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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걷는 길 ㅣ 담쟁이 문고
이순원 지음, 한수임 그림 / 실천문학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인 이순원이 1995 년에 쓴 작품으로 그동안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책이다.
2011년 개편된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로 깊은 감동을 주는 이야기이다.
요즘처럼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가 끊어진 때에 부자간의 정을 되짚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게 해주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바탕은 작가와 두 아들이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에 대관령 고갯실을 함께 걸어 넘었던 일을 바탕으로 해서 쓴 작품인 것이다.
작가는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을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운 대표작으로 꼽기도 한다.
대관령을 흔히 아흔 아홉 굽이라고 일컫기도 하지만 그 누구도 정확하게 그 굽이 굽이를 세어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대관령의 굽이는 크고 작은 굽이의 연속이기에 큰 굽이 속에 작은 굽이가 섞여 있고, 또 그 굽이 안에는 또 다른 굽이가 있기에 대관령 굽이를 셀 수가 없는 것이다.
대관령 굽이가 아흔 아홉 굽이면 어떻고, 그보다 훨씬 적은 굽이면 어떻겠는가.
그것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다만 아흔 아홉 굽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만큼 굽이 굽이 구부러져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우리 인생이 크고 작은 굽이가 있는 것처럼~~
그 굽이가 정해져 있고, 그 굽이를 우리들이 셀 수 있다면 삶은 그리 아름답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기도 할 것이다.
알지 못하는 인생. 행복 속에 고난과 아픔이, 그 시련과 상처를 딛고 일어서면 또다른 희망이 보이기에 인생이 아름다운 것처럼, 대관령 굽이 굽이는 우리들에게 인생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아버지와 열세 살 아들은 대관령 고갯길에서 할아버지 댁으로 향하는 길을 걷어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유서깊은 길인 대관령 길의 유래, 길섶의 풀이름, 나무이름. 그 풀과 나무들에 얽힌 이야기.
한 가족으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이야기들. 학교 이야기.
그리고 집안의 역사와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아버지 이야기.
책 속의 화자가 최근 쓴 소설책때문에 겪게 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심기 불편했던 이야기.
그런데, 초등학생인 아들은 의젓하게도 그 이야기를 어렴풋이 짐작하면서 아버지에게 위안을 주기도 한다.
아버지의 불편한 마음을 위로해주는 아들의 진심어린 마음씨가 결코 초등학생의 마음같지 않아서 읽는내내 푸근하고 따스함을 느끼게 해준다.

아버지의 마음이 자연을 닮았기에 아들의 마음도 그렇게 풋풋하고 따스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글을 쓸 때 대관령의 푸른 나무들을 생각한다고 한다.
글을 쓸 때 나무를 생각하는 건 과연 내가 쓰는 이글이 저 푸른 나무를 베어내 책으로 만들어도 부끄럽지 않은가를 생각하는 거란다.
내가 쓴 책을 읽을 사람들이나 너희들보다 먼저 내가 쓴 글을 위하여 몸을 바칠 나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써야겠다는 것이 아빠의 마음이란다. (P69)
작품의 첫 부분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갈등의 요인이 무엇일까 궁금해 지기도 하지만, 할아버지에게 숨겨진 이야기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아빠가 쓴 소설 속의 내용이 어떤 내용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지만, 그것이 오히려 이 작품을 더 빛나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들이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고, 위로의 마음을 보여주는 모티브가 되기에....
아버지와 아들은 대관령 서른 일곱 굽이를 내려오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때론 어떤 굽이는 단 한 마디도 없이 서로 생각에 잠겨 내려오기도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느 시기는 스스로 더 바쁘고, 더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 시간을 잃어 버리고 낭비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조급하게 마음을 서두르면 아무 것도 안 될 수 있음을 한 굽이를 뛰어 내려 가면서 느낄 수 있게 되기도 하니까....
아들의 이야기는 우정, 여자친구, 장래문제 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 속에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생각하게 해준다.
내가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은 전에 읽었음에도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또 다시 읽으니, 대관령 굽이 굽이 크고 작은 굽이마다 우리 인생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서로 소원해진 가족간에 꼭 대관령 고갯길이 아니라도, 집근처 가까운 길을 함께 거닐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본다면 가족간의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깊은 감동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