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여우 발자국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기, 여우 발자국>의 조선희 작가의 작품을 처음 읽게 된 것은 <모던 팥쥐전>을 통해서이다.

전래동화인 콩쥐팥쥐의 패러디 작품쯤으로 생각했다가, 한여름 밤에 등골이 오싹해지고 기분이 으시시한 느낌을 받았던 6편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는 책이다.

이미 조선희 작가는 제 2회 한국 판타지 문학대상을 수상하기도 해서 그녀가 판타지 소설을 잘 쓴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도발적이면서도 서름끼치는 상상력을 작품에 담아 내고 있다.

전래동화가 작가의 손을 고치면서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이 깨지고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 여우 발자국>을 읽으려고 생각했을 때부터 나의 상상력을 뛰어 넘는 특이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 소설은 단편소설이었던 <모던 팥쥐전>보다 더 기이하고  소설 속에서 어떤 이야기가 현실 속의 이야기인지, 어떤 이야기가 환상 속의 이야기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이야기는 마구 얽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다 읽게 되면 작가가 하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곁가지들을 만들어 놓았고, 그 이야기들이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들로 30년전의 이야기인지, 지금의 이야기인지 혼동스럽게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그것은 작가의 계산된 구성임을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짤막 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었던 <모던 팥쥐전>으로 조선희의 작품 세계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독자들도 책을 들고 한 동안 방황하게 되는 것이다.

구성 자체가 너무도 낯설기 때문이다.

 

 

<거기, 여우 발자국>은 동화 <눈의 여왕>, <별의 눈동자>, 영화 「<큐브> 등에서 다양한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다. 거기에 우리의 전래동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여우의 둔갑술를 함께 차용한 것이다.

발자국만 남기는 여우....

이야기의 시작은 괴상 망측한 소문의 건물을 매입하게 되는 이야기.

 

" 사람들 말이 그 발자국을 다라 건물로 들어간 사람 중에 다시 나온 사람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 (p25)

 

우연히 맨발이 예쁜 여자가 걸어가면서 걸음 걸음 남기는 발자국을 쫓아 가게 된 흉가 건물.

그 건물을 사서 인테리어를 바꾸고 카페를 열게 되는데,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발자국들.

수달, 삵괭이, 너구리, 황새 발자국, 거기에 여우 발자국까지.

또한 이상한 마력의 목소리를 가진 홍우필.

그의 목소리는 이상한 현상을 불러오기도 하고, 좋지 않은 사건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그가 문맹자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 녹음 작업을 하게 되면서 읽게 되는 이상한 책.

그 책 속의 이야기는 마치 자신의 이야기같기도 한데, 어떻게 일어나지도 않았던 일들이 소설 속에 적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소설 속의 이야기가 현실로 나타나는 것일까?

 

" 우필의 목소리는 실제로 활자를 살려내는 기적의 목소리인지, 혹은 우리 뇌의 측두엽을 자극해 환각을 만들어내는 효과를 가졌던 것인지를 알 수 없다. 어쨌건 우필의 목소리에 마술적인 구석이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 " (p163)

 

이 소설 속의 내용을 인용하면, 이 소설의 이야기 전개나 내용을 조금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 이 이야기가 어떻게 진핼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상자 속에서 상자가 끝없이 튀어나오는 중국 상자처럼 이야기 속에서 다른 이야기가 그 다른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끝없이 튀어나오게 될지, 혹은 아프리카풍 패치 스커트처럼 이야기 조각과 이야기 조각과 이야기 조각이 이리저리 붙어 한 장의 옷이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또 다른 조각 옷과 맞춰 한 벌의 이야기가 될지 그건 아직 알 수 없다. " (p40~41)

 

이야기를 읽으면 그것이 현실이 되는 여자 홍우필, 그리고 실체와 환상을 혼동하는 남자 태주.

그들의 이야기는 읽는내내 어느 것이 현실인지, 환상인지, 어떤 이야기가 현재의 이야기인지, 어떤 이야기가 과거의 이야기인지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시간적 의미도, 공간적 의미도 서로 얽혀서 풀리지 않는 한 뭉텅이의 실타래처럼....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묻는다.

"어느 쪽이 현실이고 어느 쪽이 허구인지 골라내셨나요?" (p325)

" 무슨 이야기든 이야기가 완성된 후에는 이야기를 읽는 사람이 멋대로 생각하도록 내버려둬야 하는 법이죠. 그저 제 이야기가 여러분 마음 속의 어딘가를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잡혔다면 그냥 끌려 들어가 각자의 숨겨진 구멍 눈을 통해 다른 세상을 엿보세요. 저처럼요. " (p327)

 

어찌 보면 맹랑하기 그지 없는 작가의 말이지만, 곱씹어 보면, 작품을 쓰는 것은 작가이지만, 그 작품을 읽는 것은 독자이니, 독자의 눈으로 어떤 세상을 바라보는가는 독자의 몫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더 이상의 군더더기 붙은 서평은 끝내기로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