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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0년 1월
평점 :
Alain de Botton
그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너를 사랑한다는 건>은 작가가 20대에 쓴 초기작품들로 이 작품들을 '사랑과 인간관계의 3부작'이라고 일컬어지는데, 이 작품들을 읽어 보면 소설이라기 보다는 철학적 사유가 담긴 에세이라는 생각을 들 정도로 어떤 작가의 작품에서도 볼 수 없는 '알랭 드 보통'만의 작품 세계를 엿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그밖에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작품들은 < 여행의 기술>, <일의 기쁨과 슬픔>, < 행복의 건축>들이 있는데, 이 작품들 역시 '알랭 드 보통' 특유의 특색있는 작품들이다.
그는 여행, 일, 건축 등의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접근 방법에 의해서 그만의 통찰력을 바탕으로 세밀하고도 다각적인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것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는 화물선 관찰하기’ ‘물류’ ‘비스킷 공장’ ‘직업상담’ ‘로켓과학’ ‘그림’ ‘송전공학’ ‘회계’ ‘창업자 정신’ ‘항공’ 등 모두 10장에 걸쳐 일상의 구체적인 직업 영역부터 거대한 산업 구조에 이르기까지, '일의 세계'를 따라잡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참치를 잡는 과정에서부터 물류센터를 통해서 한 가정의 식탁에 참치 통조림으로 식탁에 올라오는 과정을 따라가는 모습은 열정적인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공항에서 일주일을> 역시, 공항의 사소한 모습까지를 따라잡아 가는 일주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의미에서 <일의 기쁨과 슬픔>과 같은 맥락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이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는 2009년 여름에 히드로 공항의 관계자로 부터 공항 상주 작가로 초청을 받게 되면서 부터이다.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히드로 공항에 글을 쓸 수 있는 책상을 갖춘 작업실은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 그의 숙소는 공항 옆의 호텔에 마련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알랭 드 보통은 그 나름의 세밀한 관찰력으로 공항의 이모 저모를 취재하고 글을 써 나가는 것이다.
" 나의 고용주는 재대로 된 책상을 하나 놓아주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사실 이곳은 일을 하기에 이상적인 장소였다. 이런 곳에서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하겠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오히려 그런 어려운 작업 환경이 글을 쓰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일하기 좋은 곳이 실제로도 좋은 곳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조용하고 시설이 잘 갖추어진 서재는 그 흠 하나 없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실패에 대한 공포를 압도적인 수준으로 높이곤 한다.
독창적인 사고는 수줍은 동물과 비슷하다. 그런 동물이 글에서 달려나오게 하려면 때로는 다른 방향, 혼잡한 거리나 터미널 같은 곳을 보고 있어야 한다." (p77)
알랭 드 보통이기에 가능한 글들.
그가 써 내려가는 이야기는 공항의 특색이 물씬 풍기는 다양한 이야기들이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는 사람들, 떠나는 사람들, 이별하는 연인들,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가 취재하게 되는 영국 항공사 ceo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공항에서만 볼 수 있는 공항 풍경들까지 작가의 특색있는 글로 쓰여진다.
나에게 히드로 공항은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는데, 입국 심사가 철저하다는 여행가이드북의 글때문에 잔뜩 긴장했던 기억밖에는 없는 공항이다.
그리고, 나에게 공항은 출국을 기다리면서 남는 시간을 지루하게 보내던 곳이며, 공항 검색대에 대한 불안감으로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주눅이 들 던 곳인 것이다.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은 공항에서 맞부딪히게 되는 그 순간 순간들을 재치있게 풀어나가는 것이다.
"작가가 있다고 하니 가끔 뭔가 극적인 일이 벌어지리라는 기대들도 하는 것 같았다. 소설에서나 읽을 수 있는 일. 그래서 내가 그저 둘러볼 뿐이고, 1년 내내 공항에서 하루 걸려 벌어지느 일들로 만족하며 달리 특별한 일은 필요없다고 설명을 하면 가끔 실망을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작가의 책상은 사실상 터미널 이용자들에게 좀더 상상력을 발휘하고 관심을 기울여 자신들의 환경을 살펴보라는, 공항에서 자극을 받았지만, 어서 게이트로 가고 싶은 마음에 차근차근 정리를 해보거나 설명을 해 볼 기회가 없는 감정들에 한 번 무게를 실어 보라는 공개적인 초대나 다름없었다.
나의 수첩은 상실, 욕망, 기대의 일화들, 하늘로 날아가는 여행자들의 영혼의 스냅 사진들로 점점 두꺼워졌다. 터미널이라는 살아 있는 혼돈의 실체에 비하면 책이란 얼마나 얌번하고 정적인 것이냐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리기는 힘들었지만. " (p83)

공항은 여행객에게는 어떤 나라, 어떤 도시에 가기 위해서 그저 스쳐가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특별히 공항에 대한 기억은 오래 가지 않고 금방 잊어 버리게 된다.
그런 공항에서 일주일을 머물면서 공항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접하면서 쓴 글이기에 이 작품은 다시 한 번 우리들에게 공항의 일상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곳은 비행기 속에서였다.
뉴욕에서 라스베가스로 가는 5시간 30분의 항공일정 중에 비행기가 이륙을 하면서 읽기 시작하여 3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읽었는데, 방금 거쳐왔던 공항의 사소한 부분까지를 다룬 이 작품이 참 인상적인 글로 마음 속에 다가오는 것이었다.
옆 자리의 노부부의 꼭 잡은 두 손과 앞 자리에 붙은 스크린을 통해서 게임을 하는 모습도 이 책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노부부의 사랑의 모습이 내 가슴에 깊은 감동을 주듯이, 알랭 드 보통의 작품들은 언제나 신선하면서도 그만의 특유의 글들이 신선한 감동을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