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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 ㅣ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평점 :
나에게는 세계사를 접할 때마다 생각나는 선생님이 계시다. 아마도 '시오노 나나미'처럼 열정적이셨기에 더 생각이 나는지도 모르겠다.
고2~고3에 걸쳐서 세계사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은 나의 고3 때 담임 선생님이시기도 하다.
여자 선생님이셨던 그 분은 허스키한 목소리에, 클레오파트라보다도 콧대가 더 높을 정도로 당당하고 자신만만하셨는데, 그런 선생님의 모습이 때론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수업시간의 열정적인 강의는 우리들을 세계사 속의 한 시점에 몰입하게 만드셨던 것이다.
워낙 이야깃거리가 많은 과목이기에 50분의 수업시간은 짧아서 항상 쉬는 시간까지 설명이 계속되시곤 하셨다.
그때 들은 이야기중에는 클레오파트라, 앤블린, 마리앙투아네트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 속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이후에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 근처의 소읍에 있는 중학교의 사회과 교사가 되었다. 그당시에 사회과 1학년 수업은 내 전공인 지리였지만, 2학년 수업은 세계사 수업이었다.
전공이 아닌 세계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세계사의 흐름을 알게 되었고, 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 지금 생각하면 그 몇 년의 기간이 나에게는 값진 시간들이었고, 역사에 관한 서적들을 많이 읽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한 것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아니면 읽고 싶은 책들을 찾아서 역사 서적을 읽던 중에 만나게 된 것이 <로마인 이야기>이다.
<로마인 이야기>는 '시오노 나나미'의 대표작이기도 한데, 1992년에 <로마인 이야기1>을 출간하면서 매년 1권씩 <로마인 이야기>를 쓰기로 독자들과 약속을 하게 된다.
나는 <로마인 이야기>가 5권 정도 나왔을 때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2007년 <로마인 이야기15>권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구입하여 읽을 정도로 <로마인 이야기>에 푹 빠졌었다.
<로마인 이야기 길라잡이>,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까지.
그 사이 사이에 '시오노 나나미'의 소설, 에세이를 골라 읽는 재미도 상당했던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문헌을 기초로 하여 최대한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했다면, 그녀의 소설과 에세이인 <은빛 피렌체>, < 주홍빛 베네치아>,< 황금빛 로마>, <르네상스의 여인들>,<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등은 이탈리아의 주요도시와 그곳에서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실성과 소설의 허구성이 잘 가미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기에 어떤 장르의 책이든간에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의 작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가 유익한 책이라면, 그녀의 소설과 에세이는 재미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인 이야기>를 보는 시각도,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시각도 곱지만은 않은 것이다.
황제중심의 패권주의,좌파중심의 이야기 등.
특히, 로마인의 속주통치 방식을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와 관련지어서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특히, 역사학자들은 그녀가 쓴 로마제국에 대한 내용들이 너무 주관적이거나 상상력에 의존했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로마인 이야기>는 역사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오노 나나미가 수년간에 걸쳐서 수집한 자료들을 토대로 그녀만의 로마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로마인 이야기>전 15권을 읽다보면 어떤 역사학자 못지 않은 방대한 자료수집과 역사의식을 가지고 이 책을 썼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 인물, 인프라까지 총망라해서 서술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로마인 이야기>에 대한 소수인들의 부정적 시각보다는 작가의 열정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이다.
그럼, <십자군 이야기>로 들어가서
'시오노 나나미'는 1937년생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쓰면서 나중에는 건강검진도 받지를 않았다고 한다. 만약에 병에 걸렸다면, 독자들과의 약속인 <로마인 이야기>를 끝맺을 수가 없기에.
그래서 나는 그녀가 <로마인 이야기>를 끝으로 집필 활동을 접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시오노 나나미'의 도전과 열정은 끝이 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십자군 이야기>이다.
중세 서양의 몰락을 가져오게 되고, 근세로 들어가게 되는 계기가 되는 십자군 전쟁.
그 전쟁은 약 200년 동안 8차에 걸친 전쟁이 계속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십자군 이야기> 역시 간단하게 끝날 이야기는 아닌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2010년부터 <십자군 이야기> 전 3권 시리즈를 쓰고 있으며, 그 1권이 출간된 것이다.
"이 책은 진정한 평화주의자가 되길 희망하는 내가 정성을 다해 조사하며 기록해 나간 전쟁 역사이다." (책 속에서)
<십자군 이야기>는 중세에 기독교의 권력이. 즉 교황의 세력이 얼마나 강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카노사의 굴욕'으로 부터 시작된다.
황제가 행한 인사에 교황이 반대한 것이 발단이 되어, 교황은 자신의 반대를 무시한 황제 하인리히를 파문하게 되고, 황제는 추운 1월 눈 속에서 맨발로 무릎을 꿇게 되는 사건이다.
이처럼 하늘높은 줄 모르던 교황의 권한이 서서히 저물게 되는 것이 바로 십자군 전쟁의 결과인 것이다.
11세기 말,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성지 탈환',' 성도 예루살렘 해방'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원군을 모집하여 이슬람 세계가 장악하고 있는 성지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이 한 마디는 앞으로의 200 여년간의 긴 전쟁을 알리는 선포가 되는 것이다.
과연 신은 전쟁을 원하셨을까?
또한, 원정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도 확실한 명분은 없었던 것이다.
가장 먼저 유럽을 떠나 동방으로 향했던 은자 피에르를 따르는 무리들은 도시의 하층민들이었고, 그들을 '민중 십자군'이라 하지만, 그들은 성지까지도 가지 못하고 거지꼴로 여기저기 나뒹구는 주검이 된다.
'민중 십자군'보다 나중에 원정을 떠나는 본격적인 전사 집단은 보에몬드를 포함한 '제후들의 십자군'이고 그들이 제1차 십자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십자군 최고 사령관은 처음부터 없었고, 지휘계통의 일원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각각 다른 길로, 출발 시기도 제작각이었지만 집결지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풀.
이들을 맞게 되는 이슬람세계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이슬람 세계에서는 십자군이 종교를 기치로 내건 군대라는 것조차 아무도 몰랐으며, 이들은 영토를 빼앗기 위한 침략자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 십자군이 신의 깃발 아래 모인 군대이고, 십자군 원정의 목적이 이슬람으 격퇴하고 그 땅에 십자군 국가를 세우는 데 있다는 것을 이슬림 측이 정확히 알게 되는 것은, 이시기로부터 무려 80년이 지난 후에 등장하는 살라딘에 의해서다." (p110)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전쟁이 아닌가...
그러나 어쨋든 1차 십자군 전쟁은 결과론적으로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년 가까이 걸려서 안티오키아에서 이슬람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를 하기는 하니까.
그리고 지금까지도 지구상에서 갈등이 끊일 날이 없는 성도 예수살렘을 해방시키는데, 그것은 1차 십자군이 유럽을 떠난지 3년만인 1099년 7월 15일인 것이다.
" 예루살렘은 그런 도시였다. 사람들에게 이런 마음을 갖게 만드는 도시, 또 그것이,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 구별없이 모두에게 그런 마음을 갖게 한다는 것이 일신교들 사이에서 마찰을 낳는 원인이기도 했다. " (p222)
안티오키아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빚어지게 되는 학살, 살육, 강탈....
이것이 신이 원하는 것이었을까....
"선인과 악인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한 인간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나 철학이나 윤리를 통해 교정하려 노력하는 것인데, 아직도 그 성과는 신통치 않다. 옛 사람들은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말했다. " (p239)
1096 년부터 3년간 정복, 그후 약 20 여년간에 걸쳐서 십자군 국가는 확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보두엥의 죽음을 끝으로 제 1차 십자군의 주역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십자군 이야기>는 카노사의 굴욕에서 시작하여, 교황 우르바누스의 "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말에 의해서 제 1차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고, 원정대가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십자군 국가를 세우고, 제 1차 십자군의 주역들이 죽게 되는 것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15권으로 방대한 분량이고, <십자군 이야기>는 3권으로 출간 될 예정이지만, 내용은 <로마인 이야기> 못지 않게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물론, 그것은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에 대한 문헌 조사와 자료찾기, 그리고, 그런 작업에서도 누락되어서 알 수 없는 부분들은 그녀의 해박한 역사적 지식들과 상상력으로 보충되는 것이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작가 자신의 사견임을 밝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그녀의 역사적 관점이 주축이 되어서 십자군 이야기를 분석하고 설명을 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십자군 이야기1>을 통해서 겨우 제 1차 십자군의 윤곽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십자군의 여정은 그리 순탄하지 못할 것이다.
처음에도 뚜렷한 명분도 모르고 원정단에 끼어 들었던 전사들이지만, 이후로는 종교적인 전쟁이라는 의미는 더욱 퇴색해지게 될 것이다.
"신의 이름을 빌어서,
성지 팔레스티나를 탈환하기 위해서,
성도 예루살렘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한낱 구호에 해당할뿐이지, 사람들은 그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언제쯤 <십자군 이야기 2>을 우리들앞에 내놓을 수 있은까 궁금해진다.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던 그 시절에 <십자군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면 더 실감나게 , 더 정확하게, 학생들에게 십자군 전쟁을 알려 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나에게는 이 책의 내용이 나만을 위한 지식으로 끝나기는 하지만, 또 다른 책들을 읽을 때에 배경지식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 보기도 한다.

[터키, 이탈리아 여행 중에 산 소품]
그 누구보다도 로마를 사랑하는 '시오노 나나미'가 들려주는 <십자군 이야기> 역시 작가의 열정이 느껴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