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대학을 졸업한 후에 서울근처의 소읍에 교사로 재직한 적이 있다. 그 지역은 워낙 말이 많은 지역이었기에 이곳에 오면 벙어리도 말을 하고 떠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문이 많은 곳이었다.
물론, 소읍의 특성은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가를 알 정도로 흉허물없이 지내기 때문이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가르치던 중학교 2학년 학생 중에 소위 말하는 깡패가 있었다. 그 학생의 소문은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왔다. 술병을 깨고 싸움을 했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그 학생은 소문은 요란했지만, 선생님들에게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였다.
간혹 어떤 학생의 부모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갈 때는 동반을 해 주기도 했고, 여름날에는 냇가에서 물고기를 같이 잡기도 할 정도로 친근감있는 학생이었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근접하기 힘들 정도의 카리스마(?)로 학생들을 장악하였었다.
그래서 그의 무용담은 언제나 학교 안에 자자하게 퍼지곤 했었다.
내가 그 학교를 떠나고 한참 후에 들린 소문은 그 학생이 사고사로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왕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나는 그 학생이 생각났다. 내가 근무했던 그곳도 전국적인 깡패가 배출되었던 근방이었기에 더욱 그랬던 것이리라.
성장기의 남자들에게 "왕"은 그런 존재가 아닐까 한다.
특히, 이 소설의 배경처럼 작은 도시일 경우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이 소설의 화자 장원두에게 "왕"은 오직 마사오뿐인 것이다.
"우주 평화를 지키는 전사와 지구에서 가장 힘센 레슬러에 관해 쉬는 시간마다 격론을 벌이던 아이들도 '맛오가 어제'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들리면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꺼낸 사람의 주변으로 삽시간에 몰려 들었다. 세계 최고의 주먹은 멀리 있었고 우리의 영웅 마사오는 가까이에 있었다. " (53)
  

<왕을 찾아서>의 작가 성석제 !!



나는 성석제를 그의 책으로 만난 적은 없다. 그것은 내가 작가의 장편소설을 처음 접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나에게 성석제는 문학지를 통해서 만났거나, '무슨 무슨 상 수상작품집'에서 수상작이나 심사위원이나 추천작가 작품으로 만났던 기억 밖에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1996 년에 출간되었다가 이번에 재간행된 작품으로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기도 한 것이다.
"마사오
나는 지금 그를 만나러 간다.
내 마음의 시생대, 가장 오랜 영토를 지배하는 영원한 왕. 세월이 흘러가도 추억은 남듯이 그가 통치하던 땅은 여전히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다.
(...)
나는 지금 마사오에게 가고 있다. 그가 죽었으므로." (p9)

나는 잔뜩 긴장하고 이 문장을 읽는다.
과연 성석제는 어떤 이야기를 뺃어 낼 것인가를....
화자에게는 신화시대라면 "신"과 같은 존재, 역사시대라면 "인간영웅" 즉 "왕"인 마사오는 어떤 인물인지가 궁금해 진다.
그는 어린 화자에게는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존재, 그래서 마사오는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고, 그의 소문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은연중에 마음 속의 "왕"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사오의 행동이 객관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그렇게 "왕"의 존재로 보일까?
터무니없는 부풀림은 여기 저기에서 독자들의 레이더에 잡히게 된다.
물론, 화자 역시 마사오의 소문의 진실을 그의 누이 광자를 톻해서 알고 있어도 한 번 마음 속의 "왕"은 영원한 "왕"인 것이다.
그런 화자 역시 한 때는 지역 건달이기도 했고, 5년 전에는 그 지역을 떠났지만,
마사오의 죽음을 계기로 마사오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그곳을 찾으면서 아련히 잊혀졌던 마사오에 대한 기억과 그 지역 건달인 재천, 창용, 희안 그리고 그의 첫사랑이었던 광자, 그의 또다른 사랑이었던 세희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원두에게는 "왕"이었던 마사오의 몰락, 그리고 그의 뒤를 잇는 건달 계보, 그것은 의리보다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볼썽 사나운 싸움이기도 한 것이다.
마사오가 지역사회의 인정을 받는 한 시대를 풍미한 지역 건달이라면, 재천, 창용, 희안은 경찰 권력과 부를 뒷 배경으로 한 자신의 욕망만을 충족시키려는 날 건달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각 인물들의 성향이 뚜렷하게 대변되기도 한다.
희안이 마사오를 가장 닮은 왕의 조건을 가졌다면, 재천은 언제나 일을 벌여 놓고, 잠시 빠졌다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묘수를 꾀하는 자이고,
원두는 한때 건달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기는 했지만, 언제나 재천에게 당하고도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 소극적인 자 인 것이다.
여기에 마사오가 "왕"으로 건재할 때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지역에 파고드는 전국적인 깡패집단의 대두.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변하는 지역을 둘러싼 건달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는 인간의 성향, 인간의 모습을 재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 왕이 되려는 자는 모든 면에서 완벽해서는 안 된다. 완벽한 인간에게는 도움이 필요없고 도움이 필요 없으면 도와주려는 사람도 필요 없게 된다. 도와주려는 사람이 없으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이니 사람이 없으면 다스릴 백성이 없는 것이고 백성이 없으면 왕은 무슨 왕. 약아빠진 인간보다 어리석은 인간이 왕이 되는 이치도 이와 같다. 머리좋고 흠 없고 잘 생긴 인간은 그저 참모 역할이 고작이다. 어리석은 왕이라고 뒤에서 비웃다가는 그나마 펄펄 끓는 솥단지 안에 들어가게 된다. " (p289~290)
또한, 작가의 문체는 특이해서 여러 수사법들을 동원한 문장은 다채롭기도 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야기의 여기 저기에 슬쩍 슬쩍 비추어 주는 시대상이나 시대적 인물에 대한 내용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그 짧막한 문장 속에 어떤 시대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가를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읽으면서 그것까지는 찾아 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 만난 성석제의 흘러간 이야기였기에 자칫 빠뜨리고 읽지 않을 뻔한 소설을 만나게 되어서 작가의 작품을 접할 수 있었음은 행운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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