 위장한 살인사건.
그 방법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게 감추어져 있다가 주인공 '나'에 의해서 파헤쳐지는 것이다.
<저녁싸리 정사>에서 보여주는 신노스케(남자)가 아버지의 한을 자신의 손으로 풀겠다는 생각과
유우(여자)의 남편의 모든 음모를 알고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겠다는 마음만을 이룰 수 있다면 살인의 공범이 될 수 있다는 생각.
<국화의 먼지>에서 남편을 가상의 생각에 빠지게 하여 죽음으로 몰아 넣는 계획적인 살인은 어찌 보면 참으로 끔찍하고 비참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소설을 읽다보면 소설 속의 범인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충격 요법이 아닐까 한다.
잔잔한 사랑이야기가 죽음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사건을 파헤치기에 살인의 충격이 감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는 소설의 문체가 서정적이고 유려한 문체들이기에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에는 일본의 역사가 녹아 있기도 하다. 도쿠가와의 몰락되고 메이지 유신이 단행되면서 가지게 되는 원한 관계도 한 몫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은
♠ 양지바른 과 사건부 ♠
앞의 3작품과는 완연히 다른 이야기이다.
흔히 말하는 유머 미스터리이다.
제1화 하얀 밀고
제2화 네 잎 클로버
제3화 새는 발소리도 없이
이렇게 3화로 나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
다이토 신문사의 자료부이기는 하지만, 신문사에서 가장 한직에 속하는 부서이다.
사회부에서 밀려난 시마다 과장, 그리고 호소노 아이코, 오토모 로쿠스케, 그리고 여직원 오가와 쇼타.
이렇게 4명의 덜렁거리는 직원들이 벌이는 한바탕 소동같기도 한 좌충우돌 직장생활이야기와 사랑이야기이다.
물론, 이 이야기에도 살인사건은 등장한다. 그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유머러스하면서도 재미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지만, 차분하게 읽다보면 '렌조 미키히코'의 교묘한 의도된 살인에 대한 트릭이 숨어 있는 것이다.
더운 날씨에 아주 간담이 서늘한 미스터리 소설도 재미있지만, 또다른 느낌을 주는 <저녁싸리 정사>도 한여름 밤의 무더위를 식혀주는 소설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