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 - 구효서 장편소설
구효서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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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의 <서시>, <별헤는 밤>은 우리들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시들이다.

"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 (별헤는 밤 중에서)

  

<동주>의 작가 '구효서'는 시인 윤동주앞에 붙는 '민족', '저항'이라는 관형사를 조심스럽게 벗기고, 그가 반한 윤동주의 얼굴, 눈빛, 미소 등 사진에 박힌 그 모습 그대로를 재발견하고 싶었던 것인가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반한 윤동주의 죽음을 그리고 싶어서 <동주>를 쓰게 되었다.



그런데, 작가의 <작가의 말>에서도 밝히듯이, 이 소설은 윤동주가 화자도 주인공도 아니다.
화자이자 주인공은  동주가 죽기 전에 살았던 타케다 아파트의 사동 '텐도 요코'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화자이자 주인공은 재일교보 3세 김경식이다.

요코는 자신의 출생을 알지 못하는 일본인이 주워와서 키운 아이이다.
그녀는 이붓아버지를 피해 나가사키에서 교토로 오게된 15살 소녀인데, 그가 일하는 아파트에서 동주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소녀는 자신의 행동이 동주를 경찰서로 연행하게 되었으며, 사형을 당하게 하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소녀는 글자를 배우게 되고, 나중에는 자신이일본인이 아닌 아이누인임을 알고  아이누 언어와 문자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후에 그녀는 동주의 유고를 추적하게 되는데, 그 과정을 두 개의 언어로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15살 텐도 요코의 눈에 비친 그당시의 이야기는 일본어로.
그리고, 성장하여 학문을 배운 후에 깨닫게 된 자신의 15살 동주와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와 동주의 유고를 추적하는 이야기는 아이누어로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15살 텐도 요코의 기록은 너무도 유아적인 글들인데 반하여
훗날 이타츠 푸리 카의 기록은 초반의 기록에서 후반의 기록으로 갈수록 좀더 섬세하고 성숙한 기록이다.





여기에 야마가와 겐타로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그는 어느날 어머니로부터 자신이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일본인이건 한국인이건 그에게는 커다란 차이점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아르바이트일을 하게 되면서  그의 친구인 시게하루의 갑작스러운 증발로 인하여 친구를 찾는 과정에서 동주의 산문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어떤 실마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동주의 산문을 추적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라진 윤동주의 유고를 숨기려는 세력을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친구 찾기에서 비롯된 윤동주의 산문 유고를 추적하는 과정이 전개된다.



이처럼 <동주>는 윤동주의 유고를 둘러싼 미스터리 형식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텐도 요코, 그녀는 나중에 이타츠 푸리 카라는 이름으로 살아 간 여인이고, 그녀는 동주의 유고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동주가 한글로 그의 작품을 쓴 것에 대한 이해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 경찰에 의해서 동주의 시가 한글에서 일본어로 번역이 되었다는 것은 동주의 시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동주의 죽음은 사형당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의 죽음은 저항시인의 죽음이요, 그 이전에 이미 시모가모 경찰서에서 시인으로서의 죽음을 맞이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야마가와 겐타로는 나중에 한국어를 공부하게 되고 김경식으로 개명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이 소설의 두 화자이자 주인공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야코가 일본인이 아닌 아이누인이기에 그의 언어가 일본어가 아닌 아이누어가 되듯이, 겐타로도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기에 한국어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주도 한국인이자 간도에서 출생하고 일본 유학을 하지만, 그의 언어는 한국어인 것이다.
일본어로 번역된 동주의 시는 이미 윤동주의 시가 아닌 것이다.

" 우월하고 열등하고를 떠나, 누구에게나 무엇에게나 고유한 자기라는 게 있기 마련이니까. 일본과 다른 조선, 일본말고 다른 조선의 고유한 말을 지키고자 한 거겠지. 우열을 매겨서 저마다 우등하다 칭하는 것을 취하고 열등하다 칭하는 것을 버리면 하나로 같아져 개별과 단독의 고유성은 없어지는 거란다. (..) 실제로 우월하고 열등한 것이 아닌데도 우월하고 열등하다 속여 이르면서 침략과 동화를 정당화하려는 거지. 미개하고 야만적인 세계를 문명화한다는 명분. 그러나 우월병에 걸린 것은 지금의 미친 일본이고 그게 외려 야만이란다. 동주가 조선 시인으로 살고자 했던 것은 그것이 더 좋고 더 나아서가 아니라 고유성을 지키려  했던 거고, 그것을 잃으면 실상 모든 것을 잃는다는 신념때문이었을게야. (...) 이런 시인은 어쩌면 험악한 세상을 바꾸지 못할지도 몰라. 하지만 아무리 험악한 세상도 이런 시인을 결코 바꾸진 못한단다. " (p 297~298)

<동주>는 미스터리 형식을 빌리기는 했지만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언어, 말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윤동주의 죽음을 통해서, 그의 유고의 추적을 통해서 언어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인에게서 시인의 언어인 한국어를 번역하게 하는 것은 그의 시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기에.
또한, 소설의 내용 중에 '간도'의 의미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동주가 태어난 곳이 간도이지만, 이것은 언어의 이중성으로 풀어야 하는 것이다.
간도(間島)는 사이의 섬, 무엇과 무엇의 사이를 의미하는 것이다.
텐도 유코와 이타츠 푸리 카.
그리고 야마가와 갠타로와 김경식.
거기에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윤동주.
그들의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 내는 것이 이 소설을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 시가 꽃이라면 각각의 언어가 그대로 꽃이요, 시인은 꽃잎을 받치고 선 꽃대일진대 언어를 앗아 시를 유린함에 어찌 꽃대인들 저 홀로 생명이라며 하늘을 우러를 수 있을까. 꽃나무는 그렇게 하늘 아래 홀연히 꽃 피우고 서 있는 것으로 존재의사명을 할 것일 터, 그걸 일컬어 감히 누가 미미하고 유약하다 할 것인가. 말을 앗기고 잃는 순간 저절로 생명이 소멸해버리는 시인의 운명이 어찌 가엽고 안타깝기만 할까. 가엽고 안타까운 것은 말을앗기고도 살아 있는 유사 시인일 뿐, 본분에 살고 본분에 죽어 갔던 것을. (...) "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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