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브레이크 호텔
서진 지음 / 예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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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하트 브레이크 호텔>의 작가인 서진은 상당히 인상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내가 읽은 그의 작품은 오직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한 작품뿐인데도 말이다.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는 한국이 아닌 북러버들의 성지라고 하는 뉴욕의 서점 순례기이다.
그런데, 책의 내용은 다소 혼란스럽다.
서점을 찾아 다니는 서점 순례기를 겸한 여행에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장르를 넘나드는 서진만의 특색이 작품 속에 엿보이는 것이다.
서점 탐방과 함께 픽션이 가미된 소설이 이 책 속에 또 담겨 있는 것이다.
로버트와 제니스라는 가공의 인물과 서진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픽션을 책 속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점 순례에 관한 여행 에세이와 소설적 픽션, 그리고 인터뷰 기사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특색있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를 읽으면서 책 속의 단편소설은 몽환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공간을 초월한 이야기가 때론 황당스럽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서진이 그에게 있어서는 두 번째 소설인 <하트 브레이크 호텔>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원래는 이 소설이 작가의 자비로 2005년에 출판을 하였으나 별로 신통치 않았던지 잘 팔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더 이상 쌓아 둘 장소를 찾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이 책 중의 이야기와 또 다른 이야기를 엮어서 이번에 출간하게 된 것이다. 
이 책 속에는 8 편의 연작소설이 소개되는데, 작가는 구태여 이 소설들을 연작소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 이 책은 단순한 소설집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작소설도 아니고, 장편소설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과학소설도 아니고, 로맨스나 스릴러도 아니다. 그냥 야한 (야하고 싶었던 소설이라고 해두자 혹은 입구는 있지만, 출구는 없는 소설, (...) " (작가의 말 중에서 p363)

"몰입해 읽다보면 현실과 비현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여져서, 사랑은 가고 기억만 남은 어느 저녁에, 외로운 길을 혼자서 걷고 있다는 비애로 충만해 질 듯도 하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의 평론 중에서, p 36)

작가 자신의 말과 문학평론가인 이명원의 평론의 일부분만을 보아도 <하트 브레이크 호텔>이란 소설이 그리 평범한 소설은 아니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속의 8편의 단편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황령산 드라이브 part 1 부산>과 <황령산 드라이브 part 2 부산>만 같은 배경, 같은 인물, 같은 사건의 이야기이고, 나머지 6편은 각각 배경, 인물, 사건의 모두 다르다.
그러나, 그것들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기억의 속도라는 반복 모티브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경이 되는 도시들도 부산, 샌프란시스코, 도쿄, 마이애미, 워싱턴 DC, 라스베가스, 뉴욕 등인데, 그곳에는 하트 브레이크 호텔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 호텔에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끝이 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도시에 있는 하트 브레이크 호텔은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는 시간 여행의 통로인 것이다.
 
 
 
<황령산 드라이브 part 1 부산>은 이 소설의 입구인 셈인데, 여대생과 여자 대학 강사사이의 데이트 신청으로 시작하여 하트브레이크 호텔까지 가게 되는 동성연애를 다루고 있느니, 처음에는 동성연애인 줄 모르고 소설을 읽어 내려가던 독자들은 처음부터 황당한 이야기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작품들 속에서 시간여행, 공간여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신혼여행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찾은 샌프란시스코의 신혼여행지로 생의 마지막을 보내기 위한 여행을 온 노인이 겪게 되는 시간여행.
모든 생을 마무리 짓기 위한 여행에서 자신의 살아온 날들을 다 알고 있기에, 추억 속의 그 시점에 지금의 노인이 시간여행으로 도달했다면, 그 노인은 자신의 운명을 돌이킬 수까지는 없어도 앞 날을 내다 보는 선견지명은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구원의 날>, <미래 귀환 명령>등에서도 하트브레이크 호텔을 중심으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는 계속된다.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에서 이미 서진의 소설의 특징을 알고 있는 나이지만, <하트 브레이크 호텔>속의 단편소설들은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환상 소설인지, 아니면 꿈 속을 헤매고 다니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둥둥 떠다니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바로 서진 소설의 특이성인 '경계 소설', '경계'를 횡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단편들은 생판 딴 이야기들이지만, 어떤 연결고리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작가 서진은 은근히 자신의 소설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내 머릿속의 핸드폰>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말하기도 한다. 뉴욕에서 서진이라는 소설가를 만나기 원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 이야기의 내용이 바로 <하트브레이크 호텔>집필하는 작가의 이야기와 같아서 더 흥미롭기도 하다.
그리고 이 소설의 출구이기도 하면서 또 다른 입구이기도 한, 에필로그인 <황령산 드라이브 part 2 부산>의 이야기로 프롤로그에서 석연치 않았던 이야기들이 이 작품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명쾌하게 해설되는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8편의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여러 경로를 통한 시간여행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변한다고 해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까....
사랑의 기억, 사랑의 속도.... 

지금 이 순간, 사랑의 기억만은 영원하다는 것을, 아니, 사랑의 기억만은 영원하길 바라는 마음을 이들 작품 속에 담아 낸 것이 아닐까 한다. 

 
 
서진이라는 작가가 세상에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2007년 한겨레 문학상을 받은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는 아직 읽어 보지 못했지만,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를 통해서 그를 알게 되고, 이제 <하트 브레이크 호텔>을 통해서 작가가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서진의 또 다른 책이 출간된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책을 사서 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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