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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기도 - 이해인 시집
이해인 지음 / 열림원 / 2011년 9월
평점 :
♥ 가을의 말 ♥
하늘의 흰 구름이
나에게 말했다
흘러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흐르고 또 흐르다 보면
어느날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
뜨락의 석류가
나에게 말했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마라
잘 익어서 터질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면
어느 날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리라 (p 23)

이해인 시인은 항상 우리곁에 있는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시인이다.
발표하는 시집들이 스테디 셀러가 될 정도로 독자들이 좋아하는 시를 많이 쓴다.
어렵지 않은 시어들과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는 시구들.
그리고 수도자이면서도 항상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감사가 부족한 듯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고마움이 부족한 듯한 생각들을 시로 읊는다.
뜨락에 핀 한 송이의 꽃에도 경이로움을 느끼고, 하늘의 구름 한 점에도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이해인의 시들은 언제 읽어도 마음 속에 깊은 여울을 만들어 준다.
얼마 전에 읽었던 산문집 <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보이듯이>에서 자신의 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담아 내면서 병마를 이겨내는 자신의 모습을 일기 형식으로 들려주기도 했었다.
그 잔잔한 감동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동안에 발표하지 않은 시 50편과 함께 발표했었던 시를 엮어서 <작은 기도>를 선보인다.
작은 기도 !!
어찌 시인의 기도가 작은 기도이겠는가....
모태신앙에서 어머니에게 배웠던 기도가 일상이 되었고, 수녀로서 단 하루도 건너 뛸 수 없었던 것이 기도였겠지만, 시인에게 기도는 언제나 목마른 것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기도는 시인에게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며, 영원한 사랑이고 그리움인 것이다.
<작은 기도> 속의 시에서는 이 세상과의 이별을 은연중에 많이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동안의 투병생활과 가까운 분들을 먼저 보낸 아픔이 이렇게 시 속에 엿보이는 것이다.
" 내가 사랑하는 한 사람의 죽음을 아직 다 슬퍼하기도 전에 / 또 한 사람의 죽음이 / 슬픔 위에 포개져 / 나는 할 말을 잃네 / 이젠 울 수도 없네 // 갈수록 쌓여가는 슬픔을 / 어쩌지 못해 / 삶은 자꾸 무거워지고 / 이 세상에서 사라진 / 사랑하는 이들 // 세월이 가도 / 문득 문득 / 그리움으로 살아오는 하얀 슬픔이 / 그래도 조그만 기쁨인가 / 나를 위로 하네 // "( 슬픈 노래 중에서, p 99)
" 어느날 내가 / 지상의 모든 것과 작별하는 날도 / 눈이 내리면 좋으리 / 하얀 눈 속에 길게 누워 / 오래도록 사랑했던 / 신과 이웃을 위해 / 이기심의 짠맛은 다 빠진 / 맑고 투명한 물이 되어 흐를까" ( 첫눈 편지 중에서, p112~113)
"하느님을 향한 수직적인 사랑과 이웃을 향하고 나누는 수평적인 사랑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순한 조화를 이루어 마침내 더 자유롭고 행복한 기도자로 살고 싶습니다." ('시인의 말' 중에서)
시인은 사랑, 행복, 겸손, 자연, 기도, 하느님, 감사, 눈물, 용서 등을 노래한다.
♣ 행복의 얼굴 ♣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나에게 고통이 없다는 뜻은
정말 아닙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행복은
천개의 얼굴로
아니 무한대로
오는 것을
날마다 새롭게 경험합니다
어디에 숨어 있다
고운 날개 달고
살짝 나타날지 모르는
나의 행복
행복과 숨바꼭질하는
셀렘의 기쁨으로 사는 것이
오늘도 행복합니다. (p77~78)
♠ 마음의 문 ♠
내 마음을 여는 순간
당신은 내게 와서
문이 되었습니다
그 문 열고 들어가
오래 행복했습니다
이젠 나도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문이 되고 싶지만
걱정만 앞서니 걱정입니다
살아갈 날이 그리 많지 않은데
사랑의 분량은 많지 않아 걱정
마음 활짝 열어야 문이 되는데
오히려 닫고 있는 나를 보게 되는 걱정
하지만 오늘도
걱정의 틈은 좁히고
마음은 넓혀서
문이 되는 꿈을 꾸겠습니다. (p 81~82)

<작은 기도>에 실린 시들은 시인이 그동안 어느 때보다도 아픈 일들이 많았던 시기에 썼던 시들이기에 마음 속에 더 깊게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아픔을 시인은 하느님을 통해서, 자연을 통해서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는 마음으로 승화시킨다.
언제나 소박하면서도 잔잔한 시들이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가져다 주기에 항상 우리곁에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