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바벨탑
박태엽 지음 / 북캐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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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에게는 큰 돈 만들기의 역할을 하여 주는 은행.
그 은행이 망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1997년 말 IMF가 터지면서 은행들은 구조 조정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은행간의 합병이 있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어느 여 행원의 눈물이었다. 아마도 평생 직장이라는 생각으로 몸담고 있던 은행원의 자리를 잃게 되었으니, 가족들의 생계를 비롯한 수많은 생각들이 그녀를 투쟁 장소에 있게 했을 것이다.
그후에도 금융 조정은 계속되고 있다. 어떤 은행이 매각되고, 어떤 은행이 합병이 된다고 하더라는 소문이 무성해지면서 그 베일이 벗겨진다.
근래에 우리는 새마을 금고의 부실로 인한 서민들의 눈물을 또 보아야 했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2010년부터 또다시 떠오르는 몇 개의 은행 합병과 매각이라는 사실을 밑바탕에 둔 픽션인 것이다.
물론, 픽션이라고는 하지만, 은행 합병이 정상적인 방법에 의한 것인가, 또는 어떤 정치적 목적, 어떤 세력들의 야심에 의해서 은폐되고, 조작되는 음모들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일반인들에게는 이 소설이 어렴풋하지만, 그 어떤 의문들의 중심에는 뭔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확신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의 저자인 '박태엽'이 18년간 은행에 몸담아 왔던 사람이기에 그 진상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준다.
이 소설의 이야기는 경제부 기자인 오영일이 성진건설의 회장 강민철의 권총 자살 소식, 우수은행과 은화은행의 합병 소식이 담긴 신문이 놓인 사무실에서 회상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오영일의 친구였던 강민철의 아버지 강필수.
그의 증오가 빚어낸 엄청난 소용돌이가 이야기의 얼개인 것이다.
아니, 그것은 증오가 아닌 서로를 믿지 못한 어리석음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강필수의 아버지는 빨치산이었고, 그에게 평생 증오의 대상이었던 성도훈의 아버지는 전라도 광주부근의 진내리 경찰이었다.
강필수의 아버지가 빨치산 토벌에서 잡혀, 선처를 구했지만 싸늘한 시체로 변한 모습을 보고 그때부터 쌓였던 증오는 끝없는 날개를 달고 날아 오른다.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연좌제를 풀기 위해서 대학생 프락치로 활동하면서,교우들을 밀고하고, 성도훈의 애인을 자신의 아내로 만들고, 처가의 기업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어 버리고....
인간으로 할 수 없는 모든 악행이란 악행은 모두 저지르는 그런 인물로 승승장구하게 되는데, 자신을 그렇게 만든 것은 성도훈에 대한 증오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증오의 시작마저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닌, 성도훈과 자신의 아내에 의한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증오의 고리는 이어지고, 증오를 위한 증오는 계속되는 것이다.
강필수의 증오가 빚어내는 은행 합병이 이야기의 밑바탕에 깔려 있기는 하지만, 이 소설 속에는 인간은 본성, 타인에 대한 배려, 불신 등에 관한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가족, 친구, 이웃과의 믿음이 실종되었을 때에 빚어질 수 있는 엄청난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기때문이다.
소통이 결여된 가정, 불신이 난무하는 사회....
인간의 야욕이 저지를 수 있는 끔찍한 결말까지.

이 책의 제목인 <녹색 바벨탑>의 의미는 녹색은 그린 달러, 괴물, 거인 들을 상징하는 단어이고, 바벨탑은 성경에 나오는 인간의 교만, 헛된 욕망을 일컫는 것이다.
즉, 괴물과 같은 헛된 욕망으로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자 한 것이다.



책은 500 페이지가 약간 넘는 분량이지만, 이야기의 호흡이 상당히 짧다.
그래서 읽기에는 부담감이 안 가는 분량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의 아쉬운 점이라면, 소설의 내용이 너무 나열식, 설명식으로 처리된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첫 장면에서 강민철의 자살이 있었기에, 결말이 너무 뻔하게 보이는 단점이 있고, 소설 속의 사건 사건들의 진행과정이 독자들에게 그냥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동안의 긴장감이 떨어진다.
등장인물들의 갈등구조도, 심리 묘사도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이 소설이 미스터리 소설이 아닌 기업소설임을 표방하고 있기는 하지만, 딱 기업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2%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작가가 이 소설을 쓰고 다듬기 위해서 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책을 읽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소설이 남기는 것은 기업 소설이란 생각보다는
야욕에 불타는 행동이 얼마나 헛되고 덧없는가를...
그리고, 누군가를 믿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갖는다는 것.
모든 결과는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타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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