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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쇼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퀴즈쇼>는 2010년 2월에 개정판이 나왔다.
그런데, 집에 소장하고 있는 <퀴즈쇼>는 2007년 구판이지만 내용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같다.
내가 김영하의 작품을 처음 읽게 된 것은 여행에세이인 <여행자 시리즈 1- 하이델베르크>를 통해서 였는데, 그 책은 단순한 여행 에세이를 뛰어 넘는 특색있는 책이었다.
하이델베르크를 소재로 쓴 소설과 여행지에서 직접 찍은 감각적인 사진과 카메라에 얽힌 추억담, 여행일화를담은 에세이가 함께 담겨진 책이었던 것이다.
내가 여행자로 걸어 다녔던 하이델베르크의 성이나 카를 테오도 다리 등을 추억하고 싶어서 읽은 책에서 의외로 좋은 작가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후로 <여행자 도쿄>,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랄랄라 하우스>등의 에세이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등을 읽으면서 작가의 작품과 친숙하게 되었다.
작가의 글은 퀴즈쇼에 나오는 이민수만큼이나 지적 수준이 높은 지식의 향연을 담아내고 있었다.
이민수는 아는 것이 참 많다는 고시원의 옆방녀의 말에 잡학수준이라고 하지만, 작가의 글은 잡학수준이 아닌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이 돋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이 가진 상상력과 표현력은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역시 김영하니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
<퀴즈쇼>는 80년대에 태어난 원숭이띠인 스물일곱살 고학력 백수의 성장소설이자 연애소설인 것이다.
스물일곱 살 !!
꿈많은 청춘들, 그런데, 그들의 현주소는 어떤가?
학교, 학원을 쉴 틈없이 드나들면서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를 갔다오고, 졸업을 하지만, 사회는 그리 만만하지 않으니 그들은 졸업과 동시에 좌절을 맛보기도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이민수는 왕년에 단역배우를 했던 외할머니밑에서 자란 사생아이다. 아버지는 누구인지도 모르고, 엄마도 기억에 없는 청년이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도 다녔고, 유학을 보내준다는 외할머니의 말에 따라 영어학원을 다니던 그에게 외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인생의 큰 고비를 가져다 준다.
외할머니가 남겨놓은 것은 빚더미.
월세 29만원의 창문없는 고시원생활, 그것도 겨우 한 달 밖에 버틸 수 없었던 경제사정.
편의점 알바도 겨우 며칠 버틸 정도이니....
창문없는 음침한 고시원 방에서 그가 찾을 수 있었던 것은 " 현실의 창대신 빌 게이츠의 창,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를 선택" (p62)하게 되는 것이다.
퀴즈방에 클릭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활동.
민수는 자신에게 닥친 일들에 대해서 어떤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뭐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세상의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서 유유자적하며 살아가는 그런 청춘이라고 할까.
현실에서는 소외되었지만, 인터넷 퀴즈방에서는 경쟁에 끼는 그런 청년 백수.
컴퓨터 네트워크의 세상에서는 자신의 아바타가 존재하고, 아바타는 나의 실제 모습은 아니지만, 나 자신처럼 행세를 하기에 이민수의 세대들은 그 뒤에 숨어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상의 세상과 만날 때는 누추한 현실을 잊을 수 있기에.
가상의 세상에 빠져서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듯한 민수의 생활은 퀴즈방에서 아이디 '벽 속의 요정'을 만나게 되고, 그것은 민수의 새로운 사랑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많은 독자들은 <퀴즈쇼>를 읽으면서 작가가 고시원의 생활, 편의점 알바의 생활, 인터넷 퀴즈방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등을 너무도 소상하게 묘사하기에 혹시나 작가도 이런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작가는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들에 대해서 너무도 밀착 취재하여 쓴 것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민수가 이필성을 따라 가게 되는 산 속의 <회사>의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느끼게 해준다.
퀴즈쇼를 대비하여 훈련받는 집단의 이야기.
물론, 그것이 가상의 세계, 허구의 세상이었는지는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지만,
바로 그것이 청춘들의 방황이자, 자아 속의 탈출구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던 청춘들이 그들의 세상으로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치열한 경쟁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거운 껍데기를 스스로 벗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사회에 나가기도 전에 그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삶을 사는 청춘들.
가장 희망찬 시기에 가장 암울한 현실에 봉착한 청춘들.
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비록 민수가 헌책방의 점원으로 취직을 하지만, 그것은 민수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민수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에 그런 민수에게 그것은 세상을 살아나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서
" 부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청춘의 찬란한 빛이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하기를" 이라는 말을 전한다.
역시 김영하의 작품은 읽는 책마다 그만의 독특한 개성과 신선함이 함께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