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 원시의 자유를 찾아 떠난 7년간의 기록
제이 그리피스 지음, 전소영 옮김 / 알마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가 인문 서적인 줄은 알았지만 책 자체의 느낌만큼이나 무겁고 힘들다.
양장판으로 잘 제본된 책의 모습과 600 페이지를 넘어 700 페이지 가까운 두께만큼이나 여러 날을 함께 한 책이다.


 

500 페이지, 600 페이지를 넘어도 가뿐하게 넘겨지던 소설책과는 엄청 다른 감(感)을 느끼게 해준다.
문장이 어렵거나 딱딱하지는 않다. 그래도 저자인 제이 그리피스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의 이야기들이고, 그 이야기들이  고대 그리스인들이 말하던 땅의 네가지 원소인 흙, 공기, 불, 물, 그리고 여기에 얼음이 추가되어서 설명되는 것이다.
설명? 이 책의 내용은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리피스의 논리적 사고가 들어있기에 설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녀의 탐험에 가까운 이야기들도 함께 들어 있다.
저자인 그리피스는 어려서부터 책을 접하는 생활을 했고, 특히 세계 여러나라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 곳들 (시베리아, 만달레이, 외몽고 )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흥분할 정도였다.
그래서 18살에는 전국을 돌아다니고, 티베트를 가려다가 인도까지 간 경험이 있다.
24살에는 태국의 미얀만 국경지대의 카렌 고산족과 6개월 이상을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안나푸르나, 킬리만자로, 라디크 등도 가보게된다.
그런 그녀가 자유와 물, 불, 얼음, 흙, 공기를 찾아서 길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책의 목차 》  

야생의 땅 숲
야생의 얼음 빙하
야생의 물 바다
야생의 불 사막
야생의 공기 자유
야생의 정신 희극


마치 한비야의 오지 여행을 생각한다면 이 책을 내려 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한비야의 오지 여행처럼 호락호락한 책은 아니니까. 인문서적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어야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된 것이다.
그의 여행은 단순한 호기심의 여행이 아닌 야생성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그녀는 야생성에는 고 속에서 일관되게 고조되는 울음이 있으며, 그 속성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나는 야생의 의지를 찾아 나섰다. 그 의지가 야성적인 아름다움 속에, 자연력(...)의 생기 속에 스스로를 어떻게 드러내는지 보고 싶었다. 야생성은 생명에 대해 단호하다. 포획되어 갇힌 야생성은 죽어 버리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순수한 자유나 순수한 열정, 순수한 갈망처럼 근원적이다. 야생성은 그 자신의 선언문이다. (p12)

이 여행은 7 년간의 세월이 걸리게 되고, 그것이 이 책이 완성되는데 걸린 7년의 세월인 것이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오지정도가 아닌 원시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고사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반딧불을 등 삼아 글을 쓰기도 했고 나방의 유충을 먹기도 했으며, 웨스트 파푸아의 혁명 전사, 아마존의 주술사, 북극지방의 이누이트, 불교의 승려. 그리고 식인종까지 만나 보게 되는 것이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른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입문 과정이며, 영혼이 황무지에서 길을 잃는 젊은이에게 유일한 약은 땅이라는 사실을 나는 전 세계 원주민들로 부터 배웠다." (p15)

여행의 시작인 페루. 아마존의 여행자로 그녀는 언어가 의미하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아마존 사람들은 숲에 대해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하고 의사를 교환할 줄 아는, 말하는 세계로 본다." (p54)

아마존은 서구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미개지이고 식물들의 무차별적인 초록 덩어리이지만 원주민들은 각 식물들의 노래를 통해 이 야생의 숲을 지나갈 수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마존은 야생성이 응고되어 광기로 변해 버린 곳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접하고 있는 환경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문명인들이 생각하는 편안함은 문명인들의 편안함일뿐이지, 아마존을 비롯한 야생성이 있는 곳에서도 사람들은 그들만의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피스는 아마존에서 야생의 자연, 그것을 깊숙이 날 것 그대로 마셨고, 그 잊을 수 없는 원시의 포효를 들었다. 야생적인 것은 살 수도 없고, 팔 수도 없고 빌리거나 복제 할 수도 없는 것.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 야생성은 언어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내용의 이야기가 그리 쉽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실체가 없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  야생성에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것이기에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읽기에 그리 쉽지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리피스는 자신의 여행지에 대한 생생한 체험의 이야기와 그가 접한 야생의 곳에 대한 자연환경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그곳의 생활을 들여다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그가 설명하는 논리들은 어렵고 또 어렵게 느껴진다.
그녀는 북극을 음향의 세계로 표현한다.
얼음이 생기면서 들리는 소리.
얼음이두꺼워 질때 들리는 소리.
얼음이 얼지 않은 바다에서 들리는 소리.
그 소리는 각각 다양한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누이트는 시각보다 청각으로 공간을 정의하는 것이다.
또한 양극에는 죽음, 겨울, 탄생, 얼음 등 모두가 절대적인 존재이기도 한다.
그리피스는 북극을 철저이 아무 색도 없는 곳으로 정의한다. 얼음은 많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조각인 것이다.

"남극을 찍은 사진으로 유명한 허버트 폰팅은 남극을  '얼음과 화산암으로 이루어진, 신에게 버림받은 황무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독하게 고독한 곳'이라고 했다.
북극 초기 탐험가 중 한 사람도 '고독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적었다. " (p251)


이 책을 마무리할 무렵에 그리피스는 외몽골에 가려고 한다. 친구의 피로연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녀에게 온 세상과 다름 없었던 사람과의 헤어짐을 겪게 된다.
연인, 친구, 파트너와의 헤어짐.
그 이별은 정신의 황무지로 그녀를 내몰았다.

"나는 그 끝없는 돌의 땅, 고비 사막의 모든 돌이었다. (...) 돌에는 끝이 있지만 황폐함에는 끝이 없다. 먼지와 자갈, 자갈과 먼지, 먼지와 재만이 존재하는 세계, 그것이 바로 나였다.
먼지와 재에는 끝이 있을까? 끝은 있다. 먼지와 재 다음에는 침묵이 찾아온다.
(...) 나는 침묵하는 황무지였다. (p629)


친구의 피로연때문에 찾은 외몽골. 그러나 실연과 슬픔에 빠져 결혼식에 간다는 것은.
그러나 그것은 적절한 선택. 잔치의 지혜는 바로 희극의 지혜
이런 말로 희극의 야생성을 이야기한다.
발췌된 글들만으로도 많이 난해한 내용들이라는 것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으로는
<잠들면 안돼, 거기 뱀이 있어 / 다니엘 에버렛>을 추천하고 싶다.
아마존 정글에 선교사로 다니엘이 들어가지만, 그곳의 피다한 족과 함께 생활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그가 언어학를 전공하였기에 그들의 언어를 연구하여 가는 과정을 담은 언어학의 지적 탐구가 흥미롭게 전개되는 책이다.




우리들은 읽기 쉬운 책들을 언젠가부터 찾게 되다보니, 시각적인 면을 고려한 책들이 난무하고 있는데, 한 번쯤은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는 인문 서적도 접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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