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한 도시 - 사진으로 읽는 도시의 인문학 초조한 도시 1
이영준 지음 / 안그라픽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서문'의 내용이 너무도 가슴이 와닿아서 그 부분부터 소개할까 한다.
저자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반가사유상'.
나도 그동안 '반가사유상'을 여러번 만났지만, 처음엔 그저 교과서에 실린 사진의 실물을 본다는 생각에, 그리고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후에는 저자와 같은 느낌이 있었고, 지금도 그 아름다움이 머리 속에 담겨 잇다.

실제의 중량이나 표현에서 무거운 느낌을 주는 다른 불상과는 달리, 반가사유상은 날씬한 팔다리에다 가볍게 앉아있는 모습이 결코 둔중하지 않다.
그러나 거기에서 조금씩 베어 나오는 사유의 혼은 방을 가득 채우고 나의 눈과 머리와 가습으로 소리없이 스며든다.
전혀 강렬한 것이 없는데 사람을 사로잡는 힘이 있는 불상이다. (p7)

'반가사유상'을 대했을 때의 최초의 충격. 그 최초의 충격을 우리의 후손들이 오늘날 우리가 살고, 보고 있는 이 도시를 천 년후에 본다면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새삼 느끼게 된다.


저자가 이 책에 수록한 사진들 속의 모습들도 6개월이 멀다하고 사라져 버리는 것이 우리 도시들의 오늘날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급변하는 도시의 모습을 기억으로 보존하기 위햇는 "사진찍기"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초조한 도시>는 사진을 통하여 시간을 멈추게 하여 먼훗날 누군가가 오늘날 도시의 모습을 기억하고 성찰하게 하려는 시도이다. (p13)

여기까지의 서문의 글을 읽으면서
유럽의 도시들이 중세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에 비하면, 우리의 도시들이 정말 얼마나 빠르게 변모하고 있는가를 느끼게 된다.
그러니,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도시의 현상을 건축물들을 기록해 둔다는 것은 얼마나 귀중한 기록이 되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도시를 찍을 때에 아름다운 모습, 사람들로 번잡한 도시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흔히 찍는다.
그런데, <초조한 도시>의 저자 이영준이 찍은 사진들은 삭막하기 그지 없는 그런 도시의 모습을 담고 있다.
도시의 간판, 고층빌딩의 모습, 콘크리트 구조물인 다리의 모습.
그러나 그 사진들은 얼핏 보기에는 도시의 삭막함을 나타내는 것같으나 그 속에서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된느 것이다.
그것은 도시를 삭막하게 느끼게 만드는 '기호와 속도', ' 밀도와 고도', '콘크리트'를 통해서 도시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폭포수 같은 기호, 숨 막히는 밀도, 완고한 콘크리트
그 속에서 발견한 삭막한 아름다움의 역설
 
  

(1) 기호의 제국
 

흔히 사람들은 도시의 모습을 '정서'라는 필터를 통해서 찍는다. 그래서 아름다운 도시의 모습이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지사키 야스오'는 이미 오래전에 <한국의 도시>를 통해서 기호의 중첩만이 있는 그런 사진을 찍었다.
저자 역시 도시의 건물들을 점령하고 있는 간판들을 통해서 '추지사키 야스오'와 같은 기호의 제국의 모습을 담아낸다.


또한, 광화문 네거리의 랜드마크인 이순신 장군의 뒷 모습을 중심으로 이곳에 설치된 전광판인 미디어보드의 모습에서 새로운 컷의 사진을 소개해 준다.
마치 미디어 아트의 전시장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이순신 장군의 머리 위로, 옆으로, 밑으로 마구 마구 정보들이 날라 다니고 있는 모습이.
부천에 있는 '아인스 월드'는 전세계의 유명한 건축물들을 미니어처로 꾸민 곳인데, 주변의 도시의 모습과 중첩된 모습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가?


(2) 밀도와 고도
도시의 밀도와 고도, 그밖의 사물들의 밀도와 고도.
심지어 삶과 죽음의 밀도까지.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은 객관적이고 차가운 이미지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런 컷은 망원렌즈를 통해서 찍기 때문에 빛이 맑고 투명해야 한다고 한다.
우린 쉽게 저자가 찍은 사진들을 접하지만, 이런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는 저자의 나름대로의 숨막히는 밀도라는 정서를 담아내는 능력이 엿보이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나에겐 그저 휙 ~~ 휙~~ 지나치는 도시의 한 모습이었지만, 이렇게 사진으로 기억할 수 있게 해주니, 그 느낌이 새롭다.
(3) 콘크리트의 격
도시를 삭막하게 보이도록 하는 주범은 무엇일까, 아마도 콘크리트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콘크리트를 감성적인 물질이자 구조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콘크리트의 굳건함, 무게감, 부피감, 표면의 질감 등을 통해서 콘크리트가 구조물을 만들었을 때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사진 속에서는 이 콘크리트가 대리석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으니, 이런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감동을 더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만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콘크리트도 연기한다.
그것은 질감과 양감, 나아가 세월의 흔적을 통해 시간감까지 보여주는 매우 풍부한 연기이다.
나는 그 연기의 관객일 뿐이다.  (p216)


중세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유럽, 아니면 자연풍광을 함께 품고 있는 도시들.
그런 도시들이 아닐 경우에는 우리들은 도시를 이야기할 때에 '숨막히는 도시', '삭막한 도시'와 같은 표현을 많이 사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도시처럼 이렇게 빠르게 변모하는 도시들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해 두려는 생각은 미처 해 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초조한 도시>를 읽고, 책 속의 사진들을 접한 독자들이라면 지금까지 자신들의 머리 속에 간직하던 도시의 모습과는 또 다른 도시의 모습에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이 책을 쓴 저자의 노력에 의해서 우리의 도시가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이며, 도시에 대한 인식도 새로워 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초조한 도시>는 사람들이 도시슬 초조하게 느끼게 만드는 밀도와 고도, 기호와 콘크리트들을 사진으로 재구성해 봄으로써 우리가 일상의 시각에서 보던 도시와는 다른 공간들이 감춰져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p262)

마지막으로, 책을 읽는 중간 중간에 느낌이 오는 사진들을 찍어서 리뷰 속에 담았지만, 저자의 사진 컷의 느낌이 그대로 살려서 올리지 못한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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