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인문학 - 현장의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 캠페인
구효서 외 지음 / 경향미디어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인문학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마음은 인문학 책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문학 책을 접할 때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꼼꼼히 검색을 해 본 후에 읽는 습관이 있다.
흔히, '인문학'이 무너지고 있다는 이야기들도 많이 하고 있다.
그런 현상은 대학생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입학할 때는 합격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했던 인문학 관련 학과들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취업이 잘 되는 학과의 수업을 들으면서 제 2 전공이라는 명목하에 학과 세탁(?) 하는 경우가 많이들 있다.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에 관한 책들도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고, 책 내용들 역시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워서 수월하게 읽히지 않기에 자연 책상머리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길 위의 인문학>은 인문학을 일반인들이 좀더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고, 쉽게 이해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 진 책이 아닌가 한다.


"2010년 3월부터 인문학을 '일상생활 속에 심고, 대중과 인문학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취지로 시작된 '길 위의 인문학'은 인문학의 학문적 뼈대인 역사, 문학, 철학을 전공한 학자와 문인, 대중이 함께 매월 두 차례 우리 역사 속의 주요 인물들의 삶의 현장을 답사하고 서로 체험을 교감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인문학 대중하 사업이었다. 이 책은 그동안 진행된 강의와 답사의 결과물이다. (p4)

'길 위의 인문학'은 바쁘게 무심코 지나쳐 가는 길이 아닌, 무관심과 무감동의 길이 아닌, 인간과 인간, 자연과 인간, 과거와 현재의 교감을 길 위를 스쳐 지나가는사람들과 소통시키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은 우리의 생활과의 괴리감때문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중고등학교에서의 교육이 너무 피상적이고 암기위주의 교육이었던 것도 한 몫을 하리라 본다.
일례로 이황과 이이의 사상의 비교에 있어서 학습자들과는 무관한 듯한 "이"와 "기"를 논하니, 어려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책처럼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학습이 이루어졌다면, 그렇게 어려운 이론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1부:사람의 자취를 따라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 으로
퇴계, 남명, 추사, 다산, 김이재, 허균 등을 만나러 그들의 삶의 모습이 어려있는 곳으로 길을 떠난다.
지금부터 100 여년전 중국의 최고 지도자와 사상가였던 양계초와 려원홍의 칭송을 받았던 퇴계.
그의 인품과 사상적 깊이는 어떤 유학자보다 뛰어났었음을 그가 살았던 곳에서 삶의 모습을 엿보면서,그리고 그가 남긴 <자성록>을 통해서 살펴본다.


<자성록>은 (...) '사람은 사람답기 위해서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 '어떻게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가?'등 공부를 향한 반성과 열정이 오롯이 담겨  있다. <자성록>은 인간의 내면적 '성찰의 기준>이 무엇인지 잘 알려주는데, 특히 정밀하면서도 심오한 철학적 사색, 열렬한 구도자의 자세로 일관하는 퇴계 스스로의 수양과정은 보는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p26)
또한 그의시 <도산에 품은 뜻>에서도 퇴계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서당이 반이나 지어져 기쁘기 그지없는데
산속에 살며 몸소 밭 일구는 일이 편하다네.
서책을 점차 옮기니 옛 책 상자 다 비었고
대나무 심어 바라보니 죽순이 새로 돋는구나.윱
샘물 소리 고요한 밤 방해함도 못 깨닫고
산 빛 좋은 맑은 아침 더욱 사랑하네.
예부터 산림 선비 만사를 온통 잊고
이름 숨긴 그 뜻을 이제야 알겠네. (도산에 품은 뜻, p43)

유,불, 선이 공존하던 곳, 다양한 지식인들이 깃들어 살던 곳, 지리산.
여기에서 남명 조식을 만난다.
남명은 백이나 엄광처럼 현실을 떠나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공자처럼 끝까지 현실에 남는 길을 택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남명은 권력을 지향하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소신있게 자신의 향기를 내는 선비였던 것이다. 남명이 유람을 다니면서 남긴 여덟 자.


그는 유람을 하면서 "산을 보고 물을 보고, 그리고 역사 속의 고인을 보고 그들이 살던 세상을 보라. (看水看山看人看世)"고 했다. (p75)
산수를 보면서 고인을 생각하고 고인이 살던 세상을 생각하는 것은 남명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길 위의 인문학>팀은 이런 일을 매월 두 차례씩에 걸쳐서 실행했던 것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과의 대담>은 글의 구성부터 특색이 있다.
<추사>를 쓰기도 했던 작가 한승원은 꿈인지 생시인지 추사 김정희를 만나, 그와의 대담을 적고 있다.
추사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컸으면 꿈에까지 나타날까?
추사의 대표작은 <세한도>이기도 하지만, 또한<불이선란도>역시 그의 대표작이다.
 


"신명이 난 난초를 쳤지만 그것은 난초가 아니고, 난초가 아닌 것도 아니다. (...) 이것이 '불이선란'이네" (p102)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명필 추사. 그러나, 추사는 명필가를  뛰어 넘는 권력의 역사 속에 있었던 것이다.


"추사와 그의 시대를 읽어보면, 아주 슬프고 절망적인 현실과 광기어린 삶을 만나게 됩니다. 청나라로부터 근대문명을 받아들여 개혁하려는 북학파인 추사를, 지긋지긋하게 탄핵하고 공격해 죽이려 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이 땅의 어떤 거대한 보수집단하고 같습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저는 '추사와 그의 시대 이야기를 통해 그 반복되는 슬픈 일을 나 스스로 각성하고 경계하고 싶었습니다. " (p104)

이외에도 다산 정약용과 김이재의 만남, 다산에게 다산초당이 단순한 유배지의 의미가 아닌, 다산의 학문을 꽃피웠던 곳이고 이 세상에 나온 보람을 가져다 주었던 곳임을 알기 위해서는 강진을 찾아야 할 것이다.
최초의 국문소설을 쓴 허균을 우린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던가?
그가 유불선을 두루 통달하고, 현실 정치를 뜯어 고치기 위해서 <홍길동>을 썼고, 벽서 사건에 연루되었던 개혁 사상가임을  알고 있었던가?
이런 이야기들이 역사 속에서 들어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도 한 이야기들이기도 하지만, 역사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기에 많은 진실이 가려져 있거나, 각색되어서 알고 있지는 않았었던가.
이 책의 2부·:역사의 흔적을 따라 떠나는 길 위의 인문학 이다.






서울의 발자취를 따라서 서울 성곽을 걷기도 하고, 오욕의 현장인 남한산성을 오르기도 하고,
강화와 대관령 토박이를 따라 그 길을 걸으면서 어릴 적 이야기도 들어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 대관령 말랑을 찾아간다. 그곳에는 내 어린 날의 꿈이 아직도 숨 쉬고 있고, 지금도 나의 상처를 달래주는 곳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관령을 그린 단원의 그림 앞에서 마음이 울컥했던 것은 바로 그 이유에서였다.(p231)


 

마치 대학시절 답사를 떠나기 전에 사전조사를 하고, 현지에 도착하여 이곳 저곳을 살펴보고, 돌아와서 답사 보고서를 쓰던 그 시절이 생각나다.
깊고 넓은 인문학의 세계가 그리 어렵지도 않고, 그리 낯설지도 않고, 나의 삶 속에 항상 함께 하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근함을 느끼게 해준다.
아니, 내가 역사, 지리, 인물 등에 관심이 많고, 그런 인문 서적들에 심취하곤 했기에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도 잠깐 해 보았지만, 그 누군가가 읽어도 재미있고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문학이기에,
또한, 우리가 길 위에서 만날 수 있었던 인문학이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앞으로도 <길 위의 인문학> 행사가  꾸준히 열리고, 그 보고서격인 <길 위의 인문학>이 출간되어 독자들 속으로 파고 들어 간다면, 위기의 인문학은 사라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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